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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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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뜰 때』
1996년 12월 31일, 스스로 “자해 성자”라고 주장하는 장정일(1962~ )은 파리발 대한항공 902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내린다. 엿새 뒤인 1997년 1월 6일 오전 10시, 그는 서초동에 있는 서울지방검찰청에 소환되어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출판 경위 등을 조사받는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음란 문서 제작 및 배포 혐의’다. 검찰은 장정일의 구속 영장을 청구한다. 그러나 영장 실질 심사에서 “소설이 이미 출간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검찰에 자진 출두해 조사에 임했으며 법정에서 자신의 작품이 음란물이 아닌 문학 작품임을 인정받고 싶다고 밝히는 등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해서 영장이 기각된다. 그러나 장정일은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된다.
장정일은 우리 시대의 문제 작가로 꼽힌다. 시와 소설과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그가 ‘문제적’인 것은 우리 시대의 제도와 규범으로부터 자주 일탈하며, 이로 말미암아 자주 시대와 불화 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미 1960년대에 레슬리 피들러나 존 바스 같은 사람들에 의해 소설이라는 장르의 세계 갱신력은 남김없이 소진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는다. “소설은 죽었다!”라는 외침은 알고 보면 진부한 외침인 것이다. 소설의 장르적 쇠퇴 현상은 영상 문화의 급격한 팽창과 함께 부각되기 시작한 활자 문화의 전반적인 쇠퇴 양상과 맞물리며 곧바로 문학 위기론으로 증폭된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잦아들고, 이성과 중심과 정전(正典)은 부정되고, 다원주의와 주변부적 가치들이 발호하며 혼재하는 양상이 펼쳐진다. 이윽고 급변하는 현실의 징후를 포착해 그 내면을 반영하던 작가들은 무력감에 빠져든다. 왜냐하면 현실이 작가의 상상력과 의도를 앞질러 갔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머리에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현실 반영적 또는 현실 재현적 상상력만으로는 독자들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 뒤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출구로 받아들여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명제들, 즉 “정전의 부정, 지배 문화에 대한 도전, 저자의 권위에 대한 회의, 독자의 중요성에 대한 인정, 이분법적 분류에 대한 불신, 절대적 진실 또는 의미의 부인, 전체주의와 획일주의의 배격, 그리고 제외된 타자의 발견과 인식” 등은 미래의 현실을 선취한 작가들이 나아갈 길로 비치기에 이른다. “검은 소설”은 그 포스트모더니즘의 끝자락에서 돌출된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장정일, 「아담이 눈뜰 때」, 『아담이 눈뜰 때』(미학사, 1990)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 쓰기에 나서기 전부터 그는 경기관총처럼 쉬지 않고 쏟아내는 요설과 재치, 경박함과 재기 발랄함으로 1980년대 후반기에 활동한 해체시 2세대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다. 1980년대 후반의 약속 없는 세대, 환멸의 세대를 대표하는 촉망받는 시인에서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소설 「펠리컨」을 선보여 소설가로 변신한 장정일은 『아담이 눈뜰 때』를 내놓으며 1990년대 소설의 지형학에서 그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 때문에 단번에 주목받는 작가가 된다.
그가 시에서 희곡으로, 시나리오로, 소설과 비평으로 장르 확산을 시도한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1989년 전작 소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가 나왔을 때만 해도 문단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그 소설은 아직 소설적 육화가 충분하지 않은, 다분히 서툴고 미숙한 소설이다. ‘길게’ 써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이전에 써서 발표한 온갖 잡동사니를 별다른 내적 필연성 없이 마구 버무려 넣어 그는 가까스로 장편 소설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렇게 억지로 짜낸 전작 소설은 아무래도 조악하며, 작가의 미숙성 때문에 그 ‘의미 부재’가 흉하게 불거진다.
