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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관 모양의 관북과 주발 모양의 가마솥북이 보편적이다. 나무·금속·흙 등으로 만들며 한쪽 끝 또는 양쪽 끝이 울림막으로 덮여 있고, 손이나 채로 두드려 연주한다. 특수한 형태인 마찰북은 막대로 울림막을 비비거나 그밖의 방법으로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관북은 밑부분에 기다란 받침이 있는 위스키잔형, 가운데가 불룩한 오크통형, 가운데가 잘록한 모래시계형 등 여러 형태가 있고, 빈약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대개 지름보다 높이를 더 길게 만든다. 북의 높이가 낮은 경우에 북의 틀은 공명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북을 틀북이라 하며, 탬버린이 그 예이다.
북은 공동생활이나 통신, 종교적 역할 등 음악 외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데, 특히 주술적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신성시되기도 한다.

북(drum)

타악기 중 하나로 동물의 피막을 씌워 그 부분을 치면서 연주하는 악기이다.

ⓒ nagyman/wikipedia | CC BY-SA 2.0

관 모양의 관북(tubular drum)과 주발 모양의 가마솥북(Kettle drum)이 보편적이고 나무·금속·흙 등으로 만들며 한쪽(단면북) 끝 또는 양쪽(양면북) 끝이 울림막으로 덮여 있고, 손(손북)이나 채(채북)로 두드려 연주한다.

특수한 형태인 마찰북(friction drum)은 막대로 울림막을 비비거나 그밖의 방법으로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마찰북).

관북은 밑부분에 기다란 받침이 있는 위스키 잔형, 가운데가 불룩한 오크 통형, 가운데가 잘록한 모래시계형 등 여러 형태가 있고, 빈약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대개 지름보다 높이를 더 길게 만든다. 북의 높이가 낮은 경우에 북의 틀은 공명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북을 틀북(frame drum)이라 하며, 탬버린이 그 예이다.

북은 신석기시대 이후 다양한 지역에서 유물로 발굴되었는데, 모라비아 지방에서 발굴된 북은 BC 6000년의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북들은 속이 빈 나무통을 잘라 파충류나 어류의 껍데기로 한쪽을 막아서 만들었으며 손으로 쳐서 소리를 냈다. 이후 껍데기 대신 사냥해서 얻은 짐승이나 가축의 가죽을 사용하게 되었고, 손으로 치는 대신 채를 사용하게 되었다. 가죽면이 양쪽에 달린 양면북이 나타나게 되었고 흙을 구워 만든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북이 나타났다. 가죽면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였는데 그중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된다.

단면북의 경우 가죽은 쐐기·못·아교·버튼(울림막 둘레에 뚫은 구멍에 버튼을 끼움)·끈(울림막 둘레의 여분에 줄을 빙 두름) 등으로 고정시켰다. 한편 양면북의 경우에는 (가죽에 구멍을 뚫어) 끈을 두르는 방법이 가장 많이 쓰였다. 근대 유럽의 북은 양면을 서로 연결하는 테를 둘러 양쪽 가죽면을 서로 잡아당기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한쪽 테는 울림막의 안쪽을 감고 또다른 테는 바깥쪽을 감는다.

북은 전형적으로 공동생활이나 통신, 종교적 역할 등 음악 외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데 특히 주술적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신성시되기도 한다.

여러 사회에서 북을 제조할 때에는 의식이 행해지는데 동아프리카에서 왕의 가마솥북은 왕의 권위와 지위를 상징했을 뿐 아니라, 왕에게 초자연적인 보호를 제공한다고 생각되어 이것을 제작할 때에는 소와 같은 제물을 바쳤다. 고대 수메르에서는 거대한 틀북이 사용되었고, BC 3000년 메소포타미아의 한 유물에는 틀북과 작은 원통형 북을 각각 수평·수직으로 놓고 연주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초기 이집트 유물(BC 4000)에는 울림막을 가죽끈만으로 잡아당긴 북이 나타나 있다. 가장 오래된 인도 사원의 양각세공(BC 2세기)인 바루트 양각세공에는 가운데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모래시계형 북이 나타나 있다.

