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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놀이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가변성과 무형은 놀이 기능에 가장 적합한 조건이다. 한옥은 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터다. 그것도 고정된 놀이 기구 몇 개를 늘어놓은 요즘의 아파트 놀이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조작하고 노는 창조적인 놀이터다. 따로 시간을 내서 놀러 갈 필요도 없다. 창문을 열고 닫으면서 집안을 오가는 일이 모두 놀이다. 일상생활 자체가 놀이이니 이것을 담는 그릇인 집은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다.

윤증 고택 사랑채를 보자. 이 집의 차원은 무엇일까. 3차원인지 2차원인지, 아니면 4차원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벽을 세운 목적도 모으기 위해서인지 나누기 위해서인지 통하기 위해서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공간의 성격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실내일까 실외일까. 또한 저 공간은 방일까 마당일까. 뚫린 구멍이 불규칙하고 벽이 어긋나 있기 때문에 집은 곧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하기에 좋은 놀이터가 된다.

한옥의 놀이 기능은 동선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동선은 갈래를 쳤다 합친다. 동일한 목적지에 대해서 질러 가기와 돌아가기가 동시에 가능하다. 지름길과 갈림길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올 수도 있다. 창문을 다 열면 뼈대만 남아 이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집이 되지만 적당히 열고 닫으면 숨고 감추는 데 가장 뛰어난 구조이기도 하다.

도편수 이승업 가옥을 보자. 같은 집의 사랑채인데 이렇게 다르다. 창문을 다 열면 시원시원하고 개방적인 집이 되지만 반쯤 열면 숨을 곳이 많이 나온다. 물론 하나는 앞쪽 대청이고 하나는 뒤쪽 방이긴 하지만 한 곳의 앞뒤에 이렇게 다른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숨바꼭질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어린 딸내미들을 데려가서 풀어놓으면 쫓고 잡고 숨고 찾느라 난리를 친다. 놀이 본능이 살아 있는 아이들이라 금세 알아차린다. 문화재만 아니었으면 말리지 않고 같이 재미있게 놀았을 것이다.

집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기능이다. 어렸을 때 살던 개인 주택을 떠올려보면 잘 알 수 있다. 개인 주택에서는 한두 곳 틈새 공간이 생기게 마련이어서 몸을 숨길 공간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개인 주택도 마찬가지였다. 복도에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곳에 몸 하나 숨기기에 적합한 꺾여 들어간 작은 공간이 있었다. 다락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몸 숨기며 숨바꼭질 놀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다락에는 항상 이불이나 여러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데 그 사이에 몸을 숨기는 놀이는 정말로 짜릿했다. 게다가 우리 집에는 작은 연못 건너 바위 아래 장미 넝쿨이 있었는데 속이 움푹하게 들어가서 역시 어린애 몸 하나 숨기기에 딱 맞는 크기였다. 나는 어렸을 때 이런 여러 작은 공간 사이에 몸을 숨기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이 기억은 나이 50이 넘은 지금도 나의 정서에서 중요한 기초를 형성한다.

숨바꼭질은 어른이 되어서도 꼭 필요한 놀이 기능이다. 어머니 자궁을 그리워하는 것은 나이가 든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숨바꼭질이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놀이라지만 어른에게도 다른 형식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어른이 되면 이런 욕구를 실제 숨바꼭질이 아니라 좀더 성숙한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일종의 심리적 숨바꼭질 같은 것이다. 이성이나 부부 간에 성숙한 관계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거나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며 사색을 즐기거나 하는 방식들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음습한 유흥업소를 찾아 그 욕구를 해결한다.

집도 이런 구실을 해줄 수 있는 중요한 매개다. 집의 놀이 기능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집에서 어머니 자궁 속 같은 포근함을 느끼며 심리적 숨바꼭질을 할 수 있으면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일부러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집에서 먹고 자며 보내는 일상생활이 이럴 수 있으면 최상이다. 한옥에는 이런 숨바꼭질 기능이 넘쳐난다. 한옥의 복합 공간은 숨바꼭질 놀이에 더없이 적합하다. 정말로 신기한 집이다. 관음 작용도 또 다른 중요한 예다. 성도착증이 아니다. 몸을 숨기고 드러내는 정도를 적당히 조절한다는 뜻이다. 보였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드러난다.

심리적 기능도 있다. 한옥에서는 동선에 선택권을 가질 수 있으며 실제로 여러 대안 동선 가운데 그때그때 마음 상태에 따라 골라서 선택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것 자체가 훌륭한 놀이 행위다. 대안 동선이 많다는 것은 집안 이곳저곳을 오가는 이동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심심하다 싶을 때 동선 종류를 바꿔가며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흥을 느낄 수 있다.

김동수 고택 사랑채를 보자. 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동선 덩어리다. 집이 사람의 동선을 제한하고 명령하지 않는다. 일직선 복도를 들이대며 사람을 몰고다니며 겁박하지도 않는다. 그 반대다. 한국인 특유의 오밀조밀한 심성과 장난기, 혹은 신바람 나는 놀이 본능을 집 구조에 옮겨놓은 것이다. 이 집에서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동선의 선택은 오로지 내 몫이다. 사람이 우선이다. 집이 사람에 맞춘다. 사람이 집에 맞추는 것은 그다음이다.

연경단 안채도 마찬가지다. 두 집 모두 가히 복합 공간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집 자체가 복잡한 것은 아니다. 공간은 모두 홑겹이다. 그 대신 공간과 공간이 교합하는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 이는 곧 동선의 갈래와 방향이 다양하다는 뜻이 된다. 정말 신기한 집이다. 방은 앞마당과 뒷마당의 두 면을 외기에 직접 면한다. 이쪽 문을 열면 앞마당이고 저쪽 문을 열면 뒷마당이다. 대청 건너 혹은 마당 건너에는 건넌방이 있다. 건넌방도 이쪽 방과 마찬가지로 동선의 갈래와 방향을 다양하게 만들어낸다. 한옥에만 있는 공간 구성이다. 서양의 주택에는 건넌방이라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