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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함 공격 수단으로 미사일과 유도탄을 사용하는 시대의 군사력을 해상으로 확대하는 데 주요수단으로 사용하는 배.
제2차 세계대전 중반까지 항공모함이 전함 대신 현대 해군의 중핵을 확실히 차지하게 되었다.
전후 제트기와 원자력선 추진의 발달은 작전 행동의 반경과 속도를 늘렸다. 그와 동시에 항공기와 잠수함에는 물론이고 가장 작은 수상선에도 탑재할 수 있는 신형 대함(對艦) 유도탄이 개발되었다. 이 미사일은 대공포(對空砲)의 사정 밖에서 발사될 수 있기 때문에 항공모함에 특히 위협적이었다. 또 무인피사체(無人被射體)라서 방어를 위한 발포를 해도 그 진로를 쉽게 이탈시킬 수 없었다.
주된 방어 수단은 그 미사일이나 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할 수 있는 유도탄을 이쪽의 함대에서도 갖추는 것이었다.
증기추진은 증기 터빈의 보일러를 가열하는 데 핵분열을 이용하는 것으로서 그 발전이 극에 이르렀다. 1945년 원자력을 선박 특히 잠수함에 이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1955년 미국은 핵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진수시켰다.
20년이 지나지 않아 영국·소련·프랑스·중국까지 핵잠수함을 운용했다. 1950년대 미국은 수상선용 원자력 발전소도 개발하여,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호송함에 설치했다. 이 개발에 돈은 많이 들었지만, 수상선에 사실상 고속도에서 무한대의 행동 반경을 부여했다. 보다 소형의 호송함들도 일관성있게 강력한 추진력을 일으키는 가스 터빈의 개발에 의해 성능이 향상되었다.
장갑의 역할은 1945년 이후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군함에 최대의 위협인 항공기가 이제는 유도탄과 갑판의 가장 두꺼운 장갑도 관통할 수 있는 폭탄을 탑재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군함의 새로운 미사일 무기와 컴퓨터·레이더 등은 과거의 포·포탄·화약이 차지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그런 공간에 가장 가벼운 피복 이외에 무엇이건 씌우자면 무게가 엄청나게 늘었을 것이고, 따라서 아주 크고 값비싼 선체가 필요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重)공격 항공모함은 3가지 역할을 개발했다.
바다와 연안의 목표물들에 대한 공습(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에 의한), 다른 선박들에 대한 장거리 방공망(防空網) 제공, 대잠수함전의 지원 등이 그것이었다. 단 잠수함을 실제로 파괴하는 일은 다른 군함에 일임하고 있었다. 이런 역할들을 맡으려면 제트 항공모함이 워낙 거대해졌기 때문에 강대국만이 건조하고 운용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35년 동안 미국과 프랑스만이 본격적인 규모의 항공모함을 운용했다. 미국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8만t에 길이 305m의 거함들을 만들었다.
소련은 1983년에야 대형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전후 항공모함을 설계하는 데 있어 기술상의 주된 발전 가운데는 1951년 완성된 수압식 비행기 발사기가 있었다. 제트기를 고속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착함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착함제동장치가 필요했다. 착함 관제도 향상되었기 때문에 조종사는 중대 결정을 보다 신속히 내릴 수 있었다.
1955년에는 현대식 제트 항공모함이 출현했다.
그것은 증기(蒸氣) 사출기, 각이 진 비행갑판, 조종사의 착함 관제를 향상시킨 거울식 착함장치 등을 갖춘 것이었다. 이처럼 완비된 제트 항공모함 제1호는 1955년 취역한 미국의 '포리스털호'였다.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미국의 '엔터프라이즈호'는 1961년 취역했다. 그 배에는 원자로 8기(基)가 장치되었으며, 1 번의 연료 보급으로 3년 이상을 항해할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배수량 7만 5,700t의 무게에 100대의 제트기를 탑재했으며, 30kn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1975년부터는 니미츠(Nimitz)형이 엔터프라이즈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8만 1,600t급의 항공모함들은 단 2기의 원자로를 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속도는 엔터프라이즈에 맞먹었으며, 그 우라늄 핵심은 13년에 1번만 갈아주면 되었다. 소련과 프랑스는 1980년대에 원자력 항공모함을 개발했다.
대형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운용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연료·무기·정비의 양이 막대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트기에 필요한 사출기와 착함제동장치의 복잡성과 규모 때문이기도 했다. 1960년대말 영국은 제트 전투기 해리어(Harrier)를 개발했다. 이 전투기는 수직으로, 또는 유료하중이 무거우면 단거리를 구른 뒤에 이함(離艦)할 수 있는 비행기였다. 항공모함을 이 V/STOL(vertical/short take off and landing:수직/단거리 이착륙) 제트기로 장비한다면 완전한 제트 항공모함보다 훨씬 작게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사출기도 착함제동장치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영국은 이런 항공모함 3척을 건조했다. 그것이 인빈서블(Invincible)형이다. 이 2만t급의 배들은 시해리어(Sea Harrier)기 8대와 12개 가량의 대잠함(對潛艦) 헬리콥터를 탑재했다. 이 배에는 시해리어기의 단거리 활주 이함을 돕기 위해 비행갑판 끝에 위쪽으로 경사진 '스키점프' 장치도 마련되었다.
