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화조화

다른 표기 언어 花鳥畵

요약 꽃·나무 등 식물과 새를 조합하여 그린 그림.

화론서에 영모·초충·어해 등이 화조문 안에 포함되어 있듯이 동식물이 결합된 그림 전반을 가리키기도 한다. 847년에 완성된 중국 당나라 장언원의 〈역대명화기 歷代名畵記〉에서 처음 독립된 화목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조희룡의 그림

조희룡이 종이 바탕에 담채로 그린 화조화 〈홍매도〉, 127.5×30.2cm, 개인 소장

ⓒ 2015, All Rights Reserved.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화법상의 기틀은 오대에 이르러 황전과 서희에 의해 원체화풍의 황씨체와 문인화풍의 서씨체를 통해 이루어졌고, 감상화로서의 지위는 산수 등과 더불어 북송대에 확고해졌다. 그러나 화조화의 소재를 이루는 새·꽃·나무들은 감상용 화제로서 정착되기 훨씬 이전부터 각종 기물의 문양이나 실용적인 도형으로 애용되어왔다. 특히 이들 소재는 형태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장식적인 목적과 더불어 선사시대부터 조류와 수목 숭배사상과 연계되어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벽사와 길상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에 인생의 소망을 나타내는 상징적 존재로서 기복적인 성격을 짙게 띠며 그려졌다.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봉황, 기쁜 소식을 상징하는 까치, 불노와 장수를 상징하는 학·복숭아·소나무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들은 화조화가 순수 감상용으로 발전된 뒤에도 계속 이어져 이 분야 제작동기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리고 북송대부터 문인들의 이념과 결부되어 자연의 오묘한 이치와 조화를 깨닫고 그 흥취와 시정을 느끼게 해주는 매체로 애호되면서 격조 높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 농경문청동기의 앞면에 새겨진 나무 위의 새를 비롯하여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새와 나무들, 신라시대 서조채화판의 공예화, 와당의 화엽서조문 등을 통해 발전의 기반을 다졌다. 감상용 화조화는 중국 화조화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이후 조선시대에 크게 성행했다.

조선 초기에는 유자미(柳自湄)·안귀생·이암·신잠(申潛) 등을 중심으로 고려시대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경식 구도에 비교적 정교한 필치와 화려한 설채를 특징으로 하는 원체풍의 화조화가 성행했다. 그리고 김정(金淨) 등에 의해 소경의 간결한 구도에 수묵 위주의 화조화가 사대부들의 취향과 밀착되어 새롭게 부각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화조화를 특기로 하는 문인화가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로 소경의 수묵화조화풍이 주류를 이루었다. 명대의 절파화풍과 융합되었던 수묵화조화풍은 김식(金埴)·윤신지·이징 등과 조속(趙涑)·조지운·이건(李健)·이하영(李夏英) 등의 두 계열로 나뉘어 전개되면서 특유의 서정적인 정취와 의취를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는 당시 화단의 새로운 동향과 밀착되어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그려졌다.

18세기 전반과 중엽에는 정선(鄭敾)·변상벽 등에 의해 사생적·사실적인 화풍이 대두되었고, 심사정(沈師正) 등을 중심으로 화보와 남종화법에 토대를 둔 화풍도 전개되었다. 18세기말과 19세기 전반에는 김홍도(金弘道)·이인문(李寅文)·김양기(金良驥)·김득신(金得臣)·이수민 등의 화원화가에 의해 사생풍과 남종화법이 융합된 화조화풍이 대종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에는 후기의 화풍이 보다 감각화되면서 화조화가 민화류에서 주거장식용으로 널리 그려졌는데, 이 흐름은 일제강점기를 통해서도 일본화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지속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미술

미술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화조화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