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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홍차 수업

아삼, 영국에 의한, 영국을 위한 홍차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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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중국의 커가는 갈등

모든 차는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홍차의 경우는 비록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해도, 어떻게 보면 소비처인 유럽이나 좀더 직접적으로 영국의 주문 생산품일 수 있다.

푸젠 성 우이 산에서 부분산화차라는 새로운 종류의 차로 탄생한 것이 그 시작이지만, 이후 영국인의 기호에 맞춰 점점 더 진화하고 발전한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의 필연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홍차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와 정의를 놓고 보면 인도에서 홍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생산 방법이 개선되면서 그전과는 다른 차원의 홍차를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은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거의 200년 동안 차를 중국에서만 수입했다. 처음에는 귀족을 포함한 상류층의 기호품이었지만 18세기 말이 지나면서 아주 가난한 사람을 제외한 국민 대부분이 마시는 필수품이 되었다. 이와 함께 수입량 또한 늘어났다.

한편 중국은 이때까지도 영국을 포함한 서구 국가들과 오늘날의 관점에서 무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조공무역 방식을 고집했다. “우리가 너희 오랑캐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중국차가 필요하면 은을 가지고 와서 우리 조건에 맞춰 사가라”는 자세였다.각주1) 이것은 1792년 영국이 처음으로 중국에 파견한 외교사절의 해프닝으로도 알 수 있다. 당시 영국은 과거의 조공 무역 방식에서 벗어나 오늘날로 보면 주권국가 대 주권국가의 대등한 무역관계를 맺고 광저우 항 외에 추가로 항구 개방을 요청하기 위해 노련한 외교관인 매카트니(G. McCartney)를 베이징에 파견했다.

그런데 건륭 황제를 만나는 과정에서 중국은 매카트니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를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 닿게 찧는 것이었다. 매카트니는 당연히 이 요구를 거절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중국 측에 요구한 어떤 것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영국이 힘으로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아직도 50년이란 세월이 더 필요했고, 결과론적이지만 이런 중국의 태도가 아편전쟁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만드는 데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차의 독점 공급권을 보유한 중국의 불합리한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영국은 대안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영국인들은 또한 중국이 차의 독점 공급으로 엄청난 부를 쌓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근대 문명의 이기를 먼저 활용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설탕, 아편, 고무, 코코아, 커피 그리고 다른 돈이 될 만한 농산물의 생산지를 찾아, 통제하여 이익을 남겨온 지난 100년 동안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중국차에도 적용하려 했다.

더욱이 18세기 말부터 영국은 이미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또한 농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개선을 이루었다. 즉 자본 투자, 소규모를 대규모로 통합하는 방법 등으로 영국은 농업의 효율성을 이뤘다. 영국은 이것을 중국에서도 적용해 차 생산을 위해 대규모 다원과 농업 경영, 즉 규모의 경제와 진정한 과학적 생산을 일으켜 생산성을 훨씬 더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의 영국과 중국의 현실을 놓고 볼 때 이런 일은 불가능했다. 사실 18세기 말엽 영국인이 차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홍차와 녹차를 같은 찻잎으로 만든다는 것조차 19세기 중엽에 알았으며, 중국 또한 이 차의 비밀을 유출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단속했다.

아삼에서의 가능성

제국주의 정책에 따라 영국에 국립식물원이 세워졌고 해외에는 지점이 세워져,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면 바로 전문가를 보내 새로운 종류의 식물을 연구하여 영국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

이러한 업무에 종사했던 영국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Joseph Banks)는 이미 1778년에 인도 북부 지역에서 차가 재배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영국 동인도회사에 전달했다. 비록 영국은 오랫동안 인도에서 차를 재배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중국 무역이 이익이 나는 동안은 이 관심은 학문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고, 조지프 뱅크스의 주장은 무시 되었다.

이는 중국차 무역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거둬들이던 동인도회사가 차의 대체 공급지를 조사하는 데 열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무역은 독점이었고, 이것이 위협받길 원치 않은 것은 당연했다. 또한 당시 영국 동인도회사는 대체 공급지를 찾는 영국 내부의 움직임을 무시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었다.

1823년 동인도회사의 군인인 로버트 브루스 소령이 아삼 지역에서 야생 차나무를 발견했다. 이 시기 영국 내 차 수요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또한 중국과는 점점 더 높아지는 정치적 긴장감으로 무역이 불안정해졌고, 1833년 동인도회사의 중국 무역 독점권이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50년 전과는 상황이 바뀐 것이다.

