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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5-질병,
영원...

그녀에게 생긴

질병, 인간이 이름 붙인 추상적 총체

19세기 문화에는 질병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는 여성을 고결한 여성의 아이콘으로 만들면서 여성 억압을 성취하려는 위험한 판타지가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이미지들이 여성을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데 한 발 더 나아가게끔 하였다.
브람 데이크스트라
환자가 된다는 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해롭고, 달갑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조르주 캉길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제인 에어』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샬롯 브론테는 1853년에 『빌레트』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그녀의 집안이 살던 하워스 지역의 교구민들은 아주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여섯 살 이전의 사망률만 해도 41%에 달했다. 하워스 지역의 이런 특성과 브론테 집안의 가족사적 비극이 합쳐져 브론테 가족은 잇따른 죽음을 경험했다. 엄마는 자궁암으로 38세에, 살롯의 언니 마리아와 엘리자베스는 각각 11세와 10세의 나이에 죽었다. 남아 있던 브랜웰과 에밀리, 앤, 샬롯에게 가족의 죽음은 여러모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가족의 잇따른 죽음은 가족을 잃은 데 대한 고통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오빠인 브랜웰과 언니 에밀리, 그리고 동생 앤이 폐결핵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샬롯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이런 가족사적 비극의 영향을 받아 샬롯의 소설 전반에 질병 재현이 잘 나타난다.

『빌레트』에는 미스 마치몬트라고 하는 독신녀가 나온다. 그녀는 류머티즘 불구가 된 후, 손과 발을 사용하는 것이 ‘불능’해 침실과 거실 단 두 개의 방으로 축소된 세계에 살고 있다. 20년 동안이나 그런 상태로 늘 2층에 앉아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병실은 개인적·정신적, 혹은 사회적 회복 여부를 두고 쟁점이 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가장 전형적으로 자아의 온상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미스 마치몬트가 머무는 방은 바로 그러한 병실의 풍경을 재현해 준다.

그녀의 얼굴은 주름투성이고 머리는 회색이었으며, 고독으로 인해 침울했다. 그리고 오랜 고통으로 인해 완고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였으며 엄격할 것 같았다. 나는 앞에서 ‘불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는 소설 원문에서 ‘impotent’로, 문맥상 ‘손과 발을 쓸 수가 없어’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의 때문에 ‘불능’으로 옮긴 것이다. 병중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효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점을 브론테가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 마치몬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다. 그가 사고로 갑자기 죽자, 스스로 기혼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던 미스 마치몬트는 새로운 국면에 서게 된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면서 병에 걸리고 만다. 독신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되찾지 못하면서 겪은 내적인 갈등이 그녀의 건강을 약화시킨 것이다. 미스 마치몬트가 꿈꾼 기혼 여성으로서의 삶과 독신 여성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에 처한 상황 사이에는 너무나 큰 불일치가 존재했다. 약혼하지 않은 소녀 시절의 순수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과부의 상태를 주장할 수도 없었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병약한’ 여성으로 축소된다. 그녀는 그녀가 처한 모순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직면하는 대신, 회피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유보시킨다. 그러나 환자가 된다는 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해롭고, 달갑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는 존재가 되는 것”(조르주 캉길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의미한다.

방으로 축소된 세계에서의 협소한 삶

병상의 삶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 기대도 받지 않는, 유효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든 여인의 옆에서 바론 유르겐스부르크, 1865년

일거리가 필요해 미스 마치몬트를 돌보는 일을 맡게 된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루시조차 유효하지 않은 협소한 생활 세계로 들어간다. 미스 마치몬트의 닫힌 두 방이 루시 자신의 세계가 되었고 늙은 불구의 미스 마치몬트가 루시의 모든 것이 되었다. 병실의 수증기 낀 창문 너머로 들판과 숲과 강과 바다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고 그러한 망각에 거의 만족한 상태가 된다. 루시의 내면 모든 것이 운명에 맞추어 협소해졌다. 그런 자신의 운명에 단련이 되고 습관이 들면서 루시는 더 이상 산책을 원하지도 않게 되었으며, 병자에게 제공되는 것과 같은 소량의 식사만으로도 배가 부르다고 느끼게 되었다.

