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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뭘 세우려고 했던 사람들과, 세우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주장이 무엇이든 서울 시내에 다양한 시각적, 청각적 시간이 공존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공간 하나쯤 있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런 공간으로 만들기에 노들섬은 제격이다. 문득 월드컵공원으로 떠난 맹꽁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맹꽁이들이 이곳으로 돌아올 날은 언제일까.
차를 타고 한강을 따라 가다 보면 크고 작은 섬들이 내 눈길을 잡는다. 거대한 물 옆을 따라 아파트가 펼쳐진 지루한 풍경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 한강의 섬 하나하나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풍류객들이 찾던 봉우리에서 채석장으로, 다시 정수장에서 공원으로 탈바꿈한 선유도가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벌판이라 ‘너나 가져라’는 뜻의 여의도(汝矣島)는 거대한 빌딩숲으로 변해 정치, 경제, 방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더 극적인 건 밤섬이다. 조선시대 조선업 마을이 있던 밤섬은 여의도를 만들기 위해 폭파되어 사라졌다가 한강의 퇴적에 의해 철새들의 섬으로 다시 살아났다. 1970년 이전에는 섬이 더 많았다. 한때 유원지로 유명했던 뚝섬, 압구정 지구 매립을 위해 사라진 저자도, 지금은 거대한 쓰레기산이지만 아름다운 꽃과 갈대밭이 있어 밀회의 장소로 유명했던 난지도······. 아파트로 가득한 잠실은 한때 석촌호수 쪽으로 한강이 흐르던 거대한 섬이었다. 한강의 섬들은 이렇게 때로는 자연 그 자체로, 때로는 문화적 공간으로, 때로는 삶의 공간으로, 때로는 쓰레기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욕망을 기꺼이 받아주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섬이 있다. 바로 노들섬이다. 그전에는 중지도(中之島)라고 불렸다. 노들섬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노들’은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라는 뜻으로, 용산 건너편, 지금의 노량진 부근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노량진’(鷺梁津)은 ‘백로가 노니는 징검돌이 있는 나루’라는 뜻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에 둘러싸여 중세 성 같은 느낌이지만, 원래는 용산구 이촌동 쪽과 연결된 거대한 백사장의 작은 모래언덕이었다. 갈수기에는 여의도보다 더 큰 규모의 모래밭이 갈대로 가득했고, 갈대숲 위로 지는 석양이 아름다워 용산 팔경 중 하나로 불리기도 했다.
1795년(정조 19)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 수원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8폭짜리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에도 노들섬이 등장한다. 행차 마지막 날 노량진 배다리를 건너 환궁하는 모습을 그린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에서 아래쪽이 노들섬이다. 2007년 하이 서울 페스티발(Hi! Seoul Festival)에서는 정조의 화성 행차를 재현하는 의미에서 노들섬에 배다리를 설치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작은 모래언덕의 운명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17년 일제가 이곳에 인도교를 세우면서부터다. 1900년 한강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가 세워졌지만, 차와 사람은 건널 수 없는 기차만을 위한 철교였다. 자동차의 증가와 함께 강을 건너려는 수요가 많아지자, 공사가 용이한 모래언덕에 석축을 둘러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한강 북단 이촌동 쪽과 남단 노량진을 잇는 두 개의 다리를 이어 인도교(현 한강대교)를 세웠다. 일제는 인공섬을 ‘물 가운데 있는 섬’이라는 뜻의 ‘중지도’라 불렀는데, 이때부터 이곳은 작은 모래언덕이 아닌 섬으로 여겨졌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시절에 다리를 밟고 한강을 건너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노들섬은 자연스럽게 유원지로 사랑받았다. 1935년에는 노들섬까지 전차 궤도가 깔리고 ‘한강인도교역’도 생겼다. 노들섬은 일제가 조선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다리 때문에 생긴 작고 보잘것없는 인공섬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근대적 공간을 갖게 된 셈이다. 지금도 둥그렇게 돌아가는 석축의 일부를 섬 북쪽에서 찾을 수 있다.
