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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물결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밀려들었다. 도시가 성립한 초기에 비교적 평등하였던 도시민은 12~13세기에 이르러 상공업의 발달에 따라 계층이 나눠졌다. 먼저 자본가라고 할 수 있는 상층 부르주아와 중산 계급 또는 소시민적 부르주아 그리고 그 밑에 임금노동자 또는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르는 계층이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가 계급은 주로 외국무역이나 도매상에 종사하여 부유해진 대상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13세기 후반에는 도시귀족으로 변하여 도시의 행정권을 장악하고 이를 이용하여 보다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다. 이러한 대상인들은 단순히 상업활동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도 함께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은행가를 비롯한 대금융업자가 주로 자본가 계급을 구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지금처럼 부동산에 투자하여 큰 돈을 벌어들이거나 귀족 가문과 혼인하여 귀족생활을 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의 수는 도시 전체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였지만, 도시의 부(富)는 그들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부를 배경으로 자본가 계급은 쉽게 왕과 결탁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왕들은 봉건 영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통일국가로서의 왕권을 강화시키는 길을 찾고 있었다. 군대를 키우고 관료제도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였고, 이 돈은 자연히 도시의 부를 쥐고 있는 자본가에게서 빌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국왕은 그 대가로 그들에게 많은 특권을 주었다.

그러나 자본가와 국왕과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막대한 돈을 전쟁비용으로 국왕에 빌려주었다가 전세가 어려워지면 돈을 떼이기 일쑤여서 파산하는 자본가가 속출하였다.

프랑스의 자크 퀘르도 그러한 자본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중부 프랑스의 부르크라는 곳에서 평범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관직을 돈으로 산 뒤 이를 이용하여 재산을 모았다. 샤를 7세는 그를 외교사절로 임명하는 동시에 왕실 재정을 맡기고 돈을 찍어내는 조폐국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퀘르는 백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 필요한 돈을 국왕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광산개발권과 직조작업장을 획득하였다. 또한 빈곤해진 귀족의 영지를 매입하고, 프랑스의 수많은 제후를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여 궁전과 같은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퀘르에게서 많은 돈을 빌린 샤를 7세는 계략을 꾸며 국왕의 총신을 독살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하였다. 국왕은 퀘르의 재산을 몰수하고 파산시켰다.

위와 같은 자본가 계급의 형성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임금노동자 즉 도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나타나게 되었다. 플랑드르나 이탈리아와 같이 모직물공업 등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많은 임금노동자들이 존재했으며, 산업의 발달에 따른 생산체제의 대규모화로 그 수가 늘어갔다. 도시 임금노동자들이 이처럼 큰 증가세를 보이자 주변 농촌 지역의 노동력이나 여성 노동자 그리고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노동력과의 경쟁에 직면하여 일자리를 잃게 될 위기나 빈곤에 시달리게 하였다. 이러한 빈곤 도시민의 수는 14세기에 이르러 도시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본가 계급과 도시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는 중소 시민 계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자본가처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임금노동자들처럼 가난하지도 않았다. 초기에는 소매상인들과 기술을 갖고 있던 장인 계급이 대부분이었으나 나중에는 법관이나 공증인들 같은 각종 법률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행정관료들까지 이 계급에 포함되었다.

이 같은 중세 말 도시민의 계층분화는 결코 고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지 부를 많이 축적한다든지 사업이 파산한다든지 하면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와 농민의 마찰이 심하였던 농촌과 마찬가지로 도시에서도 자본가 계급과 임금노동자들과의 마찰이 점차 심해져 갔다. 특히 도시귀족으로 변한 자본가 계급의 억압이 심한 도시일수록 임금노동자들의 반란은 격하게 나타났다.

결국 자본가가 출현하고 근대적 성격을 띠는 계층이 생겨나면서 중세의 봉건 제도는 급속히 무너져갔다. 이로써 자본주의적 특성이 하나둘씩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