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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류가 자기 경험을 전승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인쇄매체이다. 근대에 들어 대중사회가 형성되자 책은 정보 전달의 수단만이 아니라 대중의 기호에 부응하는 문화상품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책 가운데서도 대중적 기호나 정서에 성공적으로 부응한, 즉 대중적 욕망을 상업적으로 반영하는 데 성공을 거둔,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등장하게 된다.
반면 작가나 저자의 지적 활동은 더러 사회적 정치적 한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이때 정치 권력은 출판물을 검열하고 그 유통을 차단하여 대중에 대한 사상적 방역선을 긋는다. 이처럼 금서로 표현되는 사상적 억압은 대중의 지적 욕구와 독서활동에 일상적 규제로 작용한다. 대중적 욕망이 표현되고 규제되는 방식과 정도는 시기별로 차이가 있다. 베스트셀러와 금서의 시대적 면면을 살펴보는 일은 사회적 욕망을 주제로 역사에 접근하는 한 방식이 될 것이다.
베스트셀러의 등장과 일제의 검열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로는 누구나 이광수의 『무정』을 꼽는다. 1917년 상반기 『매일신보』에 연재되고 이듬해 출간된 『무정』은 전통적 사랑을 거부하고 새로운 자유연애를 형상화하여 출간 당시 1만 부나 팔렸다. 이 책은 1930년대까지도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광수전집』을 독점 출판하고 있는 우신사의 집계에 의하면 아직도 연간 1만 5천 부씩은 팔린다고 한다.
사실 베스트셀러라는 현상 자체는 책이 하나의 상품으로 되고 그것이 대중의 여가 생활에 활용되는 지극히 근대적인 생활방식의 산물이다. 따라서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려면, 여가로 인한 대중적 독서욕구의 존재, 상업적 출판과 유통 조건의 구비, 전문 작가군의 형성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1920년대에 『무정』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어 베스트셀러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였지만 아직 베스트셀러 현상이 사회적 경향으로 온전히 자리 잡지는 못한 듯하다. 당시 소설은 신문에 실리지 않으면 대중에게 접근할 방도가 없었으며 신문 연재소설 또한 아직 상업성보다는 계몽적 성격에 더욱 치중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로 접어들어 신문매체가 발달하면서 경성부민의 독서열기도 고조되어갔다. 1931년 초반 동아일보사는 『동아일보』 지면에 신설한 ‘독서주간’ 코너를 통해 신간 및 명작이나 독후감을 소개하는 등 독서진흥에 노력하였다. 신문사가 기업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1930년대 후반, 신문사는 판매부수 확대 방안에 고심하면서 소설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독서 · 출판계에서 대중의 지위는 신문매체에 비해 아직 미약하였다. 이는 식민지하의 불충분한 교육기회와 낮은 구매력 때문이었다. 일간신문이 주도하던 독서열과 베스트셀러화 경향은 대체로 경성을 비롯한 대도시만을 무대로 하였고 계층적으로도 청년 학생층에 국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토의 대부분을 점하는 농촌지역과 장년층 이상의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구소설을 탐독하였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신소설보다 구소설을 더 선호’하였다는 1930년대 초반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1930년대 출판계에서 족보 출판이 최고를 차지한 것이나 1937년 당시까지도 족보, 문집류가 출판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이를 ‘출판계의 우울’이라 표현하였으나, 이는 ‘우울’한 현상이 아니라 조선적 전통의 강고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조선 민족의 황민화를 추구하던 총독부는 족보 출간이 조선의 전통적 가족제도를 뒷받침한다고 하여 이를 경계하고 억압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신문매체나 출판활동도 그리 순탄하지는 못했다. 일제의 대륙침략이 확대되자 총독부는 조선사람에게 ‘민족’을 버리고 ‘황국신민’이 될 것을 강요하였다. 총독부는 출판법, 판전검열(版前檢閱) 등을 통해 책 속에 있음직한 민족의식을 미리 점검 · 삭제하였다. 필요한 경우 발행을 아예 금지하고 이미 나온 책도 엄중하게 검열하였다. “문제 학생의 하숙방을 급습한 고등계 형사들이 독일 좌파 지도자 베벨이 쓴 『부인론』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고 각각 연애지침서와 자본주의를 옹호한 책으로 알고 그냥 돌아갔다”는 일화는 총독부의 엄격한 사상통제와 서적검열을 역설적으로 풍자한 표현이다.