이와 달리 「아담이 눈뜰 때」는 매우 뛰어난,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포스트모던한 사회의 물적 기반과 그 황량한 세계의 미로를 헤매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어느 열아홉 살짜리 젊은이의 내면과 경험의 외곽을 경쾌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는 「아담이 눈뜰 때」는 분명히 주목할 만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가운데 하나다. 장정일의 소설에서 담론의 전통적 구조와 그 지배적 규범의 와해를 보게 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장정일은 그 동안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2) ·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 · 『보트 하우스』(1999) · 『중국에서 온 편지』(1999) 등의 장편 소설을 펴낸 바 있는데, 그 때마다 주목을 받는다.
『아담이 눈뜰 때』에 실린 작품 중에서 전통적 소설 양식을 비틀거나 깨뜨리거나 뒤엎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지 않은 작품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인터뷰」 · 「실크 커튼은 말한다」 · 「아버지를 찾아가는 긴 여행」 같은 작품들은 전통적 소설 양식에 길들여져 있는 독자들에게 그 현저한 낯섦 때문에 과연 이런 것도 소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의혹과 혼란을 안겨주기 십상이다.
「인터뷰」 같은 작품은 과연 소설과 연극 대본은 어떻게 다른가, 두 가지가 갈라지는 경계선이 어딘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집의 끝머리에 「말세의 고현학(考現學)」이라는 해설을 붙이고 있는 류철균은 「인터뷰」에서 여러 사람의 무질서한 회상 속에서 춘자라는 대상의 총체성이 복원된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무질서한 회상들의 나열은 춘자라는 대상의 총체성을 분해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여기서 춘자라는 대상의 총체성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범주의 인물들의 관점을 차용해 그 대상을 분해, 파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장정일의 소설은 기존의 소설 양식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난다. 이는 지배적 제도와 질서를 무화(無化)하려는 작가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은연중 드러낸다. 그의 기존 소설 양식의 해체는 과격한 일탈 의지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그 담론 속에 구현된 현실 인식 또는 세계관에서도 관습화된 모더니스트적인 형식과 변별되는 새로움을 보여준다.
장정일을 당대의 어떤 소설가와도 닮지 않게 만드는, 그 새로움의 실체란 다름아닌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들이다. 장정일 소설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들은 하드 록이나 디스코테크 같은 대중 문화에 대한 탐닉, 무절제하고 무분별해 보일 정도로 아무런 도덕적 책무감이 없는 작중 인물들의 내면, 혼 없는 섹스, 충동적이고 찰나주의에 빠진 듯한 작중 인물들의 행동 양식, “나는 일찍 죽은 자들만 믿을 뿐이야 / 나는 마약을 먹고 미친 자들만 믿을 뿐이야”라는 구절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질서나 문화에 대한 반항과 일탈의 정열, “나는 내게 맡겨진 투표 용지에, 엿먹어라 자식들아, 라고 썼을 것이다.”라는 문맥에서 보이는 정치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과 야유, 현저한 자기 방기와 탈이념화, 가부장적인 권위 지우기, 여관방 순례 그리고 혼음과 남색 등 그야말로 수두룩하다. 작가 스스로는 이와 같은 포스트모던적 삶과 일그러진 내면에 대한 탐색에 ‘세기말적 상상력’이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다.
아담이라고 불리는 ‘나’는 디스코테크에서 한 연상의 여류 화가로부터 유혹당한다. 모델 제의를 받은 아담은 그 여자에게 “어차피 이건 과정이 아닌지요. 그럴 바엔 바로 인터코스하는 게 어때요.”라고 제의하고, 두 사람은 곧바로 엉겨붙어 서로 몸을 만지고 빨고 핥는다. 그들은 “한 몸뚱이에 머리가 둘 달린 말같이 뛰놀았다.” 아담이 아틀리에에서 본 펠라티오를 하는 그 여자를 담아낸 그림, 남자의 성기를 물고 있는 여자의 입가에 생긴 섬세한 주름과 이마의 땀방울 묘사, 그리고 원색의 애니메이션 화법과 “아! 좋아.”라고 만화 대사처럼 써넣는 기법 등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의 전형적인 보기다.
