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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배의 동력으로 돛, 배의 무기로 총포를 쓰는 시대에 군사력을 해상으로 확대하는 데 주요수단으로 사용하는 배.
13~14세기 전투 때 오랫동안 우위를 점하고 있던 노의 역할이 끝날 만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1200년경 고물의 키가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긴 배는 진정한 범선으로 변모되었다. 15세기말 대형선박들은 4개의 마스트를 세우고 8개 이상의 돛을 달았다. 세 돛대의 범선은 마스트마다 대형 돛을 1개씩 달고 메인톱세일(주돛대의 주돛 위의 돛)과 선수사장(船首斜檣) 아래의 스프리트세일(스프리트로 펴는 돛)을 갖추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가 바로 이런 의장을 갖추고 있었다.
화약의 발명과 세계 탐험의 시대는 병선이 상선과 보다 뚜렷이 구별되게 할 변화들을 가져왔다.
총포는 15세기말까지 지중해의 갤리선에서 작은 역할만을 했다. 그러나 15세기말 고정된 포대(砲臺)가 선수(船首)의 중심선에 배치하는 활동(滑動) 포대로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선수포(船首砲)로 불린 이 총포들은 처음에는 연철로 제작되었지만 1500년 이후 놋쇠로 대체되었다. 이 총포들 가운데는 무게가 27kg이나 되는 포탄을 발사하는 것도 있었다.
대포로 무장한 군함들로 대양을 누빈 최초의 나라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고 그 다음이 프랑스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초로 진정한 항양(航洋) 전투함대를 창설한 것은 영국의 헨리 7세였다. 그후 헨리 8세의 함대는 포문(砲門)을 처음으로 설치하여 진정한 중포무장함(重砲武裝艦)이 되었다.
16세기의 큰 군함 1척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전함들처럼 크고 작은 포를 많이 탑재했다. 헨리 8세의 가장 유명한 군함 '앙리그라스아디외호'(Henry Grce à Dieu)가 1514년 처음으로 완전무장되었다. 당시 그 배에는 쇠로 만든 '거포'(巨砲) 다수를 포함해 186문의 포가 실려 있었다.
17세기에 이르러 포와 화약도 개량되었다.
헨리 7세와 헨리 8세의 '거함'들은 대형 무장상선인 캐러크(carrack)선이었다. 이 배들은 상선을 바탕으로 해서 설계자가 보다 단단한 목재와 마스트·범력(帆力)·현측포(舷側砲), 높이 쌓은 선수루(船首樓)·선미루(船尾樓) 등으로 임전 능력을 보강한 것이다.
캐러크의 뒤를 이은 갈레온(galleon)선에서 군함 조종의 일반 원칙이 확립되었다. 캐러크선의 높이 쌓은 선수루는 맞바람을 받아 배의 조종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갈레온선의 설계에서는 배제되었다. 그결과 배는 내항성(耐航性)이 월등하게 향상되었다.
16세기 중반에는 군함들이 28문 이상의 적선 공격용 포로 강력한 현측대포(舷側大砲)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즉 규모면에서 과거의 군함들보다 더 중무장한 것이다. 배를 다루기 쉽고 기동성있게 하기 위해 영국인들은 비교적 큰 대포를 현측에 장치했다. 그래서 영국 군함들은 떨어져서 싸우기에 유리하도록 설계되었고, 영국 함대는 배들의 우월한 기동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1588년 스페인의 아르마다(Armada:무적함대)와 싸울 때 영국 해군은 적선 격침용 포를 중심으로 하는 해전을 벌였다.
이것은 충각으로 적선을 들이받고 적선에 뛰어들어 접전으로 적군을 살상하는 재래식 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역사적인 해전으로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대포를 중심으로 한 해군의 보다 위대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 후기의 갈레온선이 진정한 이 계열 전투정(戰鬪艇)의 효시이다. 이 함정은 1610년 진수된 영국의 '프린스로열호'와 1637년 진수된 보다 대형의 '소버린오브더시스호'(Sovereigen of the Seas)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이 2척의 배는 3층의 갑판에 현측대포를 설치하고 있었다. 소브린오브더시스호는 대포가 100문이었고 배수량이 약 1,500t에 달했다. 미즌마스트(mizzenmast)의 큰 세로돛이 없어져 높이가 줄고 그후로 주력함에 의장된 표준 세 돛대만 남았다.
배들은 이내 다른 범주로 표준화되기 시작했다. 제임스 1세는 배를 4개의 종별로 편제했고, 17세기 중반까지 아직 체계를 이루진 못했지만 일반개념으로 6개의 '등급'이 존재했다. 그 등급은 배에 장착된 포의 수에 따라 결정됐다. 17세기에 치열한 해전이 빈번히 벌어진 결과 종진(縱陣)이라고 불리는 중군함(重軍艦)의 1열 대형이 개발되었다.
종진 대형은 모든 군함이 앞에 있는 군함의 뒤를 따라 항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대열에 있는 모든 배가 측현포로 발포할 때 시계를 가로막는 것이 없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보다 강력한 군함들만이 '전열에 낄'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700년대에 전열함(戰列艦)이라는 용어가 생긴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1~4등급의 전열함들은 단단한 쾌속 프리깃함을 요함(僚艦)으로 거느렸다.
현대 순양함의 전신인 이 프리깃함은 18세기 중반에 공격용으로만이 아니라 정찰용·순찰용·호송용으로도 개발되었다. 프리깃함은 단층포열갑판에 주포열(主砲列)을 설치하고 선수루와 후갑판에 다른 포들을 탑재했다. 전열함과 같이 프리깃함도 규모와 장비면에서 등급의 차이가 있었으며, 탑재포는 24~56문까지 있었다. 아직도 보존되고 있는 2개의 전형적인 함이 미해군의 대포 44문을 탑재한 '콘스티튜션호'와 38문을 탑재한 '콘스털레이션호'이다.
프리깃함들이 해상봉쇄·호송·상선공격 등과 그밖의 임무를 수행할 때 그보다 작은 배들이 조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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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총포와 돛 시대의 군함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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