일제가 1941년 1월까지 발매, 반포를 금지한 우리말 책은 모두 342종이다. 이는 1909년 2월의 출판법에 따라 행정처분된 것이다. 처분내용은 풍속교란의 이유를 붙인 몇 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치안방해였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한국통사』, 황현의 『매천집』, 한용운의 『님의 침묵』, 안재홍의 『월남 이상재』, 최현배의 『조선민족갱생의 도』, 배성룡의 『조선경제론』, 안익태의 『대한국애국가』 등을 들 수 있고, 몇 권의 족보마저도 금서가 되었다.
가혹한 검열과 금서조처 때문에 몇몇 대형신문사를 제외한 대다수의 출판업과 잡지사는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잡지사의 경우 대개 소자본으로 출발하였으므로 원고료를 원활히 지급할 수 없어 자주 원고난에 빠졌고, 원고 검열이 지연될 때마다 발행기일을 어기는 일이 잦아져 독자가 감소하였다. 그 결과 10년 동안 계속 발행된 잡지를 찾아보기가 극히 어려웠고 창간호가 곧바로 폐간호가 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사정은 신문도 비슷하였다. 작가나 독자 대중도 자기검열의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근대적 출판문화의 발전은 식민지라는 상황 속에서 심각한 굴절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장르가 주로 소설에 국한되기는 하였지만 베스트셀러가 대중적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뜻깊은 일이다. 성(性)에 대한 관심의 팽창과 대중적 파급은 신문소설의 통속화 경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이미 1931년 3월 『동아일보』 ‘신어해설(新語解說)’란은, 당시 가장 많이 쓰이며 시대상을 잘 나타내는 유행어로 스피드(speed), 스포츠(sports), 섹스(sex)의 3S를 소개, 설명하였다.
또한 ‘에로’라는 용어에 대한 사회학적 해설도 실리고 있었다. 이는 당시 대중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자 재빨리 이런 통속화 경향에 적응한 소설로 성공을 거두는 작가들이 나타났다. 당시로는 신인 작가에 속하던 김말봉이 신문에 『찔레꽃』을 연재하면서 기성 인기작가의 작품을 제치고 대중적 인기를 독차지하였으며, 이러한 인기는 단행본 출간과 베스트셀러화로 이어졌다. 문단에서도 신문소설의 상업화 경향에 대하여 찬반론의 치열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이런 변화는 대중이 더 이상 지식인 · 작가의 계몽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 독서에 관한 대중적 욕망이 형성되고 이것이 상업적 대상으로 적극 고려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지적 욕구 폭발과 좌절
1945년 8월 15일의 환호성은 정치, 경제적 해방만이 아니라 욕망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해방 직후의 장관은 실로 유흥계와 쌍벽으로 출판계’라는 말처럼, 해방 후의 출판물 홍수현상은 앞 시기의 ‘억제된 욕망’을 단숨에 보상받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대중의 정치적 열기와 변혁 요구, 지식욕, 우리글에 대한 갈구 등으로 책이란 책은 출간되기만 하면 곧 매진되는 폭발적 수요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1946년 가을부터 물자와 종이부족으로 용지난이 심화되어 교과서도 제작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이 무렵에는 작가가 차분히 저술할 겨를도 없었으므로 일제 때 간행되었던 책 가운데 일부가 재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무정』, 『상록수』(심훈), 『마도의 향불』(방인근), 『순애보』(박계주), 『찔레꽃』 등이 그 대표적인 책이었다. 