결국 병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미스 마치몬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를 돌보는 루시까지 사회적으로 유효하지 않은 여성으로 만든 셈이다. 이렇게 여성에 대해 문화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결혼과 어머니의 역할과는 상충되는 극적인 삶을 살면서, 미스 마치몬트는 외부 사회의 그녀에 대한 역할 기대를 저버렸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었다.

19세기는 여느 때보다 여성의 몸에 관심이 집중된 시기였다. 여성의 행동에 대해 감시와 훈육이 행해졌으며 여성의 몸 또한 통제되었다. 질병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질서가 규범화한 정상과 비정상성의 틀 속에서 해석되었다. 그리고 시선의 권력이 팽배한 의학의 시대였다. 질병이란 병중인 사람을 사회적 공간과 어울릴 수 없는 존재로, 의학적 지식은 ‘건강’보다 ‘정상’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의학은 신체 기능에 이상이 없다는 개인적 차원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정상’과 병리학적 상태까지 고려해야만 했다. 이것은 마침내 사회적 규범 안에서 긍정성과 부정성의 모습이면서 마치 선과 악의 양면으로 자리하는 듯했다.

따라서 하나의 몸에 흐르는 다양한 증상과 징후가 비정상 혹은 정상으로 나뉘면서 체계적인 감시와 훈육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비정상으로 진단되는 즉시 여성의 고유한 역할이 박탈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행동이 격리되었다. 여성은 주로 종교와 과학, 예술과 같은 문화적 제도에 의해 정체성이 형성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신체는 문화적 몸으로 재창조되었다. 그러나 일단 아프면 문화적인 몸은 무색해지고, 사회적·심리적 상호관계뿐만 아니라 개인적·제도적 감시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맞춰져 가동된다. 비정상적인 몸으로 판정되면 감시의 작동은 멈추고 환자는 예외적 인간이 된다. 미스 마치몬트는 자신이 다시는 건강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밤 미스 마치몬트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약혼자의 사고사에 관한 장면 하나하나, 그리고 인물들을 기이할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되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죽음에 이른다. 죽기 전 그녀는 자신이 열두 달의 축복 끝에 30년의 벌을 받았다고 말한다. 30년 전에 일어난 약혼자의 사고 이후 쭉 고통을 겪으면서, 슬픔에 잠긴 이기적인 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픈 이후로는 병실이 된 그녀의 방에서 환자 이전의 상태로 복원할 만한 어떠한 전환점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나 죽기 전 깨달은 듯 “우리의 운명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사람의 운명을 행복하게 해 주도록 애써야 해. 그렇지 않니? 좋아, 우선 내일 널 행복하게 해 줄게”라고 말한다. 미스 마치몬트는 루시에게 유산을 남기려 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계획은 이행되지 못하고, 루시는 다시금 새로운 운명의 기회를 찾아나서야 했다.

새로운 세계

루시 또한 병을 앓는다. 그녀는 미스 마치몬트가 죽은 후, 과거의 벨기에로 알려져 있는 라바스쿠르로 떠나, 그곳의 가상 도시 빌레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여학교에 취직한 루시는 육체적으로 원기 왕성하지만 도덕적으로는 건강하지 않은 빌레트의 여학생들과 어떠한 우정관계도 형성하지 못한 채 자신만 통제하고 억압한다. 그녀가 지켜본 여학생들은 거짓말을 일삼고 속임수를 쓰거나 또는 너무 쉽게 속마음을 고백하는, 자기 권위라고는 전혀 없는 위험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여학생들에 대해 우월감은 갖는 루시지만, 결국에는 여학생들과의 차별성을 스스로 실천하고자 더욱더 자신을 억누른다. 마침내 자신이 억누른 욕망과 감정적, 성적 욕구가 히스테리로 이어져 감정이 폭발한다. 그녀는 무엇보다 고독했으며, 자신의 마음을 둘 곳을 몰라 병이 나고 만다.

