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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배의 동력으로 노, 배의 무기로 충각을 쓰는 시대에 군사력을 해상으로 확대하는 데 주요수단으로 사용하는 배.
전투용으로 의장된 최초의 선박은 일반 운송용 배를 개조한 것이었다.
최초의 개조는 기습부대가 단지 무기를 배 안에 집결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박 자체에 공격력과 방어력이 추가되는 형태로 개조는 진행되었다.
BC 3000년경에는 항해용으로 건조된 대형 목선들이 이집트의 나일 강으로부터 장거리 순양과 무역·정복 등을 위해 출항했다. 이 배들은 노와 돛으로 움직이는 배들이었다. 배마다 하나의 쌍각(역V자) 마스트와 대형 가로돛으로 의장되었다.
이집트의 대형 선박들에는 한쪽에 20개 이상의 노와 2개 이상의 키잡이 노가 있었다. 병선(兵船) 겸용 갤리선(船)은 형태는 같지만 보다 견고하게 건조되었다. 그중에는 선체 밖으로 돌출한 충각(衝角)을 장치한 갤리선도 있었다. 그 충각은 적선의 건널뱃전을 들이받고 갑판까지 올라가 적선을 침수 또는 전복시킬 수 있도록 설계되기도 했다.
BC 2000년경 크레타가 동(東)지중해의 해상강국으로 등장했다.
크레타의 병선은 외돛대에 노젓는 곳이 1단으로 되어 있었다. 끝이 예리하게 된 선수(船首)는 충각의 계획적인 사용이 강조되었음을 시사한다. BC 11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은 크레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상선을 겸한 병선들을 운행했다. 이 배들은 보다 많은 노를 맬 수 있었고 따라서 힘과 추진력이 보다 강했다.
주무기는 충각이었다.
그리스 해양 도시국가들의 통상이 발전해 해상보호의 필요성이 증대하자, 처음부터 전투용으로 건조된 갤리선이 등장했다. 1단노선(一段櫓船)으로 불린 이 최초의 갤리선은 노를 젓는 곳이 1단으로 되어 있었으며, 속도가 빠르고 이물과 고물이 높이 휘어져 보기에 우아했다.
뒤이어 노젓는 곳이 상하 2단으로 된 갤리선이 등장해 BC 8세기의 주도적인 병선이 되었다(→ 바이림). 80~90년이 지나기 전에 최초의 3단노선이 점차 병선의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살라미스 해전(BC 480)에서 그리스 해군이 승리한 이후 특히 두드러졌다(→ 트라이림).
3단 갤리선의 발전은 아테네에서 절정에 달했다.
BC 4세기 중엽 아테네인들은 4단노 갤리선을 진수시켰고 바로 뒤이어 5단노 갤리선이 등장했다. BC 4세기말에서 3세기초에 걸쳐 동지중해에서 군비확대경쟁이 계속된 결과 5단 이상의 배들도 만들어졌다. 이와 같은 군비확대경쟁은 다른 중요한 변화들도 가져왔다. 마케도니아의 디미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가 BC 3세기말 병선에 중(重)투척 무기를 처음 도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대형 군선(軍船)들이 쇠뇌를 장치해 적과 떨어져서 교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단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이 분열된 후 카르타고가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서 부상해 BC 300년경까지 지중해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국이 되었다. 로마의 성장은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의 야심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BC 264년에 제1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났다. 로마는 당시 해군국은 아니었지만 3단노선과 4단노선으로 갤리선 함대를 만들었다. 이중 4단 갤리선은 카르타고의 것을 본떠서 만든 것이었다.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에게 있어 승선은 이차적인 전술이었다. 반면 로마의 한 함장은 충각으로 적선을 들이받고 건널판자를 떨어뜨린 다음 로마의 수병들이 적선에 승선하여 적을 제압하게 했다.
로마는 상선들을 호송하고 해적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보다 가벼운 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리부르니안(liburnian)이었다. 이것은 본래 가벼운 쾌속 1단노선이었는데 여기에 로마인들이 제2단의 노를 추가한 것이다. 악티움 해전(BC 31)에서 옥타비아누스의 노련한 함대 사령관 아그리파가 리부르니안을 이용해 성공을 거둔 이래 리부르니안은 로마의 주력 군함이 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면서 서방에서의 해군활동도 쇠퇴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에서는 해군력이 필요했으며, 11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의 통치자들은 잘 조직된 함대를 유지했다.
군함의 선형은 그리스어로 드로몬(dromon)으로 불린 리부르니안이었다. 동로마 제국의 그 오랜 존속기간에 군함은 의장과 병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투사물 발사기들은 규모가 커져, 무게가 450kg이나 되는 투사물을 685m의 거리까지 쏘는 것도 있었다.
적함 방화용의 가연성 물질인 그리스 화약은 7세기나 그 이전에 발명되었다. 이것은 8세기초부터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공격하는 이슬람 함대에 위협을 주어 물러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이킹 시대가 시작되는 800년경 스칸디나비아의 초창기 배는 앞뒤 모양이 같고 뱃전을 겹붙인 갤리선으로 발전했다(→ 바이킹선). 이 배는 쇠못을 박아 붙이고 타르를 칠한 로프로 틈을 메워서 만들었다.
외돛대와 가로돛은 전투시에는 내리도록 되어 있었으며, 높은 이물과 고물에는 각각 떼어낼 수 있는 용두(龍頭)가 달려 있었다. '긴 배'로 알려진 이 바이킹의 배들은 콜럼버스 시대 이전에 그린란드와 아메리카를 탐험하고 스칸디나비아의 왕국들을 통일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바이킹들의 영국 침공을 포함해 광범위한 약탈과 정복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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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노와 충각 시대의 군함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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