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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초 비잔티움의 자리에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 세워짐에 따라 지중해 동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예술 중심지역이 탄생했다. 비잔티움이란 대개 330~1453년에 존재했던 그리스 정교회의 동로마 제국 및 이 도시의 예술을 말한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부터 비잔틴 세계와 서유럽 세계 사이에는 명백한 종교적·정치적 차이점들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상이점들을 광범위하게 반영하는 지중해 예술은 결과적으로 두 극단으로 분리되었으나 실제로는 예술적인 접촉이 빈번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예를 들어 비잔티움의 영향은 12세기경 시칠리아와 베네치아의 회화들에서 발견되며, 러시아, 불가리아, 서부 발칸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던 정교회 국가들로도 전파되었다. 잘 알려진 〈블라디미르의 성모〉는 1130년경 러시아의 후원자를 위해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하여 가져간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비잔티움 화가들은 정교사회의 독특한 종교적 내용과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으나, 서유럽의 화가들보다 그리스·로마의 전통에 더 충실했다. 회화의 종류로는 성인들을 묘사한 성상들이나 패널화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모자이크 장식벽화도 교회마다 대부분 갖추고 있었다.
채색필사본은 제작이 제한되었으며, 주제 영역 또한 서유럽에서보다 한층 더 제약을 받았다(→ 사본장식). 필사본에서 즐겨 다룬 주제는 〈신약성서〉의 내용 및 그 인물들과 초대교회사 등이었으나, 후기 비잔티움의 필사본들에서는 후원자인 덕망 높은 귀족의 생애를 다룬 삽화가 그려지기도 했다.
비잔티움 회화는 신앙심과 정신성을 표현하는 고도로 효과적인 그리스도교 예술이었다. 전체적으로 비잔티움 예술은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제시하기보다는 초자연적이고 초시간적인 신앙의 영역에 대한 존재의 암시를 더 강조했다. 화가들이 고전 고대의 회화적 방법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세계에 대한 좀더 추상적인 해석을 그려내는 데 목표를 두었다.
결과적으로 비잔티움 예술은 자연주의적인 표현방식과 추상적인 표현방식 사이에서 항상 일종의 긴장감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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