베스트셀러의 가장 중요한 속성답게 대중적 애정소설이 해방 이후까지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비소설 부문에서는 『우리말본』(최현배), 『도산 안창호』(이광수), 『백범일지』 등이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혔다. 특히 다시 찾은 우리말 · 우리글에 대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준 『우리말본』은 8·15 직후 38선에서 성행하던 남북간 밀수에서 남쪽의 주요 ‘수출품목’의 하나였다. 『우리말본』 한 짐을 북으로 가져가면 북한산 명태 한 달구지분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 본격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등장한 것은 1950년대의 일로 1954년에 발행된 『자유부인』(정비석)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영어구문론』(유진), 『얄개전』(조흔파) 등도 널리 읽혔다. 대학교수 부인을 통해 ‘미국식 자유화’ 바람으로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는 사회풍조를 묘사한 『자유부인』은 14만 부가 순식간에 팔려나가 출판사상 처음으로 판매량 10만 부 선을 돌파한 책으로 기록되었다. 이 책으로 인하여 작가와 당시 서울대 법학과의 황산덕 교수 사이에는 대학교수 이미지 훼손을 둘러싼 지상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영어구문론』의 인기는 누구나 영어 배우기에 매달려 있었던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림으로 문법을 배울 수 있다는 ‘구문도해’라는 어구를 책머리에 붙인 광고 아이디어가 적중하여 1960년대 말까지 통산 80만 부 가량 팔렸다고 한다. 한편 1950년대 말에는 최희숙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슬픔은 강물처럼』, 『마음의 샘터』(최요안) 등의 베스트셀러가 나타나 아직도 남아 있던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고통을 덜고 위안을 받고자 하는 대중들의 정서를 달래줬다.
1960년대의 베스트셀러로는 『흑막』,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저 하늘에도 슬픔이』, 『세계일주 무전여행기』, 『007시리즈』, 『데미안』, 『조선총독부』 등을 꼽을 수 있다. 글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다양성을 갖기 시작하였고, 소설 부문과 비소설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비슷해졌다. 1965년에 출간된 다섯 권의 『조선총독부』(유주현)는 15만 질이나 팔려 대중적 역사소설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어느 재일동포가 이 책의 일어 해적판까지 내기도 하였다.
한편 해방 후 미군정 당국은 출판물 단속을 위해 한말 일제가 출판물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까지 동원하였다. 그러나 좌익계 정당 · 사회단체가 합법화되어 있을 동안에는 대성출판사, 노농사, 박문출판사 등에서 좌익서적을 출판하였다. 공산당이 불법화되고 분단정권이 수립되면서 더욱 철저히 금지당하던 좌익서적은 국가보안법이 공포되자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해방 후 분출된 대중의 정치적 열기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억압구조 속에서 얼어 붙어버렸던 것이다. 남한에서 좌익 정치세력이 자취를 감춘 1950년대에는 철저한 반공정책과 출판계의 부실 때문에 출판물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대부분 신문과 잡지를 겨냥하였다. 따라서 단행본에 대한 금서조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1960년대에도 비슷하였다.