홍차 생산의 시작

이렇듯 변화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야생 차나무의 발견은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 아삼 대엽종인 야생 차나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중국종과 완전히 다르다는 이유로, 발견한 것이 차나무로 인정받는 데도 여러 우여곡절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1838년 아삼에서 첫 번째 생산한 차 열두 박스가 영국으로 보내졌고, 아삼에서의 차 생산 가능성을 확인한 영국에서 많은 투자자가 나와 아삼 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웠으며 다원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838년은 역사적으로만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아삼차 생산은 이로부터 약 20년 뒤에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그 20여 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가장 큰 시행착오는 비록 아삼에서 차나무를 재배하지만 차나무 종만은 아삼에서 발견한 차나무가 아닌 중국종 차나무로 재배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래야만 중국에서 생산되는 차와 같은 맛이나 품질로 경쟁할 수 있다는 편견이었다. 물론 이것은 중국과 아삼이 기후와 토양을 포함한 자연환경이 다르다는 사실을 등한시한 생각이었다. 많은 논란 속에서 편견은 결국 극복되었다.

중국과 다른 아삼의 기후와 자연환경은 차나무 품종만이 아니라 홍차 가공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오래된 중국식 가공법을 현지 상황에 맞게 수정, 개선해나가면서 영국은 원래 의도한 대로 균일한 품질의 홍차를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완성했고 이것이 오늘날 정통법이라 불리는 방법이다.(정통법의 의의는 정통법과 CTC, 영국식 홍차의 완성 참조)

지금도 고급 홍차의 대부분은 정통법으로 생산되고 있다. 즉, 이전의 수십만의 독립된 중국 가정이 각자의 방법으로 가공한 균일하지 않은 홍차에서 정형화된 방법과 프로세스를 통한 대량생산 체제로써 일관성 있는 고품질의 홍차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맛 역시 이전의 중국차와 비교해 위조를 짧게 한 풀 바디의 강하고 떫은 맛으로, 설탕과 우유를 넣어 먹는 영국인에게 오히려 더 선호되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런 표준화되고 기계화된 방법으로 대량생산된 아삼 홍차가 중국 홍차를 대신해서 낮은 가격으로 폭넓게 공급됨으로써 그야말로 영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지나면서 홍차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삼 홍차 생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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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삼의 자연환경 및 간략한 역사

중학교 지리 과목 수업 시간이었다. 지금은 얼굴만 떠오르는 지리 선생님께서, 세계에서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지역이라며 ‘아샘’을 강조하신 그날 수업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35년이 지난 수업이 어째서 지금까지 또렷한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때는 분명 아삼이라 하지 않고 아샘이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처음 ‘아삼’ 홍차 이름을 들었을 때는 ‘아샘’과 곧바로 연결시키지도 못했다. 어쨌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삼은 홍차와 함께 내 인생에 중요한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인도 동북부에 있는 아삼 지역은 방글라데시가 막고 있어 인도 본토와 좁은 길로 연결된 고립된 섬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그 지역 전체를 아삼으로 칭했으나 지금은 아삼 주를 포함해 총 일곱 개의 주로 분리되었다.

아루나찰프라데시, 메갈라야, 나갈랜드, 미조람, 마니푸르, 트리푸라 등 각 주의 이름이 저마다 참 아름답다. 아삼은 지리적으로 동떨어진 만큼 정치적으로도 고립된 곳이다. 1940년대부터 아삼 분리운동이 있었고 1980년대에는 무장폭력으로까지 나아갔다. 1830년대부터 이어진 착취와 가난에 대한 좌절감이 폭력으로까지 비화된 것이다.

1990년대 정부의 강력한 진압 정책 이후, 아삼 지역의 차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불안정하여 현지 차 산업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 의욕을 꺾고 있다. 최근 아삼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인도인 가이드는 보통의 인도인조차 아삼 지역에 오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에 출간된 인도 관련 가이드북에서도 아삼 지역은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이 많다.

비우호적인 기후뿐만 아니라 아삼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밀림 지역으로, 열병과 문명화되지 않은 듯한 종교 행위 때문에 외부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곳이었다. 인도를 지배한 영국조차 정복 예정지의 우선순위에서 아삼을 제외했다. 13세기부터 아홈(Ahoms) 족이 이 지역을 지배했는데, 이 험난한 자연환경이 인도를 지배한 무굴 제국의 침입도 막아냈을 정도다.

