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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의 공간

광화문광장

光化門廣場

닫힌 광장에 서서 열린 광장을 꿈꾸다

광화문광장의 권위적인 축선과 동상에서 느껴지는 서양문화 사대주의의 흔적은 여전히 불편하다. 이곳을 사용할 시민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전시 행정의 결과물이자 관료주의의 압축물로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는 시민들이 스스로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공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광화문광장이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만들겠다는 안을 처음 발표했을 때 반가웠다. 군사정권의 대표적인 전시 행정 중 하나인 16차선 광화문로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이 반가웠고, 과밀한 서울 도심에 시민을 위한 여유 공간이 생기는 것은 더 반가웠다. 반가웠던 마음과는 달리 실제로 이곳을 찾은 건 광화문광장이 열리고, 한참 지난 뒤였다. TV 속에 비친 모습이 예상했던 모습과 다르긴 했지만 여전히 기대는 남아 있었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드디어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거대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갔다. 머릿속으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광화문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뻥 뚫린 시원한 풍경을 그리면서 올랐다. 설레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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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를 맞이한 것은 ‘눈부신’ 황금색 동상이었다. 광화문도 아니고 북악산도 아니었다. 황금색 동상은 세종대왕의 동상이라고 했다. 동상의 크기는 물론이요 베이스 크기까지, 크다 못해 엄청났다. 금색은 또 무엇인가. 광화문과 북악산을 가로막고 버티고 선 동상만 보자면 세종대왕은 백성 따위는 안중에 없는 권위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제왕의 모습이다. 유럽의 광장 한가운데서 종종 만나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모습이다. 자신과 너무 다른 동상의 모습을 보고, 세종대왕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꾸짖으실 것 같다. 광화문과 북악산을 가로막는 저 자리에, 저 크기로 세종대왕의 동상을 세우는 것을 처음 생각하고, 거기에 동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동상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광화문광장의 축선(axis)으로 인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축(軸)선은 주로 물체가 회전할 때 고정된 가상의 중심선을 의미하는데, 건축이나 도시에서는 대칭적인 구성의 중심선을 의미한다. 광화문광장은 절대 왕정이나 군사정권에서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주로 활용했던 권위적인 중심 축선 상에 위치한다. 물론 축선의 적절한 활용은 다양한 도시적 요소를 통합하는 데 유용한 디자인 도구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의 광장이 굳이 권위적인 도시적 축선을 따를 이유는 없다. 게다가 요새는 학교 디자인 수업에서도 권위적인 축 얘기를 하면 구닥다리 선생이라고 뒤에서 손가락질을 한다. 디자인 방법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대칭성이 많은 경우 절대 왕정이나 독재정권의 권력을 표현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상징물을 위해 굳이 중심축이나 대칭성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이 그렇게도 충실하게 답습한 축선은, 우리 경복궁의 고유한 축선이 아니라 일제가 우리의 정기를 흩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축선이다. 원래 광화문은 경복궁과 함께 관악산을 향하고 있었는데 일제는 남산에 있던,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를 모신 우리의 국사당(國師堂)을 허물고 그 자리에 일본의 조상신을 위한 신궁을 세우고 총독부 건물을 남산을 향해 지으면서 광화문의 방향까지 틀어놓은 것이다. 몇 년 전에야 일제가 옮겨놓은 광화문을 경복궁의 축선에 맞춰 제자리에 기껏 옮겨놨는데, 일제가 만들어놓은 축선을 충실하게 따른 광화문광장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 보니 그런 축선 상에 앉아 있는 세종대왕의 동선은 시각적인 맥락뿐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불편하다.

