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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4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는 17세기에 광범위한 식민지령을 가진 중요한 상업국가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뒤 네덜란드는 프랑스 보호령인 바타비아 공화국이 되었으나 1814년 모라니에 공인 빌렘 6세가 오라니에가(家)를 회복시켜 빌렘 1세로서 벨기에가 1830년의 반란으로 독립을 얻기까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포함된 새로운 네덜란드 왕국을 세웠다. 184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빌렘 2세는 이 왕국이 의회국가로 변모하는 것을 감독했다. 신 헌법은 영국 체제를 본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의회에 최고의 권한을 부여했으며, 빌헬미나 여왕 치세(1890∼1948) 동안 남성들의 보통선거권이 허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네덜란드는 NATO에 가입했고, 1958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했다.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로마 정복(BC 1세기) 당시에 살고 있었으며, 5세기초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로마의 지배가 끝났다.
로마 제국의 뒤를 이어 프랑크족의 메로빙거 왕조가 이 나라를 지배했으나, 7세기말에 피핀 2세 및 그의 계승자들에게 지배권을 빼앗겼다. 이 계승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샤를마뉴이다. 카롤링거 제국은 9세기 중반 경건왕(敬虔王) 루트비히 1세가 죽은 후 분할되었다.
10세기초부터 14세기 중엽까지 세속 공국들과 교회 공국들이 출현하여 서로 지배권을 갖기 위해 다투었다.
16세기초에 네덜란드는 스페인 합스부르크가(家)의 한 지방이 되었다. 종교개혁 동안 북부지방들은 칼뱅주의로 개종했고, 오렌지 공(公) 빌헬름(1533∼84)이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반(反)종교개혁 정책들에 저항하여, 칼뱅주의자들에 의해 야기된 반란을 주도했다.
1579년 스페인령의 북부지방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떨어져나가 네덜란드연합주를 설립했다.
연합주들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은 17세기가 되어서도 계속되었으나 1648년 스페인은 마침내 네덜란드의 독립을 인정했다. 17세기에 광범위한 식민지령을 가진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중요한 상업국가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해상력을 축소시키려는 잉글랜드의 노력이 있자 1652∼54년에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1688년 잉글랜드 의회는 오라니에 공 빌렘과 그의 부인 메리 스튜어트에게 잉글랜드를 다스리도록 초청했고, 그들을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로 칭했다. 그러자 윌리엄 3세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합쳐진 힘을 이용해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18세기 동안 네덜란드의 해상력은 쇠퇴했고 무역은 잉글랜드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에 뒤이어 이 나라는 프랑스 보호령인 바타비아 공화국(1795∼1806)이 되었다.
1814년 모라니에 공인 빌렘 6세에 의해 오라니에가(家)가 회복되었으며, 그는 빌렘 1세로서 벨기에가 1830년의 반란으로 독립을 얻기까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포함된 새로운 네덜란드 왕국을 세웠다. 184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빌렘 2세는 이 왕국이 의회국가로 변모하는 것을 감독했다. 신(新)헌법(1848)은 영국 체제를 본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의회에 최고 권한을 부여했다.
교구 내의 교육에 대한 공공 지원은 19세기말에 논란이 많은 정치문제가 되었다.
빌헬미나 여왕 치세(1890∼1948) 동안 남성들의 보통선거권이 허용되었다. 네덜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중립을 지켰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점령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갔으며 또한 많은 유대인들이 집단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네덜란드는 중립국의 입장을 버리고 NATO에 가입했고, 1958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전후의 정부는 가톨릭당(黨)과 노동당의 제휴로 이루어졌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가톨릭당이 개신교도들을 포함해서 재조직한 국민당이 정부에서 우세했으나, 1973년에 그 자리를 노동당에게 빼앗겼고, 1977년 이후에는 다수 연립세력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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