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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국의 수·당시대(581~907)에 이루어진 미술의 총칭.
(병). Sui-Tang. (웨). Sui-T'ang arts.
수·당대는 국력이 강성하고 예술 창작활동이 왕성했던 시기였다.
수도인 장안(長安)의 건축예술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양계단(楊契丹)·정법사(鄭法士)·동백인(董伯仁)·전자건(展子虔)으로 대표되는 수대의 화가들은 북조시대(北朝時代)의 전통을 크게 계승했다. 그림의 제재는 귀족생활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수대의 화풍은 당대 회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자건의 작품이라고 하는 〈유춘도 遊春圖〉는 초기 산수화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당대 초기의 황실에서는 회화를 중시했다.
염입본(閻立本)은 역사성이 담긴 제재와 초상화를 그려서 중원(中原)의 전통적인 화풍을 대표했다. 소수민족 화가인 위지을승(尉遲乙僧)은 서역지방 풍격의 특장점을 발휘했다. 오도현(吳道玄)은 성당(盛唐) 시기에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오도현). 그는 대량의 종교화를 그렸는데 선(線)이 가진 표현력을 발전시켜 장중하면서도 웅대하고 자유로워서 '신선의 옷자락이 날려 온 벽에 바람이 부는 듯한' 효과를 나타냈고, 종교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당대의 산수화는 그 취향이 성숙하고도 다양했다. 이사훈(李思訓)의 풍격은 정교하고 오도현의 풍격은 호방하여 서로 달랐다.
성당 시기에는 인물화의 성과가 가장 컸다. 화가 장훤(張萱)과 주방(周昉)은 귀족의 유락생활을 표현했고 사녀화(仕女畵)와 초상화에 뛰어났다. 장훤의 작품으로는 〈괵국부인유춘도 虢國夫人遊春圖〉의 사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주방은 '의상이 간결하고 힘차며 색채가 유려한' 화법으로 부녀자들의 '풍만한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일대의 화풍을 이루었다. 궁녀를 제재로 하여 그린 〈휘선사녀도 揮扇仕女圖〉도 주방의 작품이라고 한다.
당대의 화조화(花鳥畵)는 점차 독립·발전하여 설직(薛稷)은 학(鶴) 그림으로 당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변란(邊鸞)은 부러진 나뭇가지와 화훼화를 잘 그렸다. 이밖에 말 그림을 잘 그린 화가로 조패(曹覇)·한간(韓幹)·위언(韋偃)도 이름이 높았다.
한간의 〈목마도 牧馬圖〉·〈조야백 照夜白〉은 당대 그림 중 뛰어난 작품이다. 한황(韓滉)은 전원풍속을 잘 그렸고 또한 소 그림으로 유명했다. 그가 그린 〈오우도 五牛圖〉는 종이에 그린 그림으로는 후세에 전해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손위(孫位)·조광윤 같은 만당(晩唐) 시기의 화가는 오대(五代) 서촉(西蜀)의 회화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시안[西安] 부근에 있는 당묘(唐墓) 벽화와 신장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투루판[吐魯番]에서 출토된 견화(絹畵)와 벽화는 초당·성당 때의 매우 성숙한 회화기교를 보여주고 있다.
당대의 조소예술은 고도로 성숙된 단계에 도달했으며 종교적인 조소작품이 창작의 주류를 이루었다. 대규모로 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조각하고 사원들을 지으면서 불교 형상의 표현이 풍부해졌다. 종교적 제재 이외의 조소예술품도 내용과 기교 면에서 이전 시대의 수준을 넘어섰다.
초당의 조각가로는 한백통(韓伯通)·송법지(宋法智)·오지민(吳智敏)·두홍과(竇弘果)가 가장 유명했고, 사실의 중시와 생생한 묘사가 당시 조소창작의 커다란 특징이었다. 성당 시기에는 영향력이 더욱 큰 조각가가 배출되었다. 오도현은 조소에도 뛰어나서 그의 풍격을 '오장'(吳裝)이라 했다. 가장 이름을 날린 조각가로 양혜지(楊惠之)가 있는데 그는 벽에 조각하는 기술과 천수천안불(千手千眼佛)의 형상을 창조해냈다. 그가 빚어낸 조소의 인물인상은 관상술에도 맞았으며, 실제 모습에 아주 가까웠다.
룽먼[龍門] 석굴의 펑셴 사[奉先寺]는 당대 석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곳이다(핑셴 사 석굴). 이곳은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지원을 받아 굴을 뚫기 시작했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거대한 불상들이 성격과 기질을 표현함으로써, 현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여러 인물 유형의 전형적인 특징을 반영했다. 이러한 특징은 둔황[敦煌]의 모가오 굴[莫高窟 : 千佛洞]에서도 드러난다.
모가오 굴은 당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채색을 한 불상들이 출현했다. 각 유형별로 형상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고 수법이 치밀하며, 현실 속의 여성적인 특징을 표현하고 있는 보살상(菩薩像)이 특히 성공적이다. 그리고 조소와 회화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표현형식이 더욱 훌륭해졌다.
당대에는 정토변상(淨土變相)을 묘사한 벽화가 대량으로 출현했는데,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구도가 복잡하고 형상이 감동적이며, 당시 사회의 번영 정도와 사람들의 심미적인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소릉(昭陵)·건릉(乾陵)·순릉(順陵)은 대표적인 능묘(陵墓) 조각으로 기백이 웅장하다. 당삼채(唐三彩)는 고대의 소형(小型) 조소 중에서 홀로 이채를 띠고 있다.
회화사와 이론에 관한 저작도 점점 많이 나왔는데 수요최(隋姚最)의 〈속화품 續畵品〉, 주경현(朱景玄)의 〈당조명화록 唐朝名畵錄〉 등이 있다.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 歷代名畵記〉는 회화 통사(通史) 저작물로서 특히 중요하다. 서예 방면도 중대한 변혁과 발전을 이루었다. 초당 때에는 2왕(二王 : 王羲之·王獻之 부자)을 중시했다. 구양순(歐陽詢)·우세남(虞世南)·저수량·설직(薛稷)이 왕희지의 서법 풍격을 계승하여 존경받았다.
성당 시기에는 필력이 힘찬 안진경(顔眞卿)의 해서(楷書)가 일세를 풍미하기 시작했다. 그후에 나온 유공권(柳公權)의 서체는 힘찬 필력 중에도 풍만함과 윤택함이 섞여 있어 당대 서예의 대표가 되었다. 장욱(張旭)과 회소(懷素)의 광초(狂草 : 아주 흘려 쓰는 초서)는 역사상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대의 공예미술은 도자·견직물·옥석조각(玉石雕刻)·금은기물(金銀器物) 등 다방면에서 제작이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화려하여 세계미술사상 우뚝한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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