이곳을 교통의 섬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저 권위적인 축선은 누구의 생각인가. 세종대왕의 동상을 경복궁과 북악산을 가리는, 일제가 만든 축선 위에 앉힌 것은 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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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광장의 근본적인 목적은 과밀한 도심에 시민을 위한 여유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단지 주말에만 찾는 놀이공간이 아닌, 점심때 간단하게 쉬면서 요기를 할 수 있는 곳, 저녁때 친구와 데이트할 수 있는 곳, 주말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광화문광장은 광장은커녕 마치 ‘섬’ 같다. 실제로 광화문광장은 양쪽 5차선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립된 ‘교통의 섬’이다. 10차선 도로를 나누는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런 ‘교통의 섬’을 즐기기 위해 서울 시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해야 한다. 모두 전근대적인 축선 상의 배치 때문에 생긴 결과다. 게다가 광장이 열리기 전에는 16차선의 광화문로가 10차선으로 줄어들어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며 논쟁이 치열하더니 광장을 만들고 난 뒤에는 정치적 집회를 불허하는 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 이러나저러나 ‘광장’을 둘러싼 논쟁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쓴맛을 다시며 광장을 떠나야 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광화문광장 조감도를 찾아보았다. 조감도를 보면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10차선 도로까지 사람들이 활보하는 활기찬 모습이다. 교통 통제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풍경이다. 이 도심 한복판을 1년에 몇 번이나 전면적으로 교통을 통제할 수 있을까. 큰 국가 행사나 있어야 가능한 모습을 마치 광화문광장의 일상적인 모습인 양 그려놓은 조감도를 보자니 다시 입맛이 쓰다. 교통 통제를 하지 않는 한 광화문광장은 항상 ‘교통의 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일상적인 광화문광장의 모습이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을 만든다는 발표를 듣고 거기에서 국가적 행사를 위한 정치적 광장을 바랐던 이들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시민들이 매일 이용할 수 있는 시민의 광장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광화문광장의 위치는 어디일까.

광화문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앞쪽에 붙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수많은 시민이 활용하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 공간인 세종문화회관과, 도시 문화 공간을 대변하는 광화문광장이 붙어 있었다면 그 풍경은 어땠을까. 세종문화회관 내외부의 다양한 문화행사가 광화문광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행사를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 앉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개의 공간을 이어 붙임으로써 만들어지는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교통대란은 어쩌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보라고 말하면 된다.

서울 시청 앞 공간은 오랫동안 도로에 의해 고립된 ‘교통의 섬’이자 로터리였다. 유일한 볼거리는 분수대였다. 하지만 2004년 서울 시청 앞 교통 체계를 남쪽으로 돌리면서 서울광장으로 새로 탄생했다. 지금은 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자 정치 참여의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그것을 응용하여, 세종문화회관 쪽 5차선을 동쪽으로 넘겨 10차선으로 합쳤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된다. 광화문광장이라고 어려울 것은 없다. 이 도시와 거리의 주인은 차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세종대왕 동상은 어쩌나. 이왕 만든 동상이니 자리를 옮겨보자. 광화문과 북악산을 가로막는 위압적인 자리의 동상을 비어 있는 세종문화회관 계단 중심으로 옮겨보자. 자리만 옮겼을 뿐인데도 권위적인 느낌이 훨씬 덜하다. 심지어 세종문화회관의 이름에 이미 ‘세종’대왕이 계신다. 맥락으로도 지금 자리보다 훨씬 잘 어울린다. 진정한 ‘문화 대통령’의 기원이자 한류의 시작도 세종대왕이다. 교통의 섬에 방치하기보다는 세종대왕을 문화의 중심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좋다.

또 하나의 동상이 남았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순신 장군 동상이 광장의 중심축 선상에 있을 필요는 없다. 무의식적으로 서양의 광장을 답습하는, 중심축에 대한 집착은 서양문화에 대한 우리의 사대주의적 사고를 드러내는 안타까운 증거들이다.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와 로마의 포룸(forum)에서 찾을 수 있다. 광장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나 교황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시민을 위한 공간이었다. 물론 파리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이나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처럼 강력한 중심축을 가진 대칭적인 형태로 절대 왕권과 교회의 권력을 표현하는 권위적인 광장도 있지만, 관광객뿐 아니라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광장은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이나 로마의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처럼 대칭성이 약하거나 권위적인 중심축이 없는 광장이다. 관광 명소로만 유명한 광장과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광장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러고 보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의 만남과 사랑의 배경이 되었던 로마 스페인 광장의 공간 구조가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과 광화문광장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만들어내는 모양과 아주 비슷하다. 17세기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머물면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린 이곳은, 흥미롭게도 광장 자체보다는 위쪽의 트리니타 데이 몬티(Trinita dei Monti) 교회와 아래쪽의 스페인 광장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봄에는 철쭉꽃의 다채로운 색깔이 아름다운 계단은 지역 주민들이 햇볕을 쬐며 점심을 먹는 도심 공원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오랜 여행에 지친 관광객들이 쉬어가는 휴식처이자, 밤에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스페인 광장과 계단의 매력은 다양한 공간들을 연결하는 빈 공간의 매개적인 역할과, 특별한 용도나 프로그램을 강요하기보다는 주민과 관광객들이 주체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도록 하는 자유로움에 있다.

