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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시대의 해부학과 생리학
이슬람 문명
로마제국 쇠퇴와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유럽에서 해부학 연구는 6세기 말부터 거의 중단되었고, 7세기부터 급성장한 이슬람 문화가 의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아랍인들이 의학을 주도하게 된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7세기 초에 아랍사막의 유목민과 메디나와 메카의 사막도시의 시민들은 새 예언자를 옹립하였으며, 세계 정복을 꿈꾸는 군인들이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 유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무함마드각주1) 후계자들인 이슬람 군인들은 시리아와 비잔틴의 소아시아와 페르시아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이집트는 싸움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멸망했으며, 사라센각주2) 기병대의 군인들은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돌진하여 결국 지브랄타 해협각주3) 을 건너 스페인을 정복하고 피레네 산맥까지 진군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프랑스까지 밀고 들어갔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자 1백년 만에 카를 마르텔각주4) 과 프랑크족 군인들이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크게 승리하였고 사라센 군대는 격퇴되었다.
이후 전쟁을 일삼던 사라센 사람들은 다시는 피레네 산맥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부터 아프리카와 소아시아를 가로질러 투르케스탄의 동쪽 끝까지 이슬람이 지배한 흔적들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다.각주5)
그런데 침략과 약탈, 파괴를 일삼던 마호메트교도각주6) 들 사이에서 조용한 학자풍의 점잖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유럽의 또 다른 지역에서는 음흉스럽고 믿을 수 없다고 업신여김을 당하던 유태인들조차도 수용소에 보내져 그들의 자질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하여 이슬람인과 유태인들은 3백 년에 걸쳐 의학을 발전시켰다.
아랍 사람들은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처음으로 그 시대 최고의 의학지식을 접하게 되었다. 페르시아에는 유스티니아누스각주7) 황제에 의해 고향 비잔틴에서 축출되었으나 제대로 교육을 받았던 그리스정교 네스토리우스교파각주8) 의 그리스인들이 세운 훌륭한 의학교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의학의 주도권은 콘스탄틴노플각주9) 에서 바그다드각주10) 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라비아 학파들은 남의 이론을 베끼기만 하던 비잔틴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질병을 이해하거나 해부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노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코란각주11) 이 시체해부나 시체훼손을 금지하고 있었던 것이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이슬람 시대의 해부학과 생리학
사람 해부는 중세 그리스도교 시대보다 중세 이슬람 시대에 더욱 위축되었다. 사람 해부는 불법이었고 종교적으로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이슬람 학자들은 신의 전지전능함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해부학 연구를 찬양했고, 실제 이것을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에 사람해부에 관한 몇 개의 의학서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중세 이슬람 시대의 사람해부학 지식은 갈레노스의 책을 인용한 것인데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이 갈레노스의 저서를 아랍어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갈레노스는 해부학적 구조물을 고도의 목적론 방식으로 이용했으며,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의 구조와 기능은 완벽하며 목적이 정해져 있음을 강조했고, 이슬람의 의사와 철학자들도 이러한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
갈레노스의 매우 귀중한 생리학 문헌 『인체 각 부위의 유용성(On the uses of the parts of the body of man)』을 아랍어로 번역한 복사본과 『초보자를 위한 뼈에 관하여(On bones for beginners)』와 『근육의 해부학에 관하여(On the anatomy of the muscles)』의 아랍어 번역본이 미국 국립의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중세 이슬람 저술가들은 해부학과 생리학의 역사에 2가지의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째는 관찰을 통한 결과로, 아브델라티프각주12) 가 1200년 무렵 이집트의 대기근 때에 발견했던 사람뼈대(인체골격)를 관찰하여 아래턱뼈(하악골)와 엉치뼈(천골)의 구조를 보다 정확하게 기술한 것이다.
둘째는 시리아의 의사 어빈 알나파스각주13) 가 주장한 허파(폐)를 통해 혈액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어빈 알나파스는 아비센나각주14) 의 『의학규범』각주15) 의 요약집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어빈 알나파스가 저술한 『의학규범의 요약집』은 아비센나가 저술한 해부학에 관한 내용을 비판하기 위해서 주석을 달아 편찬한 것이었다.
