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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발랑탱 데 볼로뉴
〈성 프로체소와 성 마르티니아노의 순교〉
저작자 | 발랑탱 데 볼로뉴(Valentin de Boulogne, 1591~1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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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1629년 |
〈성 프로체소와 성 마르티니아노의 순교〉는 마침 제작을 마친 푸생의 〈성 에라스모의 순교〉가 자리를 잡자마자 완성되어, 같은 공간 인접한 곳에 걸리게 되었다. 감상자들은 잔혹한 이 두 그림을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비교하기 일쑤였다. 두 그림 모두 끔찍한 처형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푸생이 화면을 골고루 밝히는 화사한 빛을 사용하고 있다면 발랑탱 데 볼로뉴(Valentin de Boulogne, 1591~1632)는 어두운 배경에 중심이 되는 사건만 강한 빛으로 처리하고 있다.
발랑탱의 삶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프랑스 출신으로 역시 화가인 아버지, 삼촌 등과 함께 파리와 퐁텐블로에서 작업한 이력이 있고, 이후 로마로 건너와 활동했다. 생애에서나 그림에서나 그는 카라바조와 닮은꼴이다. 카라바조가 방탕한 삶을 살다 살인까지 저지른 풍운아로 서른일곱 즈음에 객사했다면, 발랑탱 역시 술과 유흥에 찌든 삶을 살던 중 취기에 분수대에 뛰어들었다가 감기에 걸려 고향이 아닌 로마에서 카라바조와 비슷한 나이에 객사했다.
약 75점의 완성작을 남긴 그는 생전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늘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야 했다. 변변한 장례 비용조차 남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직후부터 갑자기 그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집가들은 화가가 생전 받았던 금액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그의 작품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성 프로체소와 성 마르티니아노는 종교화에서 거의 그림으로 그려진 예가 드문 순교자로, 남아 있는 기록도 많지 않다. 이들은 네로 황제 시절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을 감시하던 로마 병사였는데,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고문을 받고 참수당했다고 한다. 화면 오른쪽 한 남자는 쇠막대기로 고문틀에 각각 방향을 달리한 채 누워 있는 두 순교자를 막 내리칠 기세다. 두 남자가 고문틀의 손잡이를 돌리고 있다. 몸을 찢는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죄다 조각같이 단단하고 이상적인 몸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화면 왼쪽에 드러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순교자의 애처로운 발, 꾀죄죄한 옷차림, 주름 잡힌 얼굴 등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은 역시 카라바조를 연상시킨다. 순교자에게 주는 종려나무 가지를 든 상단의 천사는 마치 구름에서 곧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천사의 과장된 자세는 그림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그림 오른쪽 눈을 가린 노쇠한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눈이 멀어가는 것을 느낀 사형 집행관이다. 그는 처형을 중지시키려 하고 있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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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에는 피나코테카를 비롯해 키아라몬티와 브라치오누오보 미술관, 에트루리아와 이집트 미술관 등 총 24개의 미술관과 기념관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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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성 프로체소와 성 마르티니아노의 순교〉 – 바티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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