가끔 날씨 좋은 날 광화문 나들이 중에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 앉아 샌드위치로 허기를 때우거나 커피를 마시며 잠시 잊었던 여유를 찾곤 한다. 〈로마의 휴일〉의 배경이 되었던 스페인 광장과 스페인 계단을 상상해보며, 이렇게 빡빡한 도심 공간 속에서 잠시 쉬어가며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이 있는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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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앞에 붙이고, 휑한 세종문화회관 계단으로 온화한 세종대왕 동상이 옮겨간다면, 우리만의 ‘로마의 휴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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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필요한 광장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이 확장된다. 도시국가에서 유래한 유럽의 국가와 다르게 우리나라에 도시가 등장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유럽의 도시에서 광장은 국가적 행사뿐 아니라 정치 · 경제 · 종교 · 문화적 역할을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도시적 요소였다. 그에 비해 집중화된 도시가 존재하지 않던 우리에게는 시장길, 골목길 등 ‘길’이 더 중요한 요소였다. 유럽의 광장이 오랜 세월의 변화와 도시의 특성이 갖는 요구와 필요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간이라면, 우리의 광장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결과물이다. 특정한 시기의 권력을 대변하는 공간이었기에, 그 광장은 이데올로기가 바뀌거나 정권이 바뀌면 없어지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지금 우리가 여의도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곳 중 하나는 여의도공원이지만, 예전에 여의도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여의도광장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회적 · 문화적 · 정치적 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했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시민 공간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그 결과 그리스의 아고라나 로마의 포룸과 같이 시민들이 다시 주인이 되는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렇게 광장은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장에서 공원으로 바뀐 곳은 물론 새로 만들어지는 공원 역시 예전에는 보기만 하던 공간에서 이제는 시민들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일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광장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면 미래의 광장은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 서양식 광장의 재현물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광장의 형태가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식 광장을 고민해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식의 광장이라면 전통적인 마당의 기능을 차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예부터 우리의 마당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때로는 마을 잔치 연회장으로, 때로는 신랑신부의 결혼식장으로, 때로는 안타까운 장례식장으로, 그때그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이었고, 사람들이 그곳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주체적 공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광장이라면 적어도 지금의 광화문광장처럼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놀림거리는 되지 않을 것이다. 갈 때마다 광화문광장의 권위적인 축선과 동상에서 느껴지는 서양문화 사대주의의 흔적은 여전히 불편하다. 실제로 이 공간을 사용할 시민에 대한 고려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단지 보여주기 위한 전시 행정의 결과물이자 관료주의의 압축물로 보인다.

지금도 우리 주변 곳곳에는 새로운 건물, 새로운 공간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그 건물과 공간을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이 펼쳐진다. 논쟁과 비판은 어느 분야에서든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논쟁의 주된 내용이 겉으로 보이는 건물의 모양, 공간의 형태에만 그쳐서는 제2, 제3의 광화문광장이 반복될 뿐이다. 이제는 그 건물을 사용할 사람들,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고려를 어떻게 디자인에 반영할 것인가가 논쟁의 화두로 떠올라야 한다. 정치적 · 경제적 논리에 따른 특정한 형태나 기능, 용도를 강요하기보다는 시민과 주민들이 스스로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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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 집필자 소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3년 지금까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뒤 지금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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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저자조한 | cp명돌베개 도서 소개

우리가 사는 집, 집들이 모인 동네, 나아가 우리의 고향인 도시라는 공간에는 온갖 의미와 작동 원리가 숨어 있다.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것으로,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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