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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위 왕조의 지배는 도시 지역의 치안은 급속히 회복시켰지만 야산 지대까지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페르시아가 통치한 26년간은 메소포타미아에는 불안한 시대였다.
오스만 제국의 동방진출은 사파위 왕조 페르시아의 변경 지대에 있는 쿠르드족과 자지라인(人)의 여러 도시의 지지를 얻었으므로 술탄 술레이만 1세는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바그다드로 진격했다. 1534년에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이 오스만 제국에 귀속되어 이후 약 4세기에 걸쳐 투르크의 한 지방이 되었다. 군사국가의 색채를 띠고 도시 지역에만 세력을 미쳤던 오스만 제국의 통치의 처음 90년간은 1623년 사파위 왕조 페르시아의 아바스 1세가 이 지역을 재탈환함으로써 일단 끝났다.
페르시아 재통치시대가 15년 계속된 뒤 술탄 무라드 4세는 다시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다(1638). 부패하고 쇠약해진 모술·바그다드·바스라 3개주의 통치자들은 매우 작은 지역의 치안 유지만을 맡았고 임무도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약 1세기에 걸쳐 외국세력의 침입을 막고 중요 지역의 질서를 유지시켰다.
18세기에도 이런 상태는 계속되었지만 한쪽에서는 새로운 변화도 일어났다.
오스만 정부의 내부에서는 문관이 늘어났고 그의 기능도 분화되었다. 또 군대의 세력 증대가 두드러졌으며 술탄의 영향력은 떨어졌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유럽인 상인·영사·사절 등이 나타났고 쿠르드 지방과 모술에는 지방정권이 탄생했다. 나디르 샤가 이끄는 페르시아가 다시 침략을 개시한 일, 여러 번의 싸움, 바그다드의 파샤(아메드 파샤와 하산 파샤)가 이끈 저항과 반격, 바그다드와 모술의 포위전도 18세기의 일이었다. 내정개혁 전 오스만 제국의 통치는 권력쟁탈전의 연속이었다. 개혁 이후 메소포타미아에서 오스만 제국 지배의 마지막 1세기(1831~1914)는 불완전하고 적용 불가능한 개혁이 오스만 제국의 여러 주 가운데 가장 멀리 떨어지고 낙후한 이 지역에까지 미친 시기였다.
동시에 이 지방이 인도로 통하는 육로의 입구에 해당하며 고고학상 또 성서 연구상 매혹적인 땅으로 유럽인에게 알려진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영국인이 관심을 보여 영국 영사들은 절대적인 힘과 특권으로 이 지방 경영에 나섰다. 19세기 중반 이래 메소포타미아의 중부와 남부는 영국의 세력권에 들어간 것과 다름없었고, 한편 북부의 모술은 프랑스의 영향하에 있었다.
영국이 전보·우편사업을 비롯해 도로·다리 등의 건설을 시작해 이곳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메소포타미아는 페르시아 변경 지대의 불안정(1912까지 정식 국경이 결정되지 않았음)이나 아라비아 반도 내 유목민(오스만 제국은는 이름뿐이기는 하나 이 땅을 자신의 영토에 포함했음)의 침입을 제외하고는 그밖의 모든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근대화한 군대는 모술·바그다드·바스라를 통치하는 사람(파샤)의 정책을 지지했다.
각 지역 통치자 가운데는 청렴하고 현실주의적인 지성을 겸비한 사람들도 약간 있었다. 이들은 알리 리다 파샤(1831~42 재위), 나지브 파샤(1842~52 재위), 모하메드 라시드(1853~58 재위), 나미크 파샤(1853~60 재위), 미드하트 파샤(1869~72 재위), 나딤 파샤(1911~12 재위) 등인데, 이들은 충성하지 않는 부족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질서있는 시책을 폈고, 또 국민이 요구하는 정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나 능동적인 정부기구 정비에 노력했다.
각 지역 통치자들의 이런 노력은 근대적인 법제를 바탕으로 했고, 아랍인이 가능한 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몇 십 년 사이에 정부의 기능이 강해졌고 정부와 대중, 부족민과 도시인, 종교와 사회의 관계는 서서히 개선되었다. 19세기는 특기할 만한 일은 적었지만 진보의 싹이라고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담고, 다가올 이라크 국왕 파이잘 1세(1921~33 재위)의 정부에 대해 많은 조건을 준비한 형성기였다.
술탄 칼리프 제도의 권위에 바탕을 둔 오스만 제국정부는 튼튼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변동과 개혁이 퍼져갔다.
1900년 이후 소수의 지식인이 벌인 문화·정치운동으로서, 레반트 지역과 이집트에서 두드러졌던 민족주의 운동은 이라크에도 전해졌다. 이 운동은 아랍의 자아의식 회복과 자치에 대한 희망, 이방인인 투르크족의 장기간에 걸친 실정(失政)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었다. 아랍 민족주의 사상은 일정한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똑같은 목표도, 효과적인 행동수단도 없었으나 1920년 이후의 군주제 이라크를 걸머질 장래의 정치가들 중 몇 명은 1914년경 이미 아랍 민족주의로 기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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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오스만 제국의 메소포타미아 지배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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