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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위빠사나 명상을 대중화시키고 세계적으로 자리 잡도록 이론을 정리하고 수행을 체계화시킨 사람이 바로 마하시 대선사다.
마하시 대선사는 1904년 미얀마의 만들레이에서 북쪽으로 114km 떨어진 유서 깊은 도시 쉐보(Shwebo)에서 11km 더 들어간 농촌 마을 세이쿤에서 출생했다. 6세에 인근 피마나 수도원에서 승려 생활을 처음 시작했으며, 6년 후에 수도원의 원장인 우 아디짜(U Adicca) 은사 스님으로부터 ‘신 소바나(Shin Sobhana, 상서로운 자)’란 법명을 받아 정식으로 사미가 되었다. 마하시 대선사는 경전에 뛰어난 지식을 가졌으며 1923년 11월 26일 정식으로 니말라 수메다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마하시 대선사는 계를 받은 4년 후에 정부에서 실시하는 공인 시험인 팔리 초 · 중 · 고급 과정 시험을 모두 통과했으며 1941년 6월에는 정부가 실시한 법사 고시에 합격했다.
1938년 마하시 대선사는 고향 세이쿤으로 돌아와 첫 3인의 제자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가르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근 쉐보와 사가잉 지역에 마하시 대선사의 위빠사나 수행 지도에 대한 평판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명상 센터를 건립해서 수행을 널리 퍼트리겠다는 염원을 가졌던 우 트윈이 직접 수행을 받아 보고는 스님의 고결하면서도 온화한 성품에 자신이 찾던 분이 바로 이분임을 깨닫고 마하시 대선사를 양곤으로 모셔 왔다.
1949년 12월 19일 시작된 마하시 수행 센터의 첫 집중 수행에는 25명의 수행자가 참가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동안 수행자들은 자신이 수행 중에 경험한 일들을 매일 마하시 대선사에게 이야기하고 점검받았다. 수행자들을 직접 점검하고 지도하는 방법은 마하시 대선사에 의해 채택되었으며 수행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성공적인 지도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마하시 대선사는 남자나 여자,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수행의 문호를 항상 열어 두었다.
이런 마하시 대선사의 수행 지도 방법 덕택에 자질 있는 제자들에 의해서 위빠사나의 씨앗은 미얀마 각지에 뿌려지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500여 곳에 마하시 수행 센터 분원이 생겼으며, 이웃 나라인 태국과 스리랑카 등지에도 마하시 대선사의 직제자들이 지도하는 분원이 생겨났다. 1973년 마하시 센터 건립 23주년이 되던 해, 양곤의 수행 센터에서 수행한 수행자는 60만 명이 넘었으며, 태국, 스리랑카, 인도, 캄보디아 등지에서 수행한 수행자를 모두 합하면 70만 명이 넘었다.
이후 마하시 대선사는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 위빠사나 수행을 전하였다. 1938년 처음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한 이래 1982년 8월 14일 78세를 일기로 입적할 때까지 44년간,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한 것은 물론이고 불교 서적 67권을 저술했으며 많은 법문으로 중생들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남겼다.
오늘날 마하시 대선사의 직제자였던 우 빤디따 스님, 우 실라난다 스님, 우 자나카 스님, 우 쿤달라 스님, 우 자띨라 스님 등에 의해서 수행 지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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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콘텐츠는 2014년 4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현지 사정에 의해 정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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