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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플라톤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러나 〈7번째 편지 Seventh Letter〉에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스승'이 아니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연상의 '친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제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본 뒤 일생을 철학에 바치기로 결심했으며, 그의 합리적 방법과 윤리적 관심을 이어받았다.
그밖에 현상세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립 상태라고 본 헤라클레이토스와,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적인 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도 철학적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은 어린시절에 데켈레이아 전쟁의 참혹함, 아테네 제국의 몰락, 그리고 과두파와 민주파 사이에 벌어진 BC 404~403년의 내란을 경험했다. 이 경험들이 뒷날 대화편 속에서 개진하고 있는 정치적 견해들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중세 그리스도교시대가 시작될 무렵의 〈편지들〉을 1편의 저서로 묶어 9개의 4부작, 합해서 36편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알키비아데스 Ⅰ Alkibiades Ⅰ〉·〈알키비아데스 Ⅱ Alkibiades Ⅱ〉·〈테아게스 Theages〉·〈에라스타이 Erastai〉·〈클리토폰 Clitophon〉·〈히파르코스 Hipparchos〉·〈미노스 Minos〉 등은 위작으로 드러났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법률 Nomoi〉의 부록인 〈에피노미스 Epinomis〉는 오포스의 수학자인 필리포스가 쓴 것으로 믿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대(大)히피아스 Hippias Meizon〉·〈메넥세노스 Menexenos〉도 의심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13개의 〈편지들〉 대부분은 위작임이 확실하지만, 플라톤의 생애와 철학적 관점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전하는 〈7번째 편지〉에 관한 논란은 아직도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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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플라톤의 사상 형성에 끼친 영향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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