그런 그녀의 아픈 몸은 그동안 영국 출신인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여학교의 교장에게 받던 감시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러나 감시의 통제 밖에 놓이는 동시에 사회 통제를 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임시적이기는 하지만 질병이 그녀를 문화적으로 불능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녀의 몸은 미스 마치몬트의 몸과 마찬가지로 여성으로서 아내와 어머니의 운명을 여성답게 수행할 수가 없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시선이 미스 마치몬트의 경우와 꼭 같이 그녀를 허약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것은 빅토리아 시대가 여성 억압에 있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오히려 그러한 사회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실용적인’ 젊은 의사 존은 그녀의 증상을 ‘신경성 열병’이라고 진단한다. 존의 결정 사항에 따라 루시는 휴식과 기분전환을 요구 받으면서 자신의 모든 업무로부터 제외된다.

미스 마치몬트와 대조적으로 루시가 경험한 자아 붕괴와 신체에 대한 경험, 그리고 고통 속의 몸은 그동안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의식 전부를 바꾸어 놓는다. 통제 밖에 놓인 그녀는 오히려 문화적 통제, 즉 여성에 대한 이상과 가치, 그리고 역할을 분석할 기회를 얻는다. 어느 날 미술관에 갔다가 만난 폴 에마뉘엘 선생은 「클레오파트라」 그림을 보고 있던 루시에게 “처녀들이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있다며, 「여자의 일생」이라는 그림 앞으로 데려간다. 폴은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내 아내나 딸이나 누이로 삼고 싶은 여자는 아니오. 다시 그 옆에 가 단 한 번이라도 더 보아서는 안 되오”라고 말하면서 「여자의 일생」을 볼 것을 권한다. 「여자의 일생」은 마치 이상적인 여성상을 계몽하려는 듯한 네 점으로 그림으로, 첫 번째 그림은 기도서를 손에 들고 교회 문밖으로 나오는 ‘젊은 처녀’, 두 번째 그림은 길고 흰 베일을 쓰고 자기 방 기도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신부의 모습, 세 번째 그림은 젊은 아기 엄마로 병든 아기를 수심에 차서 바라보는 모습이다. 네 번째 그림은 상복을 입은 미망인으로, 역시 상복 차림의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있다.

기도서를 들고 교회 문밖으로 나오는 젊은 처녀는 옷을 매우 깔끔하게 입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으며 입은 꼭 다물고 있다. 루시가 볼 때 그녀는 ‘아주 가증스럽고 조숙한 위선자’였다. 자기 방의 기도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신부는 ‘분통이 터진 것처럼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이 네 명의 여자들이 도둑처럼 음울하고 불순하며, 유령처럼 냉담하고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한다. 진지하지도 않고 유머감각도 없으며 생각이 깊지도 않은 ‘날조물’들이었다. 마침내 보수적인 여학교 선생인 폴에게 조차 그녀는 “죄송하지만, 선생님. 저 여자들은 너무나 소름끼쳐요. 저 여자들을 우러러보신다면 제가 자리를 양보해 드릴 테니 여기서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문화적으로 부여된 가치보다 그녀의 내적 가치를 유지하려는 자기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따라서 루시의 증상을 ‘비정상’ 혹은 ‘정상’의 경계 어느 한 쪽으로 놓기에는 애매하다. 그녀는 질병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자기 식의 이성(理性)에 기대어 내적 발달을 이루어 나아가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철학 안에서 자기 통제란 ‘도덕적 관리자의 감시어’였다. 그러나 당시 대중의학지에는 꿈과 유령, 그리고 통제에 반항하는 무의식적 마음의 작동 등을 탐구한 논문과 이야기의 수가 급증하였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정신이상의 사례를 다룬 놀라운 기사들로 가득했다. 신경 질환에 있어 멈추지 않는 증가에 따른 사회적 공포가 19세기 중반에 고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정신과 정신이상 사이에 미묘하게 구분되는 선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 하는 질문이 언론의 관심을 자주 받았다. 일상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과 위험적인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 사이에 분명하지 않은 의학적·사회적 판단이 따랐다.