아담과 그 주변의 여자 애들, 이를테면 현재와 은선 또한 아담의 현실 인식이나 행동 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약속 없이 만나, 여관방을 순례하고, 섹스가 끝나면 귀에다 헤드폰을 가져다 꽂는”다. 현재는 “섹스를 하지 않을 때는 헤드폰이 그녀의 두 귀를 막고 있고, 음악을 듣지 않을 때는 두 다리 사이가 막혀” 있는 여자 애다. 현재의 삶은 하드 록과 섹스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다.
그녀의 섹스 또한 순수 고독의 형식이다. 그녀의 섹스는 사랑을 위해서나, 출산을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사랑과 출산을 위해 쓰여지는 섹스란, 섹스 그 자체엔 이미 불순스런 것이다. 그녀가 섹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순간적인 자각이며, 자신의 생의 사용이다. 그런 즐거움을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여기의 나에서 다른 삶의 나로 전이해 갈 수 있다.장정일, 「아담이 눈뜰 때」, 『아담이 눈뜰 때』(미학사, 1990)
현재에게 섹스는 “순수 고독의 형식”이고, 이를 통해 그 여자 애가 얻고자 하는 것은 “순간적인 자각”과 “생의 사용”뿐이다. 아담과 현재에게는 섹스도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제것을 바치”는 자기 만족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행위이며, 철저하게 자폐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행동 양식의 한 구현일 뿐이다. 가장 은밀하고 끈끈한 두 성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섹스에서조차 그들은 철저하게 타인을 배제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섹스의 즐거움을 통해 다만 “여기의 나에서 다른 삶의 나로 전이”하기를 바란다. ‘아담’은 열아홉 살의 그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한 것, 타자기와 뭉크 화집, 턴테이블을 하나씩 얻는다. 스스로 욕망하던 것을 얻으나 그는 이미 행복하지 않다. 아담과 현재는 섹스를 하며 저희를 가리켜 스스로 “똥”이라고, “똥을 주워 먹는 개”라고 말한다.
그들의 삶은 “똥”과 같이 철저하게 무의미로 채색되어 있다. 아담은 “가짜 낙원에서 잘못 눈을” 떴고, 따라서 그는 “어둠과 부패”로 문드러진 이 “가짜 낙원”에서 소리내어 운다.
한밤에 비명을 지르고 일어나 앉아, 나는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눈에서 네온이 흐를 줄 알고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 코에 대어보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고 혀에 대어 봐도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가짜 낙원에서 잘못 눈을 뜬 아담처럼. 내 이브는 창녀였으며, 내 방은 항상 어둡고 습기가 차 있다. 어쩌다 책이 썩는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면, 네온의 십자가 아래서 세상은 내 방보다 더 큰 어둠과 부패로 썩어지고 있다. 나는 내가 눈 뜬 가짜 낙원이 너무 무서워서 소리내어 울었다.장정일, 「아담이 눈뜰 때」, 『아담이 눈뜰 때』(미학사, 1990)
그들은 가짜―인공 낙원에서 길잃은 이들이다. 아담과 현재 그리고 은선은 인공 낙원에서 ‘더 많은 자유에 대한 끝없는 갈구’에 헌신한 고립된, 유폐된 자아들이다. 마침내 현재는 그가 자주 가던 디스코 클럽의 10층 유리창을 깨고 길바닥으로 뛰어내려 죽는다. 그 깨짐, 그 파산은 지미 핸드릭스 · 재니스 조플린 · 짐 모리슨 같은 팝 아티스트들이 창조해내는 ‘인공 낙원’ 속에다가 제 존재의 집을 마련하고자 한 키치(kitsch) 세대, 이 포스트모더니즘 세대의 깨짐이고 파산이다. 애초에 그들에게 삶은 뜻없음으로 부풀어 있는 어떤 것이다. 그들은 다만 “질서도 진리도 없는 가짜 낙원에서 유희”만을 즐기다가 익명성 속으로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군더더기 말을 덧붙이자면, 이 소설의 결말은 너무 진부해서 역겹기조차 하다. 어쨌든 장정일은 「아담이 눈뜰 때」라는 이 한 편의 작품으로 1990년대 들머리에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선두 주자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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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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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장정일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5, 장석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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