근대 인도의 다마루(ḍamaru)는 비틀면 몸통에 붙어 있는 끈의 한쪽 혹은 양쪽 끝이 울림막을 치게 되는 모래시계형 채북(clapper drum : 가마솥북·관북·틀북이 여기에 해당되며 채로 가죽면을 쳐서 소리를 냄)이다(인도음악, 딱딱이). 가운데가 불룩 나온 오크 통형 북 중 특히 얇게 못이 박힌 형태는 인도와 동북아시아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고, 거대한 북은 고대 중국에서 전쟁에 쓰였다.

탬버린과 같이 원통이 얇은 틀북은 고대 근동지역(주로 여자들이 연주했음), 그리스, 로마에서 연주되었고 이슬람 문화를 통하여 중세 유럽에도 전파되었으며 원·8각형·3각형 등의 다양한 형태에 1~2개의 가죽면이 있었으며, 딸랑이나 울림줄(snare : 쇠줄이나 소가죽 등으로 만들며, 가죽면에 이것을 부착하면 가죽면과 함께 진동하여 소리를 내는데, 틀북의 한 종류인 작은북에는 아래 가죽면에만 울림줄이 있음)을 부착했다. 다른 곳에서 유래된 또다른 틀북은 중앙 아시아, 북극해 지역, 북아메리카 주술사들의 주술적·종교적 의식에 쓰였다.

인도와 티베트에서 발견되는 가죽면이 2개이고 작은 알맹이를 속에 넣은 틀북은 딸랑이북(rattle drum)이라고 부른다. 가마솥북 중 몸통의 길이가 짧은 형태는 600년 페르시아의 그림에 처음으로 나타났고, 크기가 큰 가마솥북은 10세기에 작은 형태의 가마솥북들과 함께 언급되었지만 12세기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원형은 흙을 구워 만든 몸통에 끈을 버틴 형태지만, 뒤에 금속 (또는 나무)으로 만들었으며 이슬람 문화를 통하여 유럽·아프리카·아시아로 전파되었다.

중세 유럽의 북과 북 치는 기법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림과 기록만이 유일한 증거이고, 실제 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타악기 악보는 16세기부터 유래하고 있는데, 북 연주가들은 곡을 주로 즉흥적으로 연주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13세기 들어 북은 1쌍의 작은 가마솥북인 네이커(naker)와 종종 울림줄이 붙어 있는 작은 원통형 북인 탭(tab), 그리고 탬버린 등 세 형태로 나타났다.

탬버린을 뺀 나머지 둘은 박자 맞추기에만 쓰였고, 채로 쳐서 연주했다. 14세기 이후 고용 보병군단이 연대에서 피페와 북을 짝지어 연주하게 되면서부터 북이 큰 소리로 노랫가락을 이끌게 되었다. 큰 가마솥북은 왕족과 귀족들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17세기 중반에 악기로서 관현악단에 끼게 되었다. 그밖에 큰북(bass drum : 원래 터키의 재너서리군의 긴 북과 함께 발전)은 18세기에, 군에서 유래한 작은북(side drum, snare drum)은 19세기에 관현악단에 끼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북은 관현악단, 군대, 통속 춤, 재즈, 록 그룹 등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악기가 되었다.

북이라는 용어는 청동북(bronze drum), 쇠북(steel drum), 속이 텅 빈 나무로 만든 틈북(slit drum) 등 울림막이 없이 치는 악기에도 쓰인다.

한국의 북

한국에서 맨 처음 북이 쓰인 흔적은 고구려의 안악3호분 벽화의 주악도(奏樂圖)와 행렬도(行列圖)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후 고려 때 당악과 아악이 들어오면서 장구·교방고·진고 등 여러 종류의 북이 궁중음악에 쓰이기 시작했다. 한국 전통음악에 쓰이는 북의 종류는 다양한데 그중 흔히 쓰이는 북은 다음과 같다.

노고(路鼓):붉은색을 칠한 긴 북통 2개를 위아래로 겹쳐 북면이 4개인 북으로 틀에 고정시켜 쓴다. 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 등 제사 때 신을 맞이하는 음악에 쓰인다. 1116년(예종 11) 송나라에서 들어온 대성아악에서는 입고(立鼓)가 쓰였는데, 노고와 입고가 같은 악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노도(路鼗):노고와 같은 모양이지만 노고보다 작다. 북통에 추를 단 끈을 달아 긴 대를 좌우로 회전시킬 때마다 추가 북면을 때려 소리를 낸다.

뇌고(雷鼓):원추형 통의 넓은 면에 가죽을 댄 6개의 북통을 둥글게 모아 틀에 매단 북이다.