만성적 질병은 삶의 일부로서 개인의 삶 속에 지속적으로 흐르는 것이다. 루시 또한 개념화된 평균적 정상성으로서의 건강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시킨 삶 속에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고 다독일 수 있게 되었을 따름이다. 비록 두려움 때문에 헛된 상상을 할 때도 있었고 사랑하는 폴을 기다리는 세월 이 괴롭기도 했지만, 축 늘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삶이 동요할 일을 겪지 않았을 뿐 ‘정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되는 일을 가지고 있었고, 그 동안에 거의 모든 일이 즐거웠으며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공공의 적으로서의 질병

페스트 의사들은 새부리 모양의 긴 코에 둥근 안경이 일체화된 가면과 모자에, 긴 가죽 외투, 그리고 장갑을 착용했다. 이렇게 해서 호흡을 통해 감염될지 모를 페스트균의 병원체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이 되자 과학자들은 전염병이 아닌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위험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1877년 이후에는 무지한 민중들뿐만 아니라 의사들까지도 병원균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로마의 닥터 슈나벨 파울 퓌르스트, 1656년
스티븐 컨, 『육체의 문화사』 중에서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반성과 분석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면서 질병은 자신에 대한 더 많은 인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질병에 대한 실질적 몸을 경험하는 것으로서, 문화 속에서 인정된 자아의 개념에 급진적으로 도전하는 과정이다. 질병을 담은 몸은 자신이 아닌 타자의 존재처럼 나에게 대상이 된다. 이로써 나와 타자, 안과 밖의 대립이 존재하면서도 이 경계는 일상 세계를 살아가는 루시에게 희미한 흔적일 뿐이다. 조르주 캉길렘(George Canguillem)도 지적했듯이, 건강은 불확실한 환경을 수용해 낼 수 있는 여지이다. 제도들은 일시적이고, 규약들은 쉽게 폐기되고, 유행이 번갯불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인간의 사회적 환경은 불확실하다.

윙 비들봄의 손

여성은 본성 자체가 불안정하고 우유부단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쉽게 신경쇠약에 걸리다가 병적인 상태가 된다고 여겨졌다. 여성의 몸 자체가 비정상을 담고 있는 그릇이었다. 여성 전반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해석이 이러할진대, 사회 집단적인 공포증은 사회를 병리 상태로 규정하면서 그 기준에 맞춰 개인의 행동과 언어를 해석하고 진단하도록 한다. 기준에서 벗어난 개인은 근절해야 하는 위험인자로 색출 당하여 폭력을 겪어야 할 것이다.

병리학이라는 개념은 병에 대한 이론이었다가 비정상적 상태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진단을 통해, 그리고 규정된 “잘못된 신체 발전 과정”(악셀 호네트, 『정의의 타자』)을 가리킨다. 이것은 특히 정신적 장애에 적용될 때 문제가 된다. 정신적 장애라 함은 구조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정상성의 기능 외에 사회적 조건들과 관련된다. 사회적 조건들은 어떤 시기에 유행하는 이데올로기와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하나의 편집증적인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은 집단 무의식 속에 잠복해 있다가 어떤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집단적인 공포심을 유발한다. 셔우드 앤더슨(Sherwd Anderson)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에 ‘성’(性)에 대한 편집증을 가진 집단 무의식을 잘 보여 준다.

윙 비들봄에게는 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의식적으로 두 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깊숙이 찔러 넣고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고 한다.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의 손은 그의 죄의식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애돌프 마이어즈라는 이름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의 읍 소재 교사였던 윙 비들봄은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어깨를 쓰다듬고 헝클어진 머리들을 매만져 주던 그의 손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 주려는 교사의 노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감정을 언어가 아니라 풍부하고 애무하는 것 같은 손짓을 통해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의 손은 비극의 단초가 된다. 모자라는 한 아이가 그에게 반하여 잠을 자다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상을 꿈으로 꾸고는 사실인 것처럼 지껄였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까지 끌려 나가 질문 세례를 받게 되고, 아이들은 ‘자백’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자백에서 그의 손길은 “아이의 몸을 감는” 것으로, 그리고 “머리카락을 희롱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학교에 쳐들어와 윙 비들봄에게 주먹질하고 발길질을 한 데 이어, 집으로 쫓아온 주민들의 욕설과 막대기와 진흙덩이 세례까지 받고 윙 비들봄은 마침내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렇게 해서 20년 동안 그는 와인즈버그에서 혼자 살았다. 마흔밖에 안 되었지만 65세는 되어 보이는 것도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애돌프 마이어즈라는 이름을 버리고 윙 비들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 ‘비들봄’은 지나던 화물역의 상품 상자에서 따온 것이다. ‘윙’(날개)이라는 이름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가 날개를 치는 것과 같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짓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일을 겪은 후 윙 비들봄은 꼬박 일 년이나 앓아누웠다. 병이 나은 후 날품팔이를 했지만, 겁을 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언제나 자신의 두 손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는 그런 일이 어째서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손이 문제였다는 정도만 알았다. 학교로 쫓아왔던 남자가 “손을 내놓지 마라”라고 했던 말로 그의 손은 바로 스스로를 두렵게 만드는 주범이 되었다.