광복 후 노들섬은 본격적으로 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문화적, 사회적 공간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특히 주변 모래밭은 한강 백사장이라 불리면서,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는가 하면, 대통령선거 유세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표어로 유명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선거 유세를 보기 위해 1956년 5월 3일 30만 명이 백사장에 운집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시작된 한강개발 계획을 위해 모래를 퍼내면서, 아름다운 백사장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강 쪽에 새로 둑을 쌓아 강변도로가 만들어지고, 둑 안쪽은 백사장에서 퍼온 모래로 채워져 10만 평이 넘는 새로운 땅이 조성되었으며, 그 위에 한강맨션을 비롯해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상징했던 동부이촌동 아파트 단지는, 이렇게 한강 백사장과 맞바꿔 만들어진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모래밭은 1973년 콘크리트 옹벽을 세워 노들섬을 매립하여 확장하는 데 사용되면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노들섬은 생태적으로 한강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시간이 정지된 섬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한강개발 계획에 참여한 민간 기업에 섬이 넘어가면서, 서울 시민의 삶에서조차 분리되어 점점 잊혀갔다. 섬 서쪽에 조성된 테니스장만이 서울 시민과 이어주는 끈이었다.
2005년 서울시는 노들섬을 274억 원에 매입하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버금가는 거대한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고 했다. 섬에는 이미 다른 주인이 살고 있었다. 노들섬은 맹꽁이들의 집이었다. 2005년 7월 환경단체가 옛 테니스장 근처에서 멸종위기종인 맹꽁이들을 발견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동물 2급인 맹꽁이는 개구리와 달리 주둥이가 짧고 몸이 넓적한, 둥그런 형태다.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땅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30년 넘게 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노들섬 습지에 자리 잡은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노들섬에 자연이 돌아와 있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맹꽁이 보호를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하이 서울 페스티발 등 서울시 행사를 위해 서식지로 추정되는 곳을 파내 무대를 설치하는가 하면, 산란지로 남아 있던 옛 테니스장 배수로를 흙으로 메워버렸다. 환경단체들은 강력히 항의했고, 결국 서울시는 오페라하우스 공사 기간 중에 맹꽁이들을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 생태 습지로 잠시 옮겨놓기로 했다. 2014년에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면 이동시킨 맹꽁이 수만큼 다시 잡아서 노들섬에 새로 조성될 생태 습지에 풀어놓겠다고 했다. 재개발 때문에 떠나는 철거민처럼, 2010년 맹꽁이들은 월드컵공원으로 떠났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시드니는 올림픽을 위해 홈부시 베이 지역에 있는 500미터 직경의 거대한 물웅덩이 자리에 테니스장을 지을 예정이었다. 브릭 피트(Brick Pit)로 불리는 이곳은 1911년부터 벽돌용 점토를 캐던 곳으로, 경기침체와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1988년부터 문을 닫고 방치되었다. 이 거대한 웅덩이는, 황폐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매드 맥스 썬더돔〉(1985)에도 등장했다. 영화 속 엔티 엔티티 여왕이 지배하는 바터타운(Bartertown) 세트가 있던 곳이다. 환경 올림픽을 표방했던 시드니는 오염되고 버려진 황폐한 땅을 재활하는 차원에서 이곳을 테니스장 부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착공 직전인 1992년 멸종위기종인 그린 앤드 골든벨 개구리(Green and Golden Bell Frog)가 300마리 이상 발견되었다. 시드니는 테니스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 짓기로 결정하고, 이곳에는 개구리를 위한 생태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완공된 생태공원은 거대한 물웅덩이 위에 떠 있는 원형 구조물밖에 없다. 호주 건축가 더바 블록 재거(Durbach Block Jagger)가 설계한 550미터 길이의 둥그런 관람용 인도교다. 얇은 철재와 유리로 만들어진 인도교는 오랫동안 채굴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물웅덩이의 지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개구리 서식지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18미터 높이에 설치되었다. 링 워크(Ring Walk)라 불리는 이 둥그런 인도교를 따라 걸으면, 눈으로는 지난 100년간의 산업화의 흔적을 볼 수 있고, 귀로는 개구리 소리와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는 감동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시드니는 서울과 참 다른 것 같다.
