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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라다테스 2세(BC 124경~87경 재위) 때 메소포타미아는 확고한 파르티아 영토였으며, 로마의 루쿨루스와 폼페이우스의 조약(BC 66)에 따라 메소포타미아는 파르티아령으로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에서 시리아로 종단하는 로마군이 몇 차례에 걸쳐 이 땅을 통과하자 파르티아는 아르메니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결국 로마도 말려들게 되었다.
로마 장군 가비니우스는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지만(BC 54) 크라수스는 카라 전투(BC 53)에서 파르티아에게 패배했고, BC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의 암살로 로마의 대원정군은 메소포타미아에서 퇴각했다. BC 36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아르메니아를 지나 파르티아 왕 프라테스 4세(BC 38경~32 재위)와 싸우려한 원정 계획은 비참한 결과로 끝났다. 그러나 AD 62년 볼로게세스 1세의 로마 공격도 니시비스(니시빈) 서쪽에는 이르지 못했고, 이듬해 63년 평화협약을 맺었다.
115년에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북방에서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메소포타미아로 진입해 메소포타미아는 싱가라까지 로마의 속령이 되었다. 이듬해 트라야누스는 티그리스 강을 건너 니시비스와 에데사를 점령했으나 하트라는 포위 속에서 저항해 트라야누스의 공격은 실패했다. 트라야누스의 뒤를 이은 하드리아누스는 메소포타미아를 포기하고 유프라테스 강을 국경으로 삼았다. 그뒤 파르티아 왕 볼로게세스 3세는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죽음을 기회삼아 아르메니아에 침입했으나 실패해 메소포타미아 서부는 다시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콤모두스 황제가 죽자 194년에 하트라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맞섰고 니시비스는 파르티아 군에 포위되었다. 그러나 195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친히 로마 군을 이끌고 그들을 진압했다. 그는 니시비스를 주요식민도시의 지위로 끌어올렸고 이미 예멘의 아랍인이 들어와 정착해 있던 신자르 지역을 병합했다. 셉티미우스가 철수하자 형세는 나빠졌으나 198년 그가 다시 나타나자 파르티아인은 철수했다.
그뒤 평화가 지속되다가 216년 카라칼라 황제가 파르티아에 싸움을 걸었다. 217년 카라칼라가 카라 근처에서 암살된 뒤 후계자 마크리누스는 니시비스 근처에서 파르티아에 패하고 평화조약을 맺어야 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는 계속 로마 영토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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