원단(園壇)·풍운뇌우(風雲雷雨)·산천(山川)·성황(城隍) 등 천신의 제사 때 헌가에 쓰였다.

뇌도(雷鼗):작은 북통 3개를 겹쳐 북통 중앙에 긴 장대로 꿰어 세운 북이다. 뇌고와 함께 편성된다.

영고(靈鼓):8개의 작은 북을 원형으로 묶어 틀에 매단 것이다.

사직(社稷)의 강신악에 쓰였다.

영도(靈鼗):4개의 북을 십자 모양으로 번갈아 기둥위에 세워 8면을 칠 수 있는 북이다. 영고와 함께 편성된다.

건고(建鼓):호랑이 모양의 발을 십자형으로 만들고 대를 세워 그 중간에 북통을 놓고 붉은 칠을 한 4각형의 방개(方蓋)를 2개 세우고 비단휘장을 두른다.

맨 위에는 1마리 백로 조각이 올려져 있다. 북 중에 가장 높으며 화려하다. 궁중 회례악을 시작할 때 연주한다.

삭고(朔鼓):궁중 의식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북으로 헌가의 서쪽에 두고 건고는 중앙, 응고(應鼓)는 동쪽에 둔다. 틀 위 중앙에 해를 상징하는 흰 원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무고(舞鼓):교방고(敎坊鼓)라고도 한다.

〈악학궤범〉에 당악기로 소개되어 있다. 3개의 기둥으로 된 틀 위에 올려놓고 쓴다. 궁중정재 때 사용되었는데 이때는 무고를 무대 중앙에 놓고 무용수가 북채를 들고 친다.

중고(中鼓):제례악에도 썼으며 용고와 함께 군악에도 쓰였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4개의 다리로 된 틀 위에 올려놓고 쓴다.

좌고(座鼓):양면의 납짝한 북을 틀에 걸어놓고 앉아서 치기 때문에 좌고라고 하며 관현합주·관악합주·무용반주 등에 쓰인다.

장구가 북편을 칠 때 함께 친다.

절고(節鼓):비교적 큰 북통에 가죽을 씌워 북틀 위에 올려놓고 한쪽 면만 친다. 음악의 시작과 끝에 치는데 음악의 중간에 칠 때는 문묘제례악의 사자일구(四字一句)의 한 소절 끝박마다 2번씩 치고, 종묘제례악의 보태평(保太平)은 악절마다 첫박에 1번 친다.

진고(晉鼓):〈악학궤범〉에 의하면 4기둥의 북틀 위에 북을 올려놓고 옆에서 치며, 북 중에 가장 크다. 종묘제례악·문묘제례악에 쓰여 헌가에 편성된다.

용고(龍鼓):북통에 용을 그려놓아 용고라 했으며 북통에 박힌 3개의 고리에 끈을 묶어 허리와 어깨에 둘러메고, 2개의 북채를 가지고 서서 친다.

용고는 태평소·나발·징·자바라·나각과 함께 대취타(大吹打)에 편성된다.

갈고(鞨鼓):양장고(兩杖鼓)라고도 한다. 장구와 크기·모양이 비슷하지만 장구와 달리 양면의 가죽이 얇고 두 손에 채를 들고 친다. 소리를 조절하는 축수(縮授)가 양쪽에 있다. 조선 말기에 궁중에서 장구와 함께 쓰였다.

장구[杖鼓]:양쪽 북면이 크고 허리가 가늘다 하여 세요고(細腰鼓)라고도 한다. 북면은 흰 말가죽을 쓰며 양편 가죽둘레 원철에 쇠고리인 구철을 걸어서 붉은 색실로 만든 축승(縮繩)을 얽어매고 축수를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조절한다.

소고(小鼓):북통에 손잡이가 있어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 북채를 쥐고 친다. 농악에서는 춤을 추며 매 장단에 첫 박만을 친다.

소리북:판소리 반주에 쓰이는 북으로 고장북이라고도 한다.

고수가 소리북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고 창자(唱者)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소리북은 나무로 만든 북틀에 흰 가죽을 씌워 만드는데 호남지방에서는 가죽의 흰색을 그대로 쓰고 중부지방에서는 채색을 해 쓰기도 한다. 왼편은 맨손으로 치며 나무채를 가지고 오른편을 치거나 북통의 밑언저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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