어빈 알나파스는 몸 부위별 해부학적 구조에 대하여 순차적으로 주석을 달았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 심장의 오른심실(우심실)에 들어있는 혈액은 갈레노스가 주장한 심실사이막(심실중격)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허파를 경유해야만 심장의 왼심실(좌심실)에 도달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것이 혈액의 허파순환(폐순환)에 관한 최초의 주장이다.
때로 소순환각주16) 으로 불렸던 허파순환을 어빈 알나파스가 주장한 시기는 유럽에서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11~1553년)와 콜롬보(Realdo Colombo 또는 Realdus Columbus, 1516~1559년)가 처음으로 허파순환을 주장한 것보다 3세기 전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의사들이 어빈 알나파스가 저술한 『의학규범의 요약집』에 나오는 해부학에 관한 주석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가 역사학자들의 논쟁 주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의사 알파고각주17) 가 『의학규범의 요약집』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어빈 알나파스의 주석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1547년 출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해부학에 관한 어빈 알나파스 주석이 라틴어 번역본으로 출판되지 않은 채 유럽에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아비센나의 방대한 『의학규범』에는 장기의 질병을 설명하는 장마다 별도로 각 장기의 해부학적 고찰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해부학적 고찰은 이 책의 여러 곳에 나뉘어져 있었다. 그래서 『의학규범』에 수록된 해부학적 고찰 부분을 흔히 다른 저자들이 인용했으며, 심지어 해부학적 고찰 부분만을 모아 별도의 문헌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에 소장된 2개의 문헌에서 『의학규범』에 수록된 해부학적 고찰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의학규범』의 해부학적 고찰에 관하여 어빈 알나파스가 주석을 붙인 요약 글이 두 개 복사본의 가장자리에 기록되어 있다.
아랍과 페르시아의 모든 의학 백과사전에는 갈레노스의 해부학 관점을 요약하여 기술한 해부학 내용이 들어있고, 눈(안구)과 봉합(cranial sutures), 위턱뼈(bones of the upper jaw, 상악골), 뇌실(ventricles of the brain)에 관한 그림들이 함께 실려 있다. 예를 들면, 미국 국립의학 도서관에 소장된알 알라지각주18) 가 저술한 『만수르서』각주19) 에 나오는 뇌실의 그림이나, 아비센나가 저술한 『의학규범』의 복사본에 나오는 봉합의 그림, 아비센나의 『의학규범』에 주석을 붙인 주석집에 나오는 치아와 위턱뼈의 그림, 미국 국립의학 도서관에 소장된 『의학규범』에 관한 어빈 알나파스의 『의학규범의 요약집』 복사본에 나오는 눈과 시각계통의 그림, 어빈 알나파스의 『의학규범의 요약집』에 주석을 붙여 1407년에 출판된 복사본에 나오는 눈과 시각계통의 모식도 등이 있다.
또한 18세기 초반에 페르시아어로 출판되어 미국 국립의학 도서관에 소장된 책에도 시각신경(optic nerve, 시신경)과 눈(안구), 뇌실, 봉합에 관한 그림이 들어 있다. 이슬람 시대에서 사람 몸 전체를 표현한 해부학 그림은 페르시아어 문헌인 『사람해부학』각주20) 이 나오기 전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만수르 해부학』각주21) 의 복사본 2권이 미국 국립의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그중 하나는 가장 초기의 복사본으로 1488년 이스파한각주22) 에 살던 필사자가 쓴 것이다. 다른 것은 미국 국립의학 도서관에 소장된 중요한 해부학 문헌이며, 이 책은 18세기에 이집트에서 백과사전편집자가 저술한 유일한 해부학 문헌으로 생각된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에는 작가 미상의 많은 해부학 논문들과 그림들이 수록된 책들이 소장되어 있다. 아비센나의 『의학규범』에 어빈 알나파스가 주석을 붙인 유명한 『의학규범의 요약집』이 나온 이후로, 해부학에 관한 작가미상의 페르시아 필사본들이 계속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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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저서로는 『송창호 교수가 들려주는 혈액이야기』 전북대학교 출판문화원, 2014년, 『알기쉬운 사람해부학 (2판)』 현문사, 2014년, 『알기쉬운 보는해부학)』 아카데미아, 2014년 등이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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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이슬람 시대의 해부학과 생리학 – 해부학의 역사, 송창호, 정석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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