서울시가 맹꽁이를 이주시켜가면서까지 강행했던 오페라하우스 설립 계획은 보류되었다. 2005년 1차 국제 아이디어 설계 공모와 2006년 2차 턴키 공모를 통해 최종 당선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의 작품은 설계비 문제로 무효화되었다. 거기에서 끝은 아니었다. 오페라하우스의 입지와 교통 문제, 환경 파괴 등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복합예술 공간으로 짓겠다고 계획을 변경하여 2009년 초청 공모를 치렀다. 공모전을 통해 국내 건축가 박승홍(디자인 캠프 문박 DMP 소속)의 안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게도 서울시장이 바뀌었다. 서울시장이 바뀌자 노들섬에는 거대한 구조물 대신 농작물을 키우는 텃밭이 들어섰다. 노들텃밭이라 불리는 도심농장이 옛 테니스장 자리에 들어왔다. 서쪽 옛 콘크리트 구조물 앞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맹꽁이논도 있다. 근처에 맹꽁이가 살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시는 오페라하우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도심농장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도심농장은 버려진 유휴지에 농작물을 키움으로써 땅의 생산적 가치를 살려내고, 농사 참여를 통해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많다. 그렇지만 주변과 동떨어진 곳에 조성된 지금의 도심농장은 일상적인 삶과 괴리된 주말농장과 별 차이가 없다. 정작 도심농장이 더 필요한 곳은 한강 한복판의 섬이 아니라, 나날이 공동체 의식이 사라져가는 우리의 흔한 아파트 단지일 것이다.
노들섬을 다시 찾았다. 논쟁의 현장을 뒤로하고, 10미터 아래 둔치로 내려가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섬 남단에 매달린 철재 계단을 타고 위태롭게 걸어 내려가면, 한강 둔치라기보다는 도로 같은 느낌의 시멘트 산책로에 서게 된다. 바로 앞에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 위에 푸른 나무들이 넘실댄다. 한강대교 구조물 밑을 지나 섬 서쪽으로 걸어가면, 콘크리트 옹벽이 비밀의 문처럼 양쪽으로 갈라지고, 한강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계단이 드러난다. 마치 고고학자가 되어 미지의 고대 유적을 탐구하는 것 같다. 오목하게 돌아가는 옹벽 위에 나무 한 그루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서쪽으로 갈수록 녹음이 짙어지며 인간의 흔적이 점차 사라진다. 시멘트 산책로만 간신히 자연의 힘을 버텨내고 있다.
노들섬 서쪽 끝에 서니, 한강철교와 63빌딩이 하늘과 물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뒤돌아보니 버드나무 사이로 저 멀리 콘크리트 옹벽이 보인다. 둥그렇게 돌아가는 모습이 오래전에 버려진 성곽 같다. 군데군데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볍게 목례를 하자 가벼운 웃음으로 답을 한다. 타박타박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니 어느새 높은 갈대밭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문득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불편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도 모르게 고운 모래 위를 걷고 있다. 모래 속에 손을 넣자,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린다. 부드럽다.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과 시멘트 산책로, 수중보에도 불구하고 노들섬에 하얀 모래가 다시 돌아와 있다. 옛날 용산팔경이라 불리던 노들섬이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여의도 제방 건설을 위해 폭파 해체되었던 밤섬이 한강의 퇴적물로 인해 철새 도래지로 살아난 것처럼 산책로의 시멘트를 걷어낸다면 노들섬도 다시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되살아날지 모른다.
산책로를 빠져나와 노들텃밭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숲 속에 버려진 인공 구조물이 있다. 식물들이 집어삼킨 모습이 아주 오래전 고대 유물 같지만, 길어야 40년밖에 안 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노들섬을 점유하려 했던 인간의 욕심이 그렇게 허망하게 남아 있다.
오페라하우스냐 도심농장이냐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쪽은 문화예술적 측면에서, 다른 한쪽은 농경 사회적 측면에서 생산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의지를 자연에 강요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빈 땅은 어떻게든 채워서 활용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생산성에 대한 집착이 느껴진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휴식과 여유가 필수적이듯,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공간이 절실하다. 우리에게도, 호주 시드니의 링 워크처럼 겸허하게 ‘자연의 시간’을 관조하는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다시 돌아온 하얀 모래와 갈대숲에서, 노들섬은 우리가 잊고 살던 ‘자연의 시간’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이제는 노들섬에게 자신의 고유한 시간을 드러낼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문득 월드컵공원으로 떠난 맹꽁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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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3년 지금까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뒤 지금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우리가 사는 집, 집들이 모인 동네, 나아가 우리의 고향인 도시라는 공간에는 온갖 의미와 작동 원리가 숨어 있다.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것으로,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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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노들섬 –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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