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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99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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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시인들인 최영미 · 신현림 · 박서원 · 허혜정 · 허순위 같은 여성 시인들은 높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최영미와 신현림, 박서원과 허혜정, 그리고 허순위는 시에서 흔히 여성 됨에 대한 의미를 탐색한다. 이들의 시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은 동질성과 이질성이 서로 겹쳐 있다. 최영미는 도발적인 언어로 1980년대의 시대적 아픔 위에 개인적 상처를 겹쳐놓고, 신현림은 다양한 시각 자료를 시적 언어로 끌어들이며 여성 정체성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박서원이 무의식의 영매(靈媒)로 저 어두운 무의식의 지평을 떠도는 불가해하고 난폭한 이미지들을 마구 분출한다면, 허혜정은 위악적 상징주의로 힘과 권위의 표상인 현실 속의 대표적인 남성―아버지를 기둥서방, 쪼개진 남근, 망나니 같은 이미지들로 변주하며 남성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그려 보인다. 이에 비해 허순위는 훨씬 온건한 어법으로 영혼의 정화와 재생의 상징 공간인 우물 속으로 내려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과 자기 정화를 통해 순결한 여성성을 보유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여성 시인들의 시는 김정란이 박서원의 시를 두고 말한 것처럼 “독자의 의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따라서 “그녀(들)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아라는, 불안한, 어쨌든, 삶 또는 운명이라는 무정형의 괴물과 맞닥뜨려 싸우기 위해서, 인류가 온갖 인간적 가치들의 등뒤에 숨어서,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이, 구획 정리를 해두었던 울타리가 유린당하는 것을 바라본다는 뜻이다.”각주1) 이 여성 시인들은 남성 지배 사회가 오랫동안 꾸며온 그릇된 신화를 벗겨내고 여성성, 또는 여성의 자기 정체성의 진실을 돌이킬 수 없이 드러낸다. 그들은 아직도 남성이 움켜쥐고 있는 문학 권력에 의한 추인과 상관없이 여성성이라는 주목할 만한 의미소(意味素)를 저희의 시 세계 속에서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여성은 저희를 메마른 상태 속에 방임하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창조의 샘을 풍요롭게 가꾼다. 박서원 · 허혜정 · 허순위 같은 도상의 시인들, 그리고 이들의 뒤를 잇는 더 많은 새로운 여성 시인들이 문학 제도의 바깥에서 제도 안으로 들어설 날을 꿈꾸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넘어, 저희의 고유한 언어로, 저희의 독자적인 문법으로 문학 담론을 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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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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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넘어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5, 장석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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