절대로 손을 내놓지 마라

윙 비들봄이라는 이름의 ‘윙’(날개)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가 날개를 치는 것과 같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짓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손의 습작 니콜라 드 라르질리에르, 17세기경

그러나 그는 말보다 손짓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활발히 움직이면서도 항상 호주머니 속이나 등 뒤로 숨으려고 애썼지만 언제든지 앞으로 나와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손이 오히려 손의 주인을 놀라게 했다. 그는 두 주먹을 꽉 쥐거나 벽을 두들겨야 편했다. 애정을 담은 순수했던 그의 손은 성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스스로도 어느새 억압해야 할 것이 되었다. 그로 인해 윙 비들봄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감추어야 하는 신경증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정상적인 사람인지 혹은 이상한 사람인지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은 상당히 애매하다. 집단적인 공포심이 그의 손짓을 성적 희롱으로 해석하는 시대가 되면서 그는 돌연 위험한 사람이 되었다. 혹은 당시(『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의 출판년도는 1919년이다)에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대로,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의 내면 활동 속에 성적인 것이 개입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각성되지 않은, 자기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심적 활동이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이 그의 운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시선이나 목소리가 주는 음색을 통해, 그리고 단순히 그가 같은 공간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해 고양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흥분을 느낄 수도 있고,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내가 다른 사람의 감각 인상에 대해 이 같은 감정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은 사실 그 사람 자체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윙 비들봄 자체와는 무관한 아이의 상상이 사실로 변모하고 진리로 굳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놀란 아이들의 부모들은 윙 비들봄의 손놀림을 성적 희롱(소설 텍스트에는 한 번도 ‘성적 희롱’이란 말이 언급되지 않지만)으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합의 속에는 윙 비들봄의 애정 어린 손길과 성적 희롱이라는 양극의 경계를 비정상적인 장애로 확정 지으려는 메커니즘이 가동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비들봄의 손놀림이 사랑이지 권위가 아니었다 해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손은 바로 성희롱의 표상이며 죄의 근원일 뿐이다.

사회적 병리 현상에 대한 규정은 항상 개인의 자기실현에 도움이 되는 사회적 조건들과 관련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다수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이행되는 평가 척도의 스펙트럼은 개인의 표상된 행위를 어떻게 진단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부터 문제가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다수에 대한 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수의 개인을 희생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의미화를 어떻게 생성해 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향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윙 비들봄식의 헌신이 더 이상 순수하게 비치지 않는 현대라는 불확실한 세계성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 변화를 인식할 수 없었던 윙 비들봄은 결국 순진하고 무방비한 한 마리 짐승처럼 덫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법의 개입과 개인의 선택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의 남편은 건강상의 문제로 요양을 권유 받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질병은 한때 휴식과 자연 치유에 주로 의존했다. 특히 19세기에는 환자에게 좋은 장소가 특별히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기 좋은 곳으로 환경을 바꾸어 안정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질병은 국가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관념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위생 관념의 대대적인 변화와 격리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요양소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전염병은 병원이나 요양소의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격리 대상으로 여겨졌다.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 또한 전염이 우려된다는 관념이 유행하였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우울증을 가져왔다. 국가와 법은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우울증을 격리가 필요한 병으로 정의 내렸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명목 아래 사람들은 요양소로 격리되었다. 클라리사 댈러웨이각주1) 의 친구, 휴의 아내는 친한 친구가 아들을 전쟁으로 잃은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우울증을 겪는다. 휴는 “슬픔이 전염 됐나봐요”라고 말한다. 우울증과 같은 감정 상태가 전염성이 있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생각은 이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미셸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질병에 대해 국가 권력과 개인의 주체 형성 문제에 개입하는 지식의 변화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질병은 국민 전체의 건강에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진다. 이때 개인성의 지표보다 사회 전체의 건강과 행복의 기준이 우선시 됨은 물론이다. 전후의 영국에서 개인은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었더라도 국가 영웅주의의 명제 아래서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댈러웨이 부인』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만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평준화시키는 전쟁에 대한 평가를 듣지 못한다. 그는 소위 사람들이 합리화시킨 ‘저지른 적도 없는 죄’ 때문에 고통스럽다. 국가는 전쟁의 살상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합리화하고 있었지만 셉티머스 같은 개인의 삶은 파괴되었다. 세상의 소음을 차단한 자신의 침묵 속에서 셉티머스만이 죽어 가던 친구 에반스의 절규로 견딜 수가 없다.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개인 감정이란 무가치하게 취급된다. 이에 상응하여 국민은 서로 다른 욕구와 어려움을 가진 개인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 집단으로 취급되어 전체로서의 평균적 인간으로 여겨질 뿐이다.

