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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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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회화

ⓒ Jean-Pol GRANDMONT/wikipedia | CC BY 3.0

11세기 후반에는 유럽 전역에서 구성상 좀더 도식화되고 대담한 형상을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선과 색채가 강하고 추상적인 구조가 지배적이었다.

인물표현에 있어서 여러 겹의 복잡한 주름들과 반복된 평행선들의 강조는 정교하고 유형화된 당시의 비잔틴 회화가 서유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서는 1060년경에 데시데리우스 대수도원장이 비잔틴 미술가들을 불러들여 사원을 장식하게 함에 따라 동서 전통의 융합을 이루게 되었다. 12세기 이탈리아의 화가들은 점차로 고대 로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으며, 실제로 고전과 초기 그리스도교의 구성형식 및 모티프들, 심지어는 복고풍의 부활이 일어났다.

12세기초에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일어난 화파들이 클뤼니의 대(大)베네딕투스 대수도원과 시토 수도원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프랑스의 초기 로마네스크 벽화 중 가장 완벽한 것으로 전해지는 것은 생사뱅쉬르가르탕프 교회에 있는 그림들로서 생생한 서술성과 창조성을 보여준다. 그당시 영국의 화가들은 필사본을 통해 비잔틴 회화의 영향과 대륙 회화의 영향을 받아 좀더 유기적인 인물형태를 표현했다.

1130년경에 제작된 '베리 성서'의 필사본 삽화에서 볼 수 있듯이 팽팽한 옷주름은 3차원의 형태를 묘사하고 있으며, 얼굴은 전보다 더 짙게 모델링되어 있고 표정과 몸짓 또한 날카롭고 강렬하다. 11세기 후반 영국 남부와 프랑스 북부에서는 사람·괴물·짐승·새 등이 뒤엉켜 있는 머리글자 유형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죄악 및 악마와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독일오스트리아의 필사본은 자세한 표현의 배경에다 복잡한 도상을 가득 그리는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영국 필사본의 영향을 받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인물과 비현실적인 풍경을 그렸으며, 비잔틴 양식을 연상시키는 얼굴 묘사를 보여주었다.

스페인의 경우 산클레멘테 교회 제단벽화로 그린 프레스코에서 볼 수 있듯이, 인체의 형태와 인체를 둘러싸고 있는 경직된 옷주름들이 동시대 유럽의 다른 지역 회화보다 더 이상화·추상화되어 있었다.

12세기 후반에는 서유럽 전역을 통해 벽화와 필사본 장식에서 다음과 같은 2가지 발전을 이루었다.

첫째, 형태가 더 부드러워지고 자유로운 흐름을 갖게 되었으며 추상성과 유형화된 해석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대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 서유럽의 화가들이 비잔틴 회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정교하게 유형화된 각진 옷주름의 직선적인 표현이 사라지고, 그대신 옷 속의 단단한 신체를 나타내주는 잔물결과 불규칙한 파동들로 대치되었다(물덴스틸). 이러한 부드러운 양식은 독일의 라인 강 중부지방과 레겐스부르크에서 제작된 세밀화들에서도 발견된다.

1200년경 비잔틴의 모자이크 화가들은 베네치아와 시칠리아로부터 많은 제작 의뢰를 받았는데, 이것은 서유럽의 화가들로 하여금 비잔틴 미술을 직접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유입된 비잔틴 미술은 북부 유럽, 특히 잘츠부르크 화가들과 라인 강 북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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