대부분의 왕국의 몰락이 그러하듯이 아홈 족의 국가도 내부 분란으로 미얀마의 침공을 허용했으며, 미얀마가 물러나면서 1826년 영국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 이 무렵에 영국은 아삼의 동부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을 따름이었다.

1823년 아홈 족의 옛 수도 근처인 시브사가르에서 로버트 브루스 소령이 야생 차나무를 발견한 이후 아삼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게 된다. 홍차가 생산되는 장소는 아삼 주에 집중되어 있으며, 아삼 주는 지도에서 보면 마치 아래가 짧은 T자 모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T자 모양의 윗부분을 가로질러 브라마푸트라 강이 기다랗게 흐르고, 아삼 홍차의 주요 생산지들은 이 강의 유역을 따라 위치해 있다. 그래서 아삼 홍차는 브라마푸트라 강의 선물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각주2)

아삼 홍차 생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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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삼주의 차 생산지는 기본적으로 브라마푸트라 강변의 비옥한 토지에 집중되어 있지만, 특히 1823년 로버트 브루스 소령이 차나무를 발견한 시브사가르에서부터 아삼의 동북쪽 끝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지역인 위(Upper) 아삼이라 불리는 둠 두마 지역의 붉은 토양에 위치한 다원들이 최고 품질의 차를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삼의 주요 차 산지는 둠 두마를 포함하여 아래와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브라마푸트라 강은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해 인도 북부를 가로막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오른쪽으로 빙 돌아 다시 왼쪽으로, 즉 T자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 방글라데시까지 흘러와 마지막에 갠지스 강과 만나 벵골 만으로 흘러든다. 굉장히 큰 강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대부분 정글 지역을 가로지르면서 그 유역에 발달한 문명이 없고, 또 마지막이 직접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고 갠지스 강에 합쳐지기 때문인 듯하다.

지도에서 보듯 대부분의 생산 지역은 브라마푸트라 강 상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인도의 중심지인 콜카타에서 보면 벵골 만에서 배로 강을 거슬러 거의 끝까지 가야 하는 먼 거리였다.

이 멀고도 깊은 밀림 속에서 다원을 개척하면서 숱한 현지인이 죽어갔다. 인구가 부족한 지역이다보니 서벵골, 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 다원 일꾼들을 모집해 강을 따라 몇 개월 걸려 올라가는 도중에 배 안에서 절반이 죽어나가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 흑인 노예의 참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삼 홍차의 의미와 특징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1860년 무렵부터 아삼에서는 본격적으로 의미 있는 물량의 홍차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1859년만 하더라도 인도와 영국의 차 무역 규모는 보잘것없었다. 반면 같은 해 중국에서 영국으로 수출한 양은 3만2000톤 수준이었다. 1888년 인도에서 생산된 양은 3만9000톤이었으며 이때부터 인도에서의 수입량이 중국에서의 수입량을 넘어섰다. 1899년 인도에서 생산된 양은 거의 10만 톤에 이르렀고, 중국에서 수입한 양은 7100톤까지 줄어들었다.

더구나 증기 엔진을 이용한 증기선이 아삼 지역에서 생산한 차를 영국으로 운반하기 위해 브라마푸트라 강을 따라 해안가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조직화된 노동력, 증기 동력, 생산의 기계화로 인해 아삼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표준화된 고품질의 차를 대량으로 생산·공급하게 된다. 이로 인해 낮아진 가격은 영국에서의 홍차 소비를 크게 증가시켰고, 1890년경 영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에서 거의 벗어날 수 있었다.

아삼이 세계 최고의 다우(多雨) 지역인 것은 벵골 만에서 올라오는 뜨겁고 습기 찬 공기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지 못하고 비가 되어 내리기 때문이다. 4월에서 9월 사이의 몬순 시즌에는 평균 35도의 더위에 높은 습도로 인간에게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지만 아삼종 차나무는 이런 환경 속에서 특유의 풀 바디의 몰트 향을 품으며 자라난다.

아삼에도 12월에 겨울이 와 2월까지 지속된다. 비록 온도가 13도 아래로는 잘 내려가지 않지만, 차나무도 다음 해 봄까지는 겨울잠을 잔다. 3월은 퍼스트 플러시(first-flush)인 봄 수확을 하며, 늦은 5월과 이른 6월에는 여름 차인 세컨드 플러시(second flush)를 생산한다. 일반적으로 아삼 차는 세컨드 플러시가 가장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FTGFOP급, TGFOP급 단일 다원차는 강건한 찻잎에 그야말로 황금색 골든 팁이 기분 좋게 섞여 있다.

