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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다른 표기 언어 三國遺事

요약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삼국사기〉가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정사라면, 〈삼국유사〉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을 견지한 야사에 해당한다. 5권 2책이며, 상권인 1, 2권은 주로 역사 사실을 다루었고, 하권에 해당하는 3, 4, 5권은 불교 사실을 다루었다. 내용은 주제에 따라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 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5년 4월 1일 보물 제41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2월 3일 〈삼국유사〉 권3~5가 국보 제306호로 변경되었다. 다른 판본이 국보 제306-2호이고, 2018년 2월 21일 1512년 간행된 임신본이 국보 306-3호로 지정되었다. 그밖에〈삼국유사〉 권2가 보물 제419-2호, 〈삼국유사〉 권4~5가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3~5가 보물 제4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요

삼국유사

〈삼국유사〉, 일연 지음, 규장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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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2책. 인본(印本). 국보 제306호. 〈삼국사기〉와 더불어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1965년 4월 1일 보물 제41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2월 3일 〈삼국유사〉 권3~5가 국보 제306호로 변경되었다. 그밖에 〈삼국유사〉가 국보 제306-2호, 〈삼국유사〉 권2가 보물 제419-2호, 〈삼국유사〉 권4~5가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3~5가 보물 제4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판본으로, 비록 총 5권 중 권1~2권만 남아 있으나 결장(缺張)이 없는 완전한 인출본인 <삼국유사> 권1~2가 2018년 2월 21일 국보 제306-3호로 지정되었다.

저자와 저작 배경

저작과정과 시기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일연의 나이 70세(1276) 이후에 저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75세(1281) 이후 2, 3년 사이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유사〉가 마지막으로 정리되어 완성된 시기를 말하는 것일 뿐,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이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저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 이전부터 부분적으로 기록해두었던 내용을 이때 집중적으로 정리하여 한 권으로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유사'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삼국사기〉에서 빠뜨린 것을 기워 보완한다는 성격을 가진다. 국가의 대사업으로 편찬된 〈삼국사기〉는 방대하고도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와 자료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편찬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합리성을 강조하고, 중국 중심적이어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소홀히 다루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기존의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적 측면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룬 점은 승려인 일연의 입장에서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일연이 이를 저작할 당시는 중국을 지배하게 된 몽골의 침략이 계속되어,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이 비판되고 민족자주의식이 강하게 대두되던 시기였다. 일연의 저술의도에는 이같은 민족감정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에서는 가치가 없다고 제외시키거나 소홀히 다룬 자료들에 대해서 주목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결과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도 있고, 다르게 기술하거나 해석한 부분도 적지 않게 있다. 이런 면에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서로 대조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가진다.

〈삼국사기〉가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정사라면, 〈삼국유사〉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을 견지한 야사에 해당한다.

구성과 내용

〈삼국유사〉는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내용상으로 대별하면 상·하 양권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역사 사실을 주로 다룬 1, 2권은 상권에 해당하고, 불교 사실을 주로 다룬 3, 4, 5권은 하권에 해당한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실제 내용에서는 주제에 따라 다시 9개의 편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제1권에서는 삼국 역대 왕들의 계통을 도표로 보인 왕력, 건국의 시조와 왕들의 사적을 다룬 기이(紀異) 2편이 들어 있다. 왕력편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상단에 놓고 그 아래 신라·고구려·백제의 왕들을 시대적으로 배치하여 대비시켰다.

기이편은 제2권에까지 이어지는데, 전반부에서는 건국의 시조와 왕들을 중심으로 삼국과 그 주변 여러 나라의 유래와 역사를 이야기했다. 전반부에서 언급된 나라는 고조선을 비롯하여 위만조선·마한·진한·변한·대방·낙랑·가야·부여·말갈 등 수십 개국에 이른다. 후반부에서는 주로 신라의 역대 왕들이 중심이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후백제와 가락국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첨부했다. 제3권에는 불교를 전해준 여러 승려들의 사적을 다룬 흥법, 사찰의 탑이나 불상, 건물 등에 얽힌 일화를 다룬 탑상 2편이 실려 있으며, 제4권에는 원광·자장·원효 같은 고승들의 학업과 공적을 실은 의해 1편이 실려 있다.

제5권에는 불교적 이적을 다룬 신주, 수도승들과 신도들의 정진하는 모습과 덕행을 다룬 감통, 세속을 떠나 은둔하며 덕행을 닦는 승려와 신도들의 생활 및 사상을 이야기한 피은, 효행의 미담을 전하는 효선 등 4편이 실려 있다.

간행과 의의

간행과 유포

일연의 〈삼국유사〉는 오랫동안 필사본으로 전해져왔다.

