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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한 집 한
옥 가족 사이의 관계를 표현
어울림의 미학
한옥의 창문은 한국의 전통적인 민족 정서나 인간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리얼리즘의 정수다. 한옥의 창문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여러 전통적인 정서가 물씬 느껴진다. 고즈넉한 겸손과 아기자기한 자유로움, 넉넉한 여유와 은근한 짜임새 등 다양하다. 소박해서 무상하고 풋풋해서 무심하다. 그 많았던 한옥의 창이 모두 다르니 그만큼 한국인의 정서를 모두 담아냈을 것이다. 이런 정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족 생활에 유추될 수 있는 인간관계다. 한옥의 창에는 한국 특유의 여러 인간관계가 표현된다. 한옥의 창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 사람끼리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친구끼리 어깨동무하는 것 같다. 관가정 행랑채를 보자. 나무문과 창호지문이 나란히 서 있다. 모두 두 짝짜리 문인데 크기는 엇비슷해 보인다. 자세히 보면 한 놈은 조금 토실토실하고 한 놈은 날씬하다. 각자 주간(株間) 거리 하나씩을 차지하며 독립적이면서도 한 놈이 다른 놈을 부르면 언제라도 뛰어나가 어울려 놀 기세다. 나무문과 창호지문이 나란히 서 있는 구성은 한옥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언뜻 보면 둘은 서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데 이처럼 친구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좀더 구체적인 친구 관계도 있다. 선교장 동별당은 위로 긴 문과 옆으로 누운 문이 홀쭉이와 뚱뚱이를 보는 것 같다. 둘은 코미디 파트너처럼 사이좋게 어울리며 조화와 협력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가족 관계는 부부의 연부터 시작된다. 충효당 안채를 보자. 똑같은 문이 나란히 서 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될 것 같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서로를 향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언뜻 똑같아 보이지만 조금 다르기도 하다. 한쪽이 그림자를 더 받고 댓돌도 갖추었다. 일심동체이면서도 영원히 남남인 부부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화목해 보인다.
향단은 문 둘이 아예 한 몸으로 붙었다. 흔히 보는 두 짝짜리 문인데 창살 문양을 달리해서 차별했다. 차별은 부부 관계로 읽을 수 있다. 두 개의 문은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살가운 연을 과시하는 것 같다. 다정해 보인다. 왼쪽의 만자살이 굵은 정사각형을 두르고 남편 같다면 그 옆에서 섬세한 세살로 치장한 아내가 다소곳이 함께했다. 혼자 있어도 괜찮을 법해 보이지만 어울림의 미학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두 개의 문양이 어울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부부의 연이다. 화목한 부부 관계를 잘 표현했다.
위치와 기능에 따라 좀더 분명하게 부부 관계로 읽히기도 한다. 나상열 가옥 행랑채를 보자. 창호지문과 나무문이다. 이번에는 친구 관계가 아닌 부부 관계로 읽힌다. 우선 크기가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나무문이 더 크고 둔탁하다. 남편의 이미지다. 창호지문은 세살인데 섬세하고 호리호리한 모습이 여성적이니 아내의 이미지다. 위치도 거든다. 나무문은 광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덕목과 일치한다. 창호지문은 아담한 퇴를 갖추고 방을 품는다.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아내의 덕목과 일치한다. 둘을 합하면 농업시대의 이상적인 부부 관계가 된다. 둘은 거뜬히 서로를 믿고 의지할 만하다.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지만 이것이면 족하다.
한옥의 창이 나타내는 가족 관계 가운데 으뜸은 친자의 정이다. 크고 작은 두 창이 함께 있을 때다. 다 그런 건 아니고 조건이 있다. 크기 차이가 분명히 나야 되지만 너무 심해도 안 된다.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야 한다. 모양과 형태도 너무 다르면 안 된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람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해당되는 조건들이다. 판박이로 닮으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 자식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옥의 창에는 신기하게도 이런 분위기를 나타내는 짝이 많다.
예안 이씨 종가 백원당을 보자. 어미가 새끼를 품는 형국이다. 큰 문이 작은 문을 데리고 나란히 나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실제 어미의 심정과 너무나 닮은 모습으로 친자의 정을 표현한다. 아마도 집 주인이나 집을 지은 장인이 마음속에 어미가 새끼를 거느린 모습을 상상하며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모든 한국인이 가슴 시려하며 똑같이 나누어 갖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정서다.
