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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의 상징주의 운동에서 비롯된 시의 부활을 주도한 사람은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솔로비요프였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세계는 추상적·형이상학적 실체를 나타내는 상징의 체계라는 믿음을 표현했다.
콘스탄틴 발몬트와 발레리 브류소프도 재능있는 시인이었지만 가장 위대한 시인은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블로크였다. 혁명과 신을 묵시록적인 전망 속에서 결합시킨 그의 〈열둘 Dvenadtsat〉(1918)은 12명의 적군 병사가 그리스도의 인도로 신세계의 사도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밖의 주요 상징주의 시인으로는 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 이바노프, 표도르 솔로구프, 안드레이 벨리 등이 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전문지식을 현실개념에 도입했다. 그리스 학자인 이바노프는 그리스도와 디오니소스 일체설을 주장했고,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 벨리는 고골리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소설들로 자신의 철학을 나타냈다.
상징주의의 지배에 대한 반동으로 시인 니콜라이 스테파노비치 구밀료프는 1911년에 장인기질과 표현의 명징성을 강조하는 아크메이즘이란 시 운동을 창시했다(→ 아크메이스트). 아크메이즘의 지도적 시인은 구밀료프의 부인 안나 아흐마토바였다. 그녀는 혁명 전에 감동적인 서정시로 폭넓은 인기를 누렸지만 소비에트 시기에는 탄압을 받았다.
1910년에는 벨리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흘레브니코프가 가장 혁명적인 시 운동을 창시했다. 미래파의 창립 선언은 1912년 〈공공 취향에 가하는 따귀 Poshchochina obshchestvennomu vkusu〉라는 제목으로 등장했는데, 여기에 서명한 예술가 가운데는 혁명 후 여러 운동의 '계관시인'적 존재가 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마야코프스키도 있었다. 미래파는 인위적으로 보이는 기존의 문학형식을 버리고 일반대중의 언어를 채택함으로써 독자의 의식을 자극하려고 했다.
마야코프스키는 처음에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했으나 후기의 풍자극 〈빈대 Klop〉(1929)·〈목욕탕 Banya〉(1930) 등에서는 소비에트 관료제에 대한 환멸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정치적 환멸 속에서 1930년 자살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미래파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17년에는 〈누이는 나의 삶 Sestra moya zhizn〉(1922)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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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20세기초의 러시아 문학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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