그러나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반공이데올로기의 확산과 본격적인 근대화를 경험하면서 대중들은 이데올로기적 단절과 더불어 전통적 가치의 격심한 혼란, 공동체의 동요를 경험하였다. 1970년대에는 유신독재라는 정치적 억압이 여기에 중첩되면서 사회적 분절성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사회과학 서적의 시대
1970년대 초반에는 『러브 스토리』(에릭 시걸), 『미래의 충격』(앨빈 토플러),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위기의 여자』(시몬 드 보부아르) 등 외국의 주요 작품들이 번역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반면, 1970년대 후반의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과학 서적의 베스트셀러화였다. 『우상과 이성』(이영희),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필두로 한 일군의 사회과학 서적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어섰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사람의 아들』(이문열) 등 이념과 사상을 담은 베스트셀러 소설에 영향을 주었고, 『모모』(미카엘 앤데)와 같은 우화적 성인동화의 선풍에도 파급되었다. 이는 언론과 대학 등지에서 쫓겨난 뒤 출판을 민주화 운동의 한 방법으로 채택하였던 비판적 지식인들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바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단체제하의 이데올로기적 분절을 넘어서려는 대중들의 욕망과 반독재 저항의식이 출판운동에 호응하여 촉발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80년대에도 암울한 시대가 계속되자 베스트셀러의 목록은 『어둠의 자식들』(황석영)로 대표되듯 더욱 어두운 분위기로 변해갔다. 무협지풍 소설인 김홍신의 『인간시장』(총 20권)이 돌풍을 일으키며 최초로 밀리언셀러 시대를 연 것도 이 무렵이다. 이 소설의 인기는 모든 것이 억압당하던 제5공화국 초기, 사람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대리만족 효과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적 울분의 투영은 공간적으로는 『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등 소외계층의 생활상을 그린 작품으로, 시간적으로는 80년대 후반의 『장길산』(황석영), 『객주』(김주영) 등 역사 대하소설로 확대되어갔다. 『태백산맥』(조정래)이 집필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제5공화국 정권은 출판운동이 유신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판단 아래 집권 초기부터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씨의 소리』 등 수많은 잡지들을 폐간하는 등 억압적 조치를 취하였다. 1982년 초 정부는 남한 사회에서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쟁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하여 공산주의에 관한 서적의 출판을 제한적으로 허가한 일이 있다. 그러나 다량의 이념서적이 출판되고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면서 정부는 이 책들이 학생운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여 다시 거두어들이는 소동을 벌였다. 1986년 5월 1일을 기하여 일제 수색에 나서 이념도서 233종을 압수하는 등 이념서적과의 전쟁을 무수하게 벌여 제3공화국 시기 40여 종에 불과하던 인문 · 사회과학 금서의 수가 제5공화국 출범 이후 1985년까지 거의 300권에 육박할 정도였다.
결국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걸쳐 나타난 사회과학 서적의 베스트셀러화는 독자층이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연령층으로 축소되는 등 이전과는 다소 색다른 양상을 보였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심화된 사회적 이념적 분절성을 뛰어넘으려는 대중들의 의식적 · 무의식적 욕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한국 현실의 사회과학적 이론화를 위한 지식인들의 노력이 정치적 상황을 매개로 결합하였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과학 서적의 베스트셀러화는 일반적인 베스트셀러와는 다르며 이 시기의 정치적 이념적 대결구도가 만들어낸 특이한 산물이었다.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
1990년대로 접어들어 동구 사회주의권의 전반적 동요와 몰락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양자의 결합관계는 심대한 균열을 보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회과학 서적의 판매는 급격하게 위축되었고, 그 결과 1980년대에 우후죽순으로 출현했던 사회과학 서점 상당수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와 같은 이른바 후일담 문학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나 『컴퓨터 길라잡이』 등의 실용서를 비롯하여,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특이한 인생경력을 담은 『신화는 없다』(이명박), 『신이 선택한 여자』(심진송)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판매부수도 크게 늘어나서 90년대 들어 밀리언셀러가 일상화된다. 『소설동의보감』, 『소설토정비결』 등의 역사소설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90년대 초반 출판가에서는 “1백만 부를 못 넘기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낄 생각을 하지 마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시사성이 강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는 무려 4백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90년대 중반이 되면서는 『천년의 사랑』(양귀자), 『아버지』(김정현) 등 개인 감성에 호소하는 책이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런 경향은 IMF 영향 아래에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1980년대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지만, 출판시장의 경쟁 격화와 대중매체의 발달에 따른 광고방식의 변화로 이제 책의 내용보다는 마케팅이 더 중요한 변수로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1962년부터 베스트셀러를 발표하였지만 1988년부터 국내 대형서점들이 경쟁적으로 베스트셀러를 공식 집계하여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경쟁은 심화되었다. 