큰 방이 어미 방이고 작은 방이 자녀 방이면 이런 비유는 완벽해진다. 오죽헌 안채를 보자. 오른쪽은 어머니 방이고 왼쪽은 자녀 방이다. 어머니 방의 문은 크고 자녀 방의 문은 작다. 안채에서 자주 관찰되는 구성이다. 방의 주인과 관련된 기능 형식이 은유적 구성으로 발전했다. 작은 문은 고개를 수그려야 하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지만 이렇게 만든 것은 친자의 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 이외에는 설명이 어렵다. 두 문이 다른 비대칭 구성이지만 친자의 정이라는 더 큰 것을 얻었다.
급기야 가족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까지 발전한다. 창이 셋 이상 있을 때다. 아산 맹씨 행단을 보자. 누가 봐도 가운데 큰 문은 어미이고 양옆의 작은 문은 자식이다. 이렇게 모이면 화목한 가족이 된다. 작은 문 두 개에 미묘한 차이를 줘서 이런 관계를 명확히 했다. 문짝은 왼쪽 것이 넓적하고 오른쪽 것이 길쭉한데 자식 중에도 이런 몸집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왼쪽 것은 문틀이 거의 없고 오른쪽 것은 두꺼워서 전체 크기는 차이가 제법 난다. 그래서 오른쪽 문이 첫째이고 왼쪽 문이 둘째다. 세 문의 높이와 위치도 조금씩 다른데 여기에서 나오는 리듬감은 그대로 가족들이 화목하게 어우러진 모습을 반영한다. 화목한 가족은 줄지어 서 있지 않지만 조화로운 신뢰와 안정적 기품을 드러낸다.
창 세 개를 이용해서 가족 관계를 표현하는 예는 앞에 나왔던 예안 이씨 종가 백원당도 해당된다. 왼쪽의 두 문은 친자의 정을 표현하는데 오른쪽에 문 하나를 더하니 영락없는 가족이 되었다. 왼쪽의 두 문은 크기 차이가 확실해서 어미와 자식 사이를 드러내는 데 모자람이 없다. 자식은 아직 어린아이다. 세 번째 문은 그 크기가 두 문의 중간이 되었다. 좀 커서 서서히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나이쯤 되어 보인다. 문 사이의 거리도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가족의 정은 차고 넘친다. 정말 절묘하다. 가족을 노리고 짜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수가 없다. 아마도 처음에는 리드미컬한 구성미를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하다 보니 아주 분명하게 가족 관계를 표현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집을 짓는 사람 마음속에 화목한 가족이 잔뜩 들어 있을 때다.
창이 셋을 넘으면 가족 관계는 더욱 확실해진다. 물론 숫자만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창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실제로 가족을 보는 것 같아야 한다. 양진당 안채가 최고다. 비단 가족 관계의 표현에서뿐 아니라 창 구성 전체를 통틀어서 현존하는 한옥 가운데 최고다. 한옥 창의 백미다. 창은 모두 다섯 개다. 모두 다르고 다양하기 짝이 없다. 이런 창을 모으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옆으로 누운 놈 셋과 반듯한 표준 문 둘을 교대로 배치했다. 크기와 비례와 형태도 가급적 교대를 유지했다. 그래서 흥겹고 역동적이다. 반듯한 두 짝짜리 문과 정갈한 세살 문이 중심을 잡고 그 사이를 옆으로 누운 창이 교대로 드나들며 흥을 돋운다. 옆으로 누운 창은 아무래도 흥겹게 보이게 마련인데 만살의 간격까지 달리해서 이런 분위기를 강화했다.
이렇게 모인 다섯 개 창은 분명히 가족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번엔 대가족이다. 안채이기 때문에 비유는 제격이다. 두 짝짜리 문을 어미라고 하고 싶다. 위쪽에 난 창호지문 두 개는 우리를 키운 어미의 젖가슴이다. 정갈한 세살 문은 이미지로는 여자이지만 여기에서는 아비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자식 셋이 자유롭게 놀고 있다. 여러 개의 문이 방 안에서 식구들이 뒹굴며 편하게 있는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건강한 가족이 그렇듯 자유로우면서도 균형과 질서를 유지한다. 화목한 가족 스토리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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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주는 편리함과 불편함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한옥이 조금 불편한 것은 더 큰 장점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한옥에 담긴 진정한 미학을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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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어울림의 미학 –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임석재,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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