의사 윌리엄 경은 환자들에게 45분을 할애한다. 만일 신경 체계나 인간의 뇌 같은 이 까다로운 학문에서 의사인 자신이 균형감각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직업적인 실패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균형감각을 신처럼 떠받들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진료실에 들어와 자기가 예수라고, 전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죽어 버리겠다고 위협한다면, 균형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윌리엄 경이 볼 때 친구들도, 책도, 메시지도 없이, 침대에서 여섯 달쯤 안정하면 45킬로그램이었던 사람이 77킬로그램까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셉티머스를 보는 순간 곧바로 확신한다. 완전한 신경쇠약, 육체적·정신적으로 극심한 쇠약으로 상당히 진행된 단계의 모든 징후를 보이는 중증 상태이다. 그는 이야기를 나눈 후, 합리적인 언어를 찾아 명확하게 진단한다. 윌리엄 경이 바라볼 때, 셉티머스를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셉티머스는 자신의 두통과 악몽, 공포에서 비롯되는 충동적인 감정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윌리엄 경은 셉티머스의 병명이 완전한 휴식을 요하는 “균형감 상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쳤다”는 말을 쓰는 대신 “균형 감각이 없다”고 부르고 있었다. 그는 셉티머스의 아내에게 “아플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별로 좋지 않아요”라고 충고하고, 셉티머스에게 “당신을 요양소에 데려가도록 조처를 해 놓겠다”면서 “거기서 당신이 안정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양소에 가야 한다는 말에 셉티머스는 “나는 내 죄를 고백했는데 왜 나를 놔 주지 않죠?”라고 했고, 그의 아내조차 “나쁜 일이라고는 한 적이 없어요”라고 주장한다. 셉티머스와 루크레치아는 마치 자신들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요양소에 가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요양소에 가고 싶지 않은 셉티머스를 굳이 보내려고 하는 윌리엄 경은 “다 저를 믿고 맡기십시오”라고 한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국가 영웅주의에서 보자면, 셉티머스는 저지른 죄가 없다. 그는 정당하게 국가를 위해 참전한 것이다. 그러나 셉티머스 개인으로서는 적군이라는 익명의 개인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런 셉티머스에 대해 윌리엄 경은 결코 자신은 “미쳤다”는 말을 쓰지 않으며, 단지 “균형 감각이 없다고 부른다”고 했다. 그는 셉티머스에게 “당신이 요양소에 가야 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거기서 당신이 안정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지요”라고 말한다.

영화 「댈러웨이 부인」(1997) 중에서

그의 목소리에는 권위가 배어 있다. 신경증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명성이 가장 중요했다. 그는 이미 쇄도하는 환자들로 피곤하였고, 직업에 따르는 책임과 특권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한 피곤함이 그에게 특별한 위엄을 더해 주었고, 명의로서의 명성을 한층 높여 주고 있었다. 그는 루크레치아에게 수군수군 말하며 자신이 모든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루크레치아는 평생 그렇게 괴로웠던 적이 없으며 남편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셉티머스의 광기는 죄를 저질렀을 때처럼 감시를 붙여야 할 것이 된다. 그는 외부 세계에서 요구되는 유형의 삶을 살 수 없는, 그렇게 살 용의가 없는 무능력자로 진단받은 것이다. 요양을 개인적으로 떠났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사회적 관리 체제하에 한곳에서 감시 받으며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윌리엄 경의 관찰 범위에 놓인 셉티머스는 자신이 의사의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자신을 향해 “죽어, 죽어, 우리를 위해서”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결국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사실에 두려워 “옜다, 봐라!”라고 외치며 창 밖으로 몸을 던진다.

