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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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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金龍澤, 1948~ )은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 때문에 멸실의 운명에 처한 농업 현장에 남아 그 실상을 증언하는 중요한 농민 시인이자 빼어난 서정 시인이다. 김용택 시의 밑자리는 그가 나고 자란 섬진강 언저리 임실 땅 진메 마을이다. 농경 사회의 인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곳 사람들이 보고 겪는 생활 현장의 풍부한 실감 때문에 시인의 상상력은 뻗어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제약된다. 그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피폐한 농촌의 비극적 실상을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시가 품고 있는, 자연의 섭리와 내면 깊이 교감하며 길어내는 정서의 근원성 때문이다.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김용택은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82년 창작과비평사의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다. 섬진강 곁에 거처를 두고 초등 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그는 이제까지 시집 『섬진강』(1985) · 『맑은 날』(1986) ·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 『꽃산 가는 길』(1988) · 『그리운 꽃편지』(1989) ·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 · 『강 같은 세월』(1995) · 『그 여자네 집』(1998) 등을 펴낸 바 있다. 김용택은 1986년에 ‘김수영 문학상’, 1997년에 ‘소월 시문학상’을 받는다.
오늘날 농촌은 산업 자본주의의 변방에 속하는 사회 단위다. 그 변방에서 삶을 일구는 이들의 나날은 아무래도 고단한 것이기 쉽다. 시인은 그 변방의 삶의 주인인 한 농민의 농업 노동의 수고를 “손 시린 괭이자루 쟁기자루 움켜쥐고 / 언 땅 찍어 파고 / 이라자라 해 뜨고 지는 줄 모르고 논밭 갈고 / 집 들면 / 집짐승들을 살붙이처럼 정들여 키우셨다 / 어깨와 등짝 손바닥엔 굉이가 박혀 / 온갖 연장들을 받치고 / 죽으면 어깨와 등태자리부터 썩는다며 / 죽으면 썩을 삭신 아껴 무엇하것냐고 / 풀짐 볏짐 나무 거름짐 지고 / 힘주어 일어서고 힘들여 걷는다”(「그분」)고 묘사한다.
‘그분’은 우리 농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그 노동의 고단함이 아니다. 그것은 “빚으로 소 사서 빚지고 파니 빚이요 / 빚으로 돼지 사서 빚지고 파니 빚이요”(「태환이형 빚산 타고 가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독점 자본주의 권력들의 수탈에 의해 거덜이 나기 일쑤인 오늘의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독점 자본의 수탈은 그대로 농경 사회의 파괴와 해체로 이어지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말들도 어느덧 사어(死語)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봄갈이, 가을걷이, 가실, 못자리, 씨나락, 괭이, 삽, 지게, 작대기, 바작, 두레, 품앗이, 걸궁, 육자배기, 가뭄, 흉년, 공출, 난리”(「그분」) 같은 농경 사회에서 흔히 쓰던 말들은 우리 시대에 차츰 사라져가는, 멸실의 운명에 처한 말들이다. 시인은 때때로 마른 목소리에 분노를 실어 이런 현실을 질타하기도 한다. 이 때 김용택 특유의 익살과 넉살, 그리고 풍자가 크게 힘을 발휘한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 쌀밥 같은 토끼풀꽃, /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 그을린 이마 훤하게 / 꽃등도 달아준다 /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 고갯짓을 바라보며 / 저무는 섬진강변을 따라가며 보라 /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김용택, 「섬진강 1」, 『섬진강』(창작과비평사, 1985)
김용택은 ‘섬진강’의 시인이다. 시인은 섬진강 곁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정주민이다. 그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농업 노동의 고단함과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촌의 살림살이를 증언한다. 그러나 김용택 시의 빼어난 서정성은 섬진강의 자연과 만날 때 더욱 빛난다. 「섬진강」 연작은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여러 덕목에서 길어올린 넉넉한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퍼가도 마르지 않는 강물과 같은 것이다. 평론가 김수이는 “섬진강은 김용택의 삶에 깃들여 있는 근원이며, 그 근원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부단한 흐름이다.”라고 말한다.각주1) 시인은 섬진강 언저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들, 친구들, 마을 사람들, 즉 정주민들의 삶의 세부를 두루 끌어안으며 그들의 꿈과 한숨, 희망과 절망을 방언과 속어로 비벼 내놓는다.
그러나 농촌살이의 질곡과 고통을 농민의 입을 빌려 말할 때보다 그의 시가 더욱 빛나는 순간은 자연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 교감을 보여줄 때다. 똥이 마려운 시인은 어슬렁어슬렁 강가로 걸어가 아랫도리를 내린 뒤 아무데고 쭈그리고 앉아 “어둠 속에 박힌 하얀 풀꽃들이랑 / 캄캄한 앞산 뒷산이랑 둘러보다가 / 소쩍새 소리 간간이 들으며 / 턱괴고 세상만사도 생각하며” 똥을 눈다. 그러다가 뒷꼭지를 스물스물 간질이는 게 있어 돌아보는 순간 “엉! / 달이구나 / 저 산 삐죽이 얼굴 내미는 늦달과 반가운 물결이구나.”(「뒤를 보며」) 하고 늦달과 강물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 대목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녹아 있는 원초적 조화의 느낌이다. 이런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의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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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최원식, 「노동자와 농민」, 『생산적인 대화를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1997
- ・ 정효구, 「농촌시의 성과와 한계」, 『상상력의 모험』, 민음사, 1992
- ・ 김수이, 「꽃과 가시의 시학」, 『그리운 꽃편지』 해설, 문학동네, 1999
- ・ 이문재, 「집으로 가는 길, 여자에게로 가는 길」, 『그 여자네 집』 해설, 창작과비평사, 1998
글
출처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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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용택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5, 장석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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