찻잎은 대개 약간 갈색 톤을 띤 검은색에 가깝다. 달콤하게 익은 과일 향이 나는 오랑가줄리(Orangajuli) 다원차를 마셔보면 입안 가득 채우는 바디감에 아삼 홍차 특유의 몰트 향이 더해져 아삼차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선입견을 날려보낸다.

그러나 아삼차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CTC 홍차는 짧은 위조와 산화의 결과로 향보다는 강한 맛이 특징이다. 좋은 정통 차를 마실 때는 차가 입안에서 움직이며 혀를 자극하고 맛과 향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면 CTC 홍차를 마시면 입안에 그냥 덩어리진 무엇인가가 들어오는 것 같다. 그러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 CTC 홍차도 우유와 설탕을 넣으면 또 다른 개성을 지녀 영국인이 오랫동안 좋아했던 홍차로 태어난다.

현재 아삼에는 600여 개의 다원(다원의 정의에 따라 900개라고 하는 자료도 있음)이 있으며 2008년 기준으로 약 49만 톤을 생산했다. 이는 인도 전체 생산 물량인 98만 톤의 절반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는 아삼의 생산량이 인도 전체 생산량의 55퍼센트 수준이며, 일부 자료에는 통계의 허술함을 이유로 70퍼센트까지 보기도 한다. 대부분 CTC로 생산한다.

최근에는 케냐를 포함한 신흥 차 생산국의 CTC 생산 증가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자 많은 다원이 품질을 향상시킨 정통 홍차의 생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실제로 아삼에서 생산된 아주 훌륭한 단일 다원 홍차가 많다.

오랑가줄리 다원을 포함해 두무르 둘롱(Doomur Dullong), 누말리거(Numalighur), 하무티(Harmutty), 하주아(Hajua), 할마리(Halmari), 디콤(Dikom), 모칼바리(Mokalbari), 망갈람(Mangalam) 다원에서 나온 홍차들은 아삼 차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삼을 떠나면서

아삼 홍차를 생산하는 다원의 대부분은 아삼 주를 관통해서 흐르는 브라마푸트라 강가에 위치해 있다. 나는 브라마푸트라 강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고, 또 그렇게 큰 강을 당연히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묘하게도 우리가 움직인 동선은 강을 따라 난 길로 이동하긴 했어도 결국 강가에는 이르지 않았고, 결국 강을 보지 못했다.

가이드에게 몇 번 말을 했지만 가이드 역시 이 지역의 지리를 잘 모르는 듯했다. 티베트에서부터 히말라야 산을 둘러 오는 강. 그리고 이 강을 따라 아삼 개척 시대에 벵골 지역의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갔던 강. 그러고는 또 아삼 홍차가 이 강을 따라 바닷가로 보내져 영국으로 운송된 티 리버(Tea River). 아쉬움을 안고 아삼의 중심 도시 구와하티에서 밤 기차를 타고 다르질링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결국 브라마푸트라 강을 보았다. 며칠 뒤 다르질링 일정을 마치고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이 비행기가 구와하티를 경유하는 것이었다. 구와하티에서 다르질링까지 기차로 6시간 걸렸는데 비행기로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구와하티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눈 아래 펼쳐진 바다처럼 넓은 브라마푸트라 강을 한 번 크게 돌고 델리로 방향을 잡았다. 구와하티는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였다. 비행기에서 강을 내려다보면서, 만일 창가에 앉지 않았더라면 딱히 밖을 내다볼 생각도 못 했을 텐데,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 것만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강물에 손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그건 다음날을 위해 남겨두고 이렇게 눈에 가득 브라마푸트라 강을 담고 아삼과 작별했다. 기분 좋은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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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Kevin Gascoyne 외, Tea: History, Terroirs, Varietes, Firefly Books, 2011, 158쪽

문기영 집필자 소개

경남 창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중앙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하여 16년 동안 마케팅부서에서 핫초코, 녹차,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P..펼쳐보기

출처

홍차 수업
홍차 수업 | 저자문기영 | cp명글항아리 도서 소개

생산부터 소비까지, 홍차에 대한 모든 것!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는 홍차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서다. 홍차의 종류, 홍차를 즐기는 나라, 홍차의 장..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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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산지(産地)를 찾아서 4장. 왜 생산지가 중요한가 5장. 아삼 6장. 다르질링 7장. 닐기리 8장. 스리랑카 9장. 오늘날의 중국 홍차 10장. 케냐와 인도네시아, 홍차 생산의 숨은 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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