셉티머스의 치료 거부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이자 해석으로 읽힌다. 20세기가 되어도 영국의 지배 논리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사상인 다윈주의(Darwinism)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적자생존법칙이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음을 계속해서 각인시키는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대조적으로 “세상이 휘청거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확 타오르려고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셉티머스는 ‘제정신이 아닌’ 존재로 사회의 관찰 대상이 된다. 사회가 볼 때 클라리사는 정상적인 진실을 바라보고 있으며 셉티머스는 비정상적인 진실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정상으로 분류된 클라리사조차 자살 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런 그녀에게 자살한 셉티머스는 자신의 다른 자아로서 일체감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보았을 때 미셸 푸코가 지적한 “광기에 이성이 있으며 모든 이성에 광기가 있다”는 주장은 제정신과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구분을 희미하게 남겨 놓는다.

셉티머스는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런 자신이 사회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선택 따위는 소용없고 “해야 한다”고만 강요하는 사회와 법의 체제에 대해,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그리고 광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간섭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지나갔지만, 전쟁의 상흔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국가는 삶을 파괴하는 기억과 그 기억으로 갈등하는 개인을 이해하기보다 균형을 숭상했다. 윌리엄 경처럼 영국의 광인들을 격리시키고 출산을 금지하고 절망을 처벌했다. 그리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퍼뜨리지 못하게 하면서 영국 전체를 번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이므로 전쟁 후 국가의 발전에 거슬리는 셉티머스와 같은 사람들은 걸림돌이었다. 그들은 정상인들에게 불편함을 가져다 준다는 권력층의 임의적 해석 방식에 의해 치료와 감호 대상자로 분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 간의 세력 다툼으로 일어난 전쟁에서 희생양이었던 셉티머스는 돌아와서 전쟁을 이겨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환영 받지 못하는 광인이었다. 전쟁을 악몽으로 회상하는 그는 전쟁을 이겨 낸 다른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병에 이어 페스트가 유럽을 뒤덮었을 때, 사회 공간은 사람들의 육체와 활동을 질서정연하게 배정하기 위하여 분할되고, 그렇게 분할된 구역들은 다시금 내부적으로도 세밀하게 구획되었다. 그리고 다중적인 방벽을 설치하여 개인에게 각자 있을 자리를 지정하였다. 개인을 각자의 육체가 지닌 자격과 질병에 고정시킨 권력기관은 당시의 공공기관들이 페스트에 대처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정착시킨 “강제적인 방법들의 일환”(알폰소 링기스, 『낯선 육체』)으로 출현했다. 국가의 공식은 이렇듯 개인의 상처와 개별적 존재들의 고통을 반영하기보다는 전체의 안전이라는 이름하에 광기와 무질서, 혼돈을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질서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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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조르주 캉길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여인석 옮김, 인간사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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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악셀 호네트, 『정의의 타자』, 문성훈 외 옮김, 나남, 2009
  • ・ 셔우드 앤더슨,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김병길 옮김, 을서출판사, 1980
  • ・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09
  • ・ 알폰소 링기스, 『낯선 육체』, 김성균 옮김, 새움, 2006

최은주 집필자 소개

건국대에서 영미문학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건국대와 백석대에 출강하고 있다. 어린 시절 많이 아팠던 경험 때문에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의학적·사회문화..펼쳐보기

출처

마이크로인문학5-질병, 영원한 추상성
마이크로인문학5-질병, 영원한 추상성 | 저자최은주 도서 소개

질병은 시대마다 탄생하고 유행하는 것이다‘건강’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것처럼, ‘질병’의 기준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질병, 영원한 추상성]은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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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그녀에게 생긴 일마이크로인문학5-질병, 영원한 추상성, 최은주,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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