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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성지

다른 표기 언어 切頭山聖地 동의어 절두산 순교성지

요약 한국 천주교 순교 사적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 일대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침략하고 물러난 후, 대원군이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 양화진 한강변에서 참수했는데, 그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이곳을 절두산이라 불렀다. 순교 100주년인 1966년 이곳에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고, 천주교는 이곳을 순교 성지로 기리고 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한강변 최고의 절경으로 유명하며 봉우리의 모양에 따라 가을두·용두봉·잠두봉이라고도 불렸다.

절두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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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까지 진격해온 적이 있었는데, 이에 흥선대원군은 "양이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으며 이와 함께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으로 1866년 10월 22일 부인·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천주교측에서는 약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특히 선참후계라 하여 심문과정 없이 바로 처형했기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하며 이때문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잘린 목은 그대로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은 성당·박물관·경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양화진에는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한국선교에 헌신했던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외인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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