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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교황 베네딕토 14세〉 외
제작시기 |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교황 베네딕토 14세〉 1740년 제작 카를로 마라타 〈교황 클레멘스 9세〉 1669년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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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4세〉를 그린 이탈리아의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Giuseppe Maria Crespi, 1665~1747)는 주로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장르화’로 유명한 화가였다. 짙고 어두운 배경과 그와 대조되는 선명한 빛 속에 그림의 주 내용을 담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 초상화에서 보듯 활달하고 다소 거친 붓질로 막연하게 미완성의 느낌을 주는 마감이나, 소박하고 친근감 있는 인체 묘사 등은 이미 카라바조를 넘어서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 1740~1758 재위)는 1739년 볼로냐의 대주교로 재임하던 중 이 초상화를 의뢰했다. 그는 당시 프로스페로 람베르티니(Prospero Lambertini, 1675~1758) 추기경으로 불렸다. 작품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방점을 찍을 준비를 하던 화가는 1740년 8월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자 서둘러 그림 속 인물이 입고 있던 추기경복을 벗기고 교황의 옷으로 갈아입혀야 했다. 바뀐 위상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화가는 탁자 위에 교황관도 하나 정성껏 그려 넣었다. 현재 볼로냐의 미술관에는 그가 추기경일 당시 모습을 담은 작은 크기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귀족 집안 출신인 베네딕토 14세 교황은 그림에서 느낄 수 있듯,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지만, 예수회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이나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제사를 철저히 금한 강직한 면도 있었다. 가톨릭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는 1939년에야 용인되었다. 교황은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펜을 들고 있는데, 실제로 그는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 깊은 관심을 가진 지적인 교황이기도 했다.
카를로 마라타(Carlo Maratta, 1625~1713)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 클레멘스 9세(Clemens IX, 1667~1669 재위)는 1667년 6월에 교황에 선출되어 1669년 12월에 사망한, 그야말로 단명의 교황이었다. 카를로 마라타가 교황의 초상화를 의뢰받았을 때는 이미 병색이 완연하여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죽음의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는다. 반신상에 살짝 몸을 튼 자세, 하얀색 옷 위에 짙은 진홍빛 망토를 걸친 교황의 근엄한 표정은 많은 부분 라파엘로가 그린 〈율리오 2세의 초상화〉와 닮아 있다. 교황은 시, 희곡, 오페라 등을 직접 집필할 정도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한다. 그가 쓴 여러 오페라 중 희극 오페라인 〈고통받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Chi soffre speri)〉는 18세기 희극 오페라의 독자적인 양식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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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티칸 시국에는 피나코테카를 비롯해 키아라몬티와 브라치오누오보 미술관, 에트루리아와 이집트 미술관 등 총 24개의 미술관과 기념관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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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교황 베네딕토 14세〉 외 – 바티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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