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BC 8~7세기경 그리스인들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이용할 줄 알았던 에트루리아인들과의 무역을 확장하기 위해 남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지를 개척했다.
아케익기에 정착하여 지금의 토스카나와 로마 등지에 흩어져 있던 에트루리아인들은 장차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될 도시국가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커다란 분묘실에 안치했는데, 대부분 분묘의 벽을 석회로 바른 후 그 위에 생생한 장면들을 그려넣었다(→ 벽화).
이러한 프레스코들의 내용은 그리스 신화로부터 빌려온 것이 대다수였으나 에트루리아인들의 생활을 묘사한 것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는 장례행렬로서, 타르퀴니의 아우구르스 분묘벽화가 유명하다.
BC 5세기경 아테네의 양식이 전파됨에 따라 에트루리아에서도 고전기를 맞이했으며, 그리스 본토에서 사용된 새로이 발견된 음영, 명암, 단순한 공간표현 등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에서는 고전기에 벽화가 활기를 띠지 못했고 오히려 헬레니즘기 동안 로마의 정치적·문화적 영향이 밀려오면서 회화가 부흥하게 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서양화
추천항목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고대 에트루리아 회화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