베스트셀러에 꼽히는 것 자체가 앞으로 보다 많은 매출을 보장하는 수단이 되면서 출판사들은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워나가게 되었다. 매출액 가운데 광고비 비율이 가장 높다는 화장품이 10퍼센트 수준인 데 비해 매출액의 15~25퍼센트를 광고에 쏟아붓는 출판사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지나친 광고료 부담으로 ‘광고도산’하는 출판사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한편 좋은 원고를 기다리기보다는 출판사에서 직접 시장조사를 하여 팔릴 만한 책을 주문생산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출판사’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또한 몇몇 대형서점들은 베스트셀러 코너의 공간 배치 조작과 신간의 선택적 배열 등을 통해 출판사에 압력을 행사하고 독자들의 충동적 구매를 부추기고 있다. 베스트셀러 선정 기준이 상대적 판매량인 점을 악용한 출판사나 일부 작가들은 자사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여 자기 책을 되사들이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자가발전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이전의 베스트셀러가 대체로 대중의 욕망에 충실히 부응하고자 하였다면, 이제는 출판이나 유통자본이 역으로 대중의 욕망을 조작해나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를 대표하는 현상은 아무래도 『퇴마록』, 『드래곤 라자』 등과 같은 ‘판타지’ 소설의 부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책들의 베스트셀러화는 그 형식과 내용에서 매우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판타지’란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사라지고 등장인물에서도 ‘짐승과 인간, 하늘과 땅,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감정상태’를 뜻한다. 이미 그리스 신화나 우리의 고전소설 『구운몽』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전통은 금세기에 들어서서는 근대적 합리주의나 모더니즘의 억압 아래에 있었다. 세기말에 이르러 멀티미디어의 발달과 컴퓨터통신의 확산으로 가능해진 쌍방향 통신을 바탕으로 평범한 개개인이 이야기 줄거리에 참여하여 가필 · 수정하는, 이른바 ‘새로운 구전(口傳)시대’를 맞이하면서 ‘판타지’는 소생하고 있다.
『드래곤 라자』의 경우 컴퓨터 통신상에서 6개월간 연재되어 90만여 회의 조회를 기록하였고, 출간된 지 2개월 만에 23만 부나 팔리는 돌풍을 일으켰다. ‘제도적 검열과 이성의 억압에서 벗어나, 통신 ID만으로 활동하는 익명의 사이버공간’이 주는 자유로움의 실체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다. 오히려 권력의 통제는 더욱 은밀해져서 이제는 검열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첨단문명의 그물망에 포위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명의 이기’와 새로운 장르의 부상은 이러한 우려와 더불어 확장된 활동 공간과 새로운 가능성을 동시에 내보이면서 다음 세기를 예고하고 있다.
대중의 욕구가 가는 길
출판가에서는 베스트셀러화 전략으로 3S를 언급한다. ‘성적(sexual), 감상적(sentimental), 선정적(sensational)인 것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관심 · 욕망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베스트셀러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세 요소가 베스트셀러의 영원한 테마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중적 정서가 자의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고 믿는 이 상식은 일면의 진실을 놓치고 있다. 대중의 욕망은 일상적으로는 정치권력이 설정한 한계(금서) 내에서 움직이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배출구를 찾아 흐르고 있으며, 어떤 사회적 계기가 주어지면 단숨에 분출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우리는 그 사례들을 단편적이나마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역사와 전통 문화 및 과거 민중의 생활을 다룬 서적에 대한 대중들의 꾸준한 관심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 차원을 넘어서 근대사회의 부작용과 한계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새로운 시대를 위한 집단적 모색의 단초로 보아도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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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세기는 우리에게 과거 수백년에 맞먹는 변화가 일 어난 격동의 세기였다.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했으며 이데올로기의 극 한 대립과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한데 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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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베스트셀러와 금서의 변주곡 – 우리는 지난 100년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1,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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