이탈리아·스페인·소련 등도 헬리콥터와 V/STOL 제트기를 탑재하는 경항공모함들을 건조했다.
미국은 1960년대에 착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호위항공모함들의 후신으로 이오지마(Iwo Jima)형, 타라와(Tarawa)형, 와습(Wasp)형의 상륙공격함들을 잇달아 건조했다. 타라와형과 와습형은 헬리콥터와 해리어기를 탑재하는 것 이외에 상륙용 주정진수를 위한 요갑판(凹甲板)이 있는 구조로 제작되었다.
순양함과 전갑판(全甲板) 경항공모함의 중간 형태가 헬리콥터 항공모함이다. 그 탁월한 전형은 1967년 선보인 소련의 1만 7,000t급 모스크바(Moskva)형이다.
1945년 이후 항공모함을 지원하는 수상선의 가장 중요한 추세는 선형(船型)의 혼합이었다. 1945년에 순양함은 장기간 단독으로 운행할 수 있는 장갑의 거포함(巨砲艦)이었다. 구축함은 본함대를 보호하는 전위 함대의 일각을 이루었다.
프리깃함은 비행기와 특히 잠수함의 공격으로부터 상선대를 호위하도록 설계된 보다 속도가 느린 군함이었다. 이 일련의 구별이 1950년대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프리깃함이 신형 쾌속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함에 필적하는 속력을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소형 구축함에 보다 흡사해졌다. 그와 동시에 대부분의 순양함이 장거리 대공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됨으로써 사실상 초대형 구축함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 3개의 선형이 모두 대공(對空)·대잠(對潛)·대함(對艦)의 전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기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동향은 포에서 유도탄으로의 전환이었다.
1990년 유도탄의 사정거리는 단거리 대(對) 미사일용 미사일의 약 4해리에서 장거리 대함 미사일의 300해리 이상에 걸쳐 분포했다. 이 미사일들 중에는 음속 2배의 속력으로 비행하는 것도 있었다. 반면 주포(主砲)들은 그 수와 크기가 계속 줄었다. 1990년에 이르러 완전 자동포가 원격조정되었다.
거포 순양함들의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착공된 배들이 완공되면서 그 막을 내렸다.
1961년 미국은 '롱비치호'를 취역시켰다. 이 배는 용골 위 전체를 유도탄으로 장치하는 순양함으로 설계된 최초의 함선이며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최초의 수상 군함이었다. 이 1만 4,000t급 배에 뒤이어 미국의 원자력 추진 순양함이 일련으로 나오다가 1970년대에 1만 400t급의 버지니아(Virginia)형이 등장했다. 이 버지니아형은 1980년대에 7,400t급의 가스 터빈으로 추진하는 타이칸더로가(Ticonderoga)형 순양함들로 보완되었다.
버지니아형과 타이칸더로가형은 모두 재래식 탄두나 핵탄두를 끼울 수 있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로 무장되었다. 타이칸더로가형 배들은 2대의 잠수함 추적용 헬리콥터를 탑재했고, 적대물을 추적하여 미사일 방어를 지시할 수 있는 고도로 복잡한 이지스(Aegis) 레이더 체제를 갖추었다.
1973년 소련은 2만 2,000t급 키로프(Kirov)형 원자력 순양함 제1호를 착공했다. 이 모형은 무기·속도·항속거리 등에서 버지니아형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잠수함이 고속화되자 많은 형의 구축함과 프리깃함이 잠수함을 추적하는 데 헬리콥터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 형의 배들은 순양함과 마찬가지로 수중음파탐지기와 레이더 감지기를 갖추었다. 또한 적대물의 신속한 탐지 및 식별과 발사 자료의 컴퓨터 입력을 위한 전자 장치도 설비되었다.
이처럼 복잡한 장비로 채워진 배는 30kn 이상의 속도를 낼 만큼 빠르고, 항속력(航速力)도 뛰어났으며, 항속 시간도 길었다. 따라서 이것은 구축함과 프리깃함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취역했던 동종의 군함보다 대형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1960년대 미국의 해군 군함으로 취역한 디젤엔진의 뉴포트(Newport)형 LST들은 만재배수량(滿載排水量)이 8,000t을 넘었으며, 수륙양용정(水陸兩用艇)과 전차를 비롯해 그밖의 전투용 운반수단들을 400명의 병사와 함께 최고 20kn의 속도로 수송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LST들은 단순히 전차와 병사들을 바닷가에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반면 이 뉴포트형 LST에는 늘일 수 있는 수압식 이동트랩이 장치되어 있었다. 때문에 전차 바닥에 실린 수륙양용정이 선미(船尾)의 출입구로부터 양륙(揚陸)되는 동안 운반수단과 군인들은 이 이동트랩을 이용하여 상륙할 수 있었다. 앨리게이터(Alligator)형 LST는 소형 소련제 뉴포트였다.
1970년대 이용되기 시작한 가스 터빈을 이용한 동력으로 공기부상식 상륙정의 배치가 가능해졌다.
이 상륙정이 바로 약 50kn의 속도로 운항해 전차와 군인을 상륙시킬 수 있는 해군의 호버크라프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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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유도탄 시대의 군함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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