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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주의

다른 표기 언어 Calvinism 동의어 개혁주의, 改革主義

요약 칼뱅주의는 추종자들이 칼뱅의 교리 중 일부를 발전시킨 것을 가리키기도 하며, 칼뱅과 추종자들의 저서에서 유래하여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뚜렷한 특징이 된 교리와 신앙생활을 가리키기도 한다. 칼뱅은 성서의 폭넓은 가르침을 일관성 있게 전개했지만, 절대적인 논리적 정확성을 가지고 체계화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칼뱅의 추종자들은 트리엔트 공의회가 신학적 규정을 정하는 데 성공한 것에 자극을 받고 반종교개혁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칼뱅의 신학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칼뱅주의는 칼뱅의 사후에도 계속 발전했다. 교회조직·예배·훈련의 신학적 강조점과 그 형식을 둘러싸고 발전한 교리들은 16세기에 프랑스·네덜란드·스코틀랜드 등지로 널리 퍼져 개혁교회나 장로교회를 설립하게 했다.

칼뱅주의는 칼뱅의 추종자들이 칼뱅의 교리 중 일부를 발전시킨 것을 가리키기도 하며 칼뱅과 그의 추종자들의 저서에서 유래하여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뚜렷한 특징이 된 교리와 신앙생활을 가리키기도 한다.

칼뱅은 성서의 폭넓은 가르침을 일관성 있게 배열했지만, 절대적인 논리적 정확성을 가지고 체계화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칼뱅의 추종자들은 부분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가 신학적 규정을 정하는 데 성공한 것에 자극을 받고, 또한 반종교개혁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균형 있는 칼뱅의 신학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칼뱅주의는 칼뱅이 죽은 뒤에도 계속 발전했다. 제네바에서 그의 뒤를 이은 테오도르 베즈는 칼뱅 신학의 강조점들 가운데 몇 가지를 바꾸었다. 예를 들면 그는 〈신학 논문집 Tractationes theologicae〉(1570)에서 하느님과 섭리를 앞세우며 예정을 논한 중세 스콜라 신학의 관행으로 되돌아갔으며(이에 반해 칼뱅은 궁극적으로 예정을 그리스도의 인격과 활동에 연관시켰음), 사변적 결정론이라는 강력한 요소를 예정론에 끌어들였다.

또한 베즈는 성서의 축자적 영감을 강조하여 칼뱅과 다른 성서 해석관을 가졌다. 따라서 감독과 장로라는 말이 〈신약성서〉에서 동의어로 쓰였다고 생각한 많은 잉글랜드 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교회 목회제도 가운데 유일하게 참된 것은 장로제(예를 들면 감독이 없는) 목회제도라고 생각했다. 또한 베즈는 장로제에서 실시되는 교회 훈련이 교회의 존립에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견해에 동의하는 스코틀랜드의 개혁파 신학자 존 녹스는 훈련을 말씀·성례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정한 교회의 3번째 '표지'라고 했다.

칼뱅으로서는 가정해보지도 않았던 이같은 교리의 발전은 형식주의적인 교리 유형과 훈련 유형을 탄생시켰다. 도르트 교회회의(1618~19)의 5개 조항은 칼뱅 이후의 '칼뱅주의'에 관한 강력한 규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조항에는 그리스도가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죽으셨다는 신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칼뱅이 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없는 신앙진술이다.

베즈가 발전시킨 칼뱅주의의 결정론적 원리는 계약신학이 소개되면서 수정되었다.

계약신학은 절대적 예정에 대한 사변을 멀리하고 하느님이 아담으로부터 모세를 거쳐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맺으신 계속적인 계약에 관심을 갖도록 했는데, 이 계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계약을 통해 주어지며, 인간은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도덕법 형태를 갖는 하느님의 계명들에 복종함으로써 응답해야 한다. 여기서 성화(聖化)의 과정은 복종과 연관되는데 이 복종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게 요구된 바 있고, 타락 이후에는 '은혜의 계약'에 의해 갱신되었다.

이 신학은 요한네스 코케이우스의 〈하느님의 요구와 계약에 관한 교리대전 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o Dei〉(1648)에서 명확하게 설명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영어권의 여러 장로교회가 표준으로 인정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은 이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칼뱅의 교리를 수정한 또 하나의 예는 개인의 성화에 대한 경건주의적·실용적인 관심이었다. 잉글랜드 청교도들(예를 들면 윌리엄 퍼킨스) 가운데서 나타난 이같은 관심은 교회와 성사의 객관적 실재를 강조한 칼뱅의 입장과 무관한 것이었다.

조너선 에드워즈와 조지 화이트필드 같은 18세기 영어권 복음전도자들은 개인적인 회심 체험과 함께 도르트 교회회의의 5개 조항이 제안한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교리를 강조했다. 최근까지도 칼뱅주의라는 말은 이러한 관념을 연상시키는 경향이 있다. 교회조직·예배·훈련의 신학적 강조점과 그 형식을 둘러싸고 역사적으로 발전한 교리들은 16세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의 선제후 영지들, 스코틀랜드 등지로 널리 퍼져 개혁교회나 장로교회를 설립하게 했다.

이러한 신학적 강조점들을 반영하는 문서들로는 독일 선제후 영지들에서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Heidelberg Catechism〉(1563), 스코틀랜드 교회의 〈공동전례서 The Book of Common Order〉(1564)·〈제1훈련서 The First Book of Discipline〉(1560), 웨스트민스터 하느님의 성회에서 작성한 〈예배 지침서 The Directory of Worship〉·〈장로제 교회 치리 The Presbyterian Form of Church Government〉(1643~49)가 있다.

장 칼뱅(Jean Calvin)

프랑스의 신학자, 교회행정가

ⓒ Soerfm / wikipedia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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