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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의 문화와 생활
로마인은 초기에 에트루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나름대로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여 지중해의 패자가 되어 헬레니즘 세계로 진출한 뒤로는 오히려 그리스 문화에 기반을 둔 헬레니즘 문화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를 로마의 어떤 시인이 읊었다.
정복된 그리스가 정복자인 로마를 문화적으로 정복했다.
로마는 문학, 예술, 사상 등 문화의 다방면에서 그리스 문화의 모방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로마의 신들마저도 그리스의 신들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사상에 있어서도 헬레니즘 시대의 유산인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 특히 유행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에픽테토스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세계사》를 저술하여 로마 발전의 원인을 찾으려 했던 역사가 폴리비우스도 포로로 로마에 잡혀온 그리스인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로마 특유의 문학이 발전하여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의 3대 시인이 나타나 라틴 문학의 황금 시대를 이루었으며, 역사가 리비우스는 《로마 건국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로마인의 문화 가운데서 로마의 독자성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실용적인 분야에서였다. 건축에 있어서는 처음에 그리스 양식을 따랐으나, 나중에는 아치를 사용하는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켜 대규모의 목욕탕, 투기장, 개선문 등과 같은 거대하고 웅장한 공공건물을 남겼다. 또 로마인은 공중변소를 설치하고 하수도와 배수구 시설을 갖추어 수준 높은 위생생활을 유지하였으며, 도시에 깨끗한 물을 보내기 위한 대규모 수로를 설치하였다.
이렇듯 실용적인 성격의 로마 문화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로마법이었다. 로마인은 어린 시절부터 12표법을 암기하며 자라났고, 그런 까닭에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법을 존중할 줄 아는 시민이 되었다. 12표법은 귀족과 평민 간의 신분투쟁 과정에서 그때까지의 관습법을 성문화한 것이었으나, 그 뒤 재판의 판례나 해석 등이 보충되면서 점차 시민법으로 발전해 갔다. 로마가 제정으로 넘어간 뒤에는 시민에게만 적용되던 시민법이 세계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제국 내의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는 만민법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로마법은 6세기에 동로마 황제 유스타니아누스가 편찬한 《로마법 대전》에 집대성되었는데 이는 근대 법체계의 모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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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로마인의 문화와 생활 – 이야기세계사1, 김경묵,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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