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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한 집 한
옥
체성감각을 살리는 한옥
체성감각은 사람의 정서, 감성, 건강 등에 모두 중요하다. 체성감각이 적절하게 자극을 받고 깨어 있어야 정서가 안정되고 감성이 순화된다. 혈과 기가 잘 돌아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서구화된 현대 생활은 체성감각을 봉쇄하고 퇴보시킨다. 점점 덜 걷고 자동차만 탄다. 외부와 단절된 실내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면서 땀 흘릴 일이 없어진다. 문명이 발전하면 인간의 소중한 본능이 쇠퇴하게 되는 현상의 하나다.
반면 한옥은 체성감각을 자극해서 살리는 집이다. 체성감각을 정의한 내용 가운데 키워드는 전신, 피부, 자극, 인식, 경험의 다섯 가지다. 모두 한국의 접촉 문화와 좌식 문화에 해당되는 사항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피부가 중요하다. 접촉 문화와 좌식 문화는 살갗을 끊임없이 자극해서 사물에 대한 인식과 경험 능력을 높여준다. 체성감각에는 촉각, 고유 감수성 감각, 압각, 통각, 온도 감각 등이 있는데 살갗을 통해 일어나는 촉각이 가장 대표적이다. 촉각은 다른 감각들을 총괄하는 복합 감각이다. 한옥이 이것의 집합체이니 정말로 지혜로운 집이다.
접촉 문화와 좌식 문화가 바로 살갗의 자극을 통해 촉각을 최대한 살리고 즐기는 생활방식이다. 나상열 가옥 사랑채를 보자. 방 안에서 보았을 때 역광을 받아 낮은 강도로 반짝이는 바닥은 사람의 살갗과 닮았다. 한옥 생활은 이런 바닥에 살갗을 비비며 사는 과정이다. 이런 생활방식은 살갗에 적절한 자극을 줘서 체성감각을 활성화시킨다. 체성감각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바라보는 동네 전경과 뒷산 풍경은 그만큼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을 뒤집으면 교감신경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의 현대 도시인들이 이런 풍경을 보고 시시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된다.
신체 부위 가운데에서는 발이 중요하다. 모든 살갗이 중요하지만 발은 신경이 집중되는 곳으로 특별히 더 중요하다. 발은 인체의 축소판으로 각 내장 기관들과 연결되어 있다. 내장 기관의 신경이 발로 모여 집중된다. 좁게는 심장 다음으로 몸 전체의 혈액 순환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에 제2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발 지압표를 보면 엄지발가락 중간은 대뇌에, 둘째 발가락과 셋째 발가락 밑 부분은 눈에, 발바닥 한가운데는 췌장에, 발뒤꿈치는 생식선에 각각 대응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발바닥은 곧 우리 몸 전체가 된다.
발의 건강이 곧 몸의 건강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발 건강에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통풍과 지압이다. 한국인들은 피곤할 때 신발부터 벗어서 발에 통풍을 시킨 뒤 발바닥을 손으로 주무르면서 "휴~" 하고 한숨을 한 번 쉰다. 발바닥의 체성감각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좌식 문화가 바로 발의 통풍과 지압을 촉진하는 생활방식이다. 맨발로 생활하다 보면 통풍은 말할 것도 없고 발바닥에 지압 효과까지 있다. 하지만 집의 형식에 따라 차이도 있다. 현대 개인주택이나 아파트처럼 바닥이 평평한 집에서는 그 효과가 떨어진다. 평발을 제외하면 사람의 발바닥은 아치형으로 굽어 있기 때문에 평평한 바닥을 걸으면 가운데 부분은 지압 효과가 약하다.
한옥은 다르다. 오르내림이 많은 구조라서 발바닥 가운데 부분까지 지압이 된다. 마당에서 기단과 댓돌을 밟고 대청으로 오르는 동선이 그렇다. 모두 계단을 오르는 동작이기 때문에 발바닥을 펴게 되거나 발바닥의 가운데 부분이 돌의 모서리와 접촉을 하게 된다. 건넌방을 오가는 짧은 거리에서는 마당을 맨발로도 많이 다녔다. 신발을 신더라도 요즘처럼 밑창이 두껍지 않은 짚신이었기 때문에 맨발로 다니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구조를 오르내리며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발바닥의 체성감각을 자연스럽게 자극하게 된다.
한옥에 오르내림이 많은 이유다. 오르내림이 많은 구조는 보통 한옥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요즘처럼 완전히 평평한 바닥을 기준으로 삼고 옛날 것은 모두 불편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더해서 지레짐작으로 불편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 측면이 많다. 설사 다소 불편하더라도 발바닥의 체성감각을 자극하는 장점과 비교하면 장점이 더 크다. 한옥을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좌식 문화는 끝까지 버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한옥의 좌식 문화는 단순히 발바닥을 자극하는 생리학적 작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체성감각이 유발하는 감성의 순화를 돕는 기막힌 장치를 가지고 있다. 풍경 작용이라는 것이다. 창을 통해 창 밖의 장면과 경치를 액자 속 그림처럼 만들어서 즐기는 작용이다. 기본적으로 창이 있으면 모든 곳에서 풍경 작용이 일어난다. 하지만 한옥은 유난히 풍경 작용이 풍부하고 뛰어나다. 일차적으로는 창의 개수가 많고 여러 곳에 났으며 창 밖 장면과 경치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이런 풍경 작용도 좌식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풍경 작용을 시각 작용으로 국한시키면 입식이나 의자에 앉아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감성 작용까지 고려하면 좌식일 때 그 효과가 단연 커진다. 지면과 눈높이 사이의 밀착이 그 비밀이다. 한규설 대감가 사랑채를 보자. 창 밖 나무를 대할 때 의자에 앉는 것과 바닥에 앉는 것은 차이가 있다. 바닥에 앉으면 눈높이가 지면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나무의 밑동에 시선이 맞춰진다. 나무는 존재가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밑동과 시선이 맞춰지면 그만큼 풍경 대상이 나와 하나가 된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느낌도 여기에서 나온다. 손을 뻗으면 단순히 나무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존재를 만질 것 같다.
여기에 지면과의 밀착이 더해진다. 존재는 뿌리에서 나오지만 그 뿌리를 박는 곳은 땅, 즉 지면이다. 땅을 매개로 대상과 교류하면 서로 존재를 확인하는 힘이 커진다. 레슬링 선수들이 바닥을 뒹굴며 경기를 치르고 나면 적이었던 상대방 선수와 동지적 연대감이 생기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한옥의 공간 구성이 수평 방향으로 확장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수평으로 확장된 구성 중간에 창문을 다양하게 내서 그것들을 좌식 눈높이에서 즐긴다. 한옥에서 창과 문을 같이 사용하는 것도 여기서 나온 결과다. 앉은 상태의 눈높이에 맞춰 창을 내다 보니 창이 바닥에 붙어서 났고 그러다 보니 사람이 드나들면서 문으로도 사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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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주는 편리함과 불편함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한옥이 조금 불편한 것은 더 큰 장점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한옥에 담긴 진정한 미학을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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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체성감각을 살리는 한옥 –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임석재,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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