후대로 오면서 필사본은 판각본과 활자본으로 출간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최초의 판각본이 언제 간행되었으며 어떻게 전해져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동안의 자료들을 검토해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의 판각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전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판본은 1512년(중종 7) 경주 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주관해서 간행한 '정덕본'(正德本)이다. 그는 〈삼국유사〉의 판본이 마멸되어 없어진 것을 애석히 여기고, 성주목사 권진으로부터 완본을 구해서 여러 읍에 나누어준 뒤 그곳에서 부분적으로 판각한 것을 모아 간행했다.

그러나 중간의 편목 명칭이 빠져 있고 편저자의 서명이 5권에만 실려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이때에도 이미 내용상의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판각본은 조선 후기까지 전해오다가 1845년(헌종 25)에 개간되었다. 필사본으로는 안정복이 소장하던 것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 영인, 출간되었다.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문학부 총서 제6에 수록되기도 하고, 국내에서 '고전간행회본'으로 영인되기도 했다. 이것은 〈삼국유사〉의 원형을 확인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지만, 글자의 탈락과 오류가 많고 뒷사람이 가필한 곳이 많아 자료로서의 가치를 감소시킨다.

현대 활자본으로는 1908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문학부에서 나온 '사지총서본'(史誌叢書本)이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이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을 바탕으로 하고, 다른 판본을 참조해서 교정한 것이다.

국내에서 발간된 활자본으로는 1928년 '조선사학회본'과 계명구락부에서 출간한 최남선의 '교감본'(校監本) 및 그것을 다시 수정한 '증보본'이 있다. 이 '증보본'은 1954년에 나온 것으로 그동안 일반에게 가장 널리 보급되었으며 〈삼국유사〉 연구의 바탕이 되어왔다. 이것은 '계명구락부본'을 바탕으로 하고 '순암본'과 '광문회본' 및 근년에 제1권만이 발견된 '송석하본' 등을 참조해서 교합한 것이다.

내용상으로 보아 이는 〈삼국유사〉의 최선본(最善本)에 해당하지만 여러 종을 교합하면서 활자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결함이 보이기도 한다.

가치와 의의

〈삼국유사〉의 가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나라 고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희귀한 문헌이라는 점이다. 여기 수록된 것은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완하는 것이면서도, 그것이 가지지 못한 여러 가지 사실을 전해주는 자료이다. 단군신화를 실어 민족의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있게 한 점, 한반도를 중심으로 생성·소멸했던 여러 나라에 관한 자료를 실어 우리 민족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게 한 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당나라에 예속당하지 않기 위해 투쟁한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민족의 자주의식을 보여준 점, 〈가락국기〉를 통해 역사에서 사라진 가락국의 모습을 상세하게 전해주는 점 등이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불교사적 가치이다.

여기에는 당시의 불교에 관한 비교적 풍부한 자료가 실려 있으므로 불교의 전래와 전파, 사찰의 건립 유래, 불교와 민간신앙의 갈등과 화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정치상황과 불교와의 관계, 중국 불교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 등도 엿볼 수 있다. 지은이 자신이 승려이지만 불교의 문제점과 폐해에 대해서도 객관적 비판을 가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를 더해준다.

국어국문학적 가치는 이미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서 충분히 밝혀지고 확인되었다.

당시에 사용된 거서간·마립간·차차웅·거칠부·벌지지(伐知旨) 같은 고유의 지명·인명·관직명·사물명 등을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고 있어서 당대의 언어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고대국어의 원형과 변모과정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고, 국어사의 기술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국문학적 측면에서는 우선 향찰로 된 향가 14수의 원문이 설화와 함께 실려 있어 고대문학의 모습을 살필 수 있게 해준다.

〈구지가〉·〈해가사 海歌詞〉·〈치당태평송 治唐太平訟〉과 일연의 찬시(讚詩) 등 한시(漢詩) 작품도 상당수 들어 있어 당대 한문학의 흐름을 살펴보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작품 속에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는 신화와 설화들은 우리나라 산문문학의 원류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조신몽 調信夢〉·〈김현감호설화 金現感虎說話〉·〈거타지설화〉 등은 후대 소설의 소재적 원천이 되어 소설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설화와 함께 수록된 여러 가지 관습과 제의 행위는 민속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속담과 격언, 사물의 형태를 설명하는 설화, 기원을 밝히는 설화, 지명의 유래를 밝히는 설화 등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악귀를 쫓기 위해 문에 그림이나 글자를 써 붙이는 관습이라든지, 정월 대보름날 까마귀에게 밥을 해주는 관습 등의 유래와 의미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그 안에 인용된 수백 권의 책이름을 통해서 당대의 전적과 문헌을 살펴볼 수 있게 된 것도 또하나의 가치이다. 〈삼국유사〉는 우리 고대사를 총체적으로 전해주는 보고(寶庫)로서, 최남선은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 "만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삼국유사〉를 잡을 것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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