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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착실히 국내의 기반을 다져갈 즈음에 세계 대제국을 건설하려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말라리아로 죽었다. 그와 함께 알렉산더의 대제국은 분열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주변 정세의 변화는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꿈꾸던 로마에게는 아주 좋은 여건을 가져다 주었다.

로마는 먼저 라틴인을 무찌르고 라티움 지방을 정복했으며 이어 에트루리아와 삼니움을 차례로 점령하여 티베르 강을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를 장악하게 되었다(기원전 290년). 로마는 그 여세를 몰아 그리스인의 식민도시들이 지배하던 남부 이탈리아를 평정하고자 하였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계속 패하자 타렌툼은 그리스 본토의 에페이로스 왕 피로스(Pyrrhos)에게 원조를 청하게 되었다.

로마인을 야만인으로 여기고 있던 피로스는 즉시 대군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에 상륙하였다. 그는 갖가지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군대 중에는 장창밀집대가 있었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코끼리도 있었다. 특히 전투용 코끼리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 때부터 썼던 방법인데, 이 코끼리를 큰 소로 오인한 로마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다가 피로스에게 참패를 당했다.

그 뒤 로마는 포로교환 문제 때문에 파브리티우스란 인물을 피로스에게 보냈다. 파브리티우스는 청빈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은 인물이었다. 피로스는 그를 시험하기 위하여 후한 대접을 하고 난 뒤 상당한 양의 금은보화를 선물로 주려 하였다. 그러나 파브리티우스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고 모든 선물을 사양하였다. 다음 날 피로스는 그의 침착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회의장 뒤쪽에 아주 큰 코끼리를 데려다 놓고 장막으로 가려 놓은 뒤 파브리티우스가 들어오자 갑자기 장막을 걷었다. 그러자 그 코끼리는 길다란 코로 파브리티우스의 머리를 쳤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크게 웃고 나서 피로스를 향해 말하였다.

"왕이시여, 어제의 황금이나 오늘의 저 큰 짐승도 우리 로마인을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것 같사옵니다."

피로스는 그의 침착함과 청렴함에 깊이 감동하여 모든 포로들을 조건 없이 돌려주었다.

그 뒤에도 로마가 끈질기게 저항하자 지친 피로스는 로마 원로원에 사자를 보내어 화의를 제안했다. 이때 로마 원로원은 그들이 싸움에서 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대들은 먼저 이탈리아로부터 철수한 후, 화의를 제안함이 옳다."

피로스의 사자는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로마의 원로원은 마치 군주들이 집합한 곳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로마인의 기개가 대단하여 굴복하려 들지 않자, 피로스는 마침내 로마 정복을 단념하고 시칠리아의 시라쿠사가 카르타고에 쫓기어 구원을 청한 것을 기회 삼아 군대를 시칠리아로 돌리고 말았다.

로마는 즉시 카르타고와 공수동맹을 맺음으로써 주변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했다. 그러나 로마는 카르타고에 원병을 보내지 않고 피로스가 철수한 틈을 이용하여 빼앗겼던 이탈리아 남부의 회복에 착수했다. 한편 피로스는 시칠리아에 건너왔으나 싸움에 별 진전이 보이지 않자 카르타고에 화의를 제의하였다. 로마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카르타고는 즉시 피로스와 화의를 맺고, 오히려 군함을 내주며 로마로 진군하게 했다. 그야말로 배신이 배신을 낳은 셈이다. 처음에는 로마가 배신하였고, 그 배신에 원한을 품은 카르타고가 다시 로마를 배신한 것이다.

이리하여 로마는 또다시 피로스의 침입을 받게 되었지만 이때의 로마군은 예전과는 달랐다. 그들은 이미 피로스의 전술과 전략을 간파하고 이들을 격퇴하기 위한 계략을 세워 놓고 있었다. 전진해 오는 전투용 코끼리에 대해서는 빗발치게 화살을 쏘아대는 한편, 불타는 마차를 들이댔다. 그러자 코끼리는 쏟아지는 화살과 불을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피로스의 군사들을 짓밟아버렸다. 장창밀집대에 대해서는 측면에서 협공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이러한 로마의 방어와 공격 앞에 제2의 알렉산더를 꿈꾸던 피로스는 패배의 쓰라림과 함께 철수했다.

이리하여 티베르 강변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일어난 로마는 이제 이탈리아 반도 대부분을 정복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세력은 시칠리아 섬을 마주보는 멧사나 해협까지 미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