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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5-질병,
영원...

야누스의 얼굴

질병, 인간이 이름 붙인 추상적 총체

질병에 대한 사회적인 상징성은 그 역사가 길다.각주1) 묵묵히 질병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해롭고 달갑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도 있다. 나아가 생활 수준에 따라서 질병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따라서 질병은 개인의 고통이라기보다 사회·문화적인 범주에 의하여 해석되고 동시에 통합적 관리에 놓인다. 그리스 시대에는 관리법이라는 것에 의해 양호한 건강과 영혼의 바른 태도라는 이중의 영역을 지향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쾌락의 중용’이라는 도덕적 차원의 매커니즘이 존재한다. 성생활의 금기를 위한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윤리적 차원이 건강과 의학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니 모든 질병은 사랑이 변형된 것일 뿐입니다.
토머스 만, 『마의 산』

질병에 대한 사회적인 상징성은 그 역사가 길다. 묵묵히 질병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해롭고 달갑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도 있다. 나아가 생활 수준에 따라서 질병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따라서 질병은 개인의 고통이라기보다 사회·문화적인 범주에 의하여 해석되고 동시에 통합적 관리에 놓인다. 그리스 시대에는 관리법이라는 것에 의해 양호한 건강과 영혼의 바른 태도라는 이중의 영역을 지향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쾌락의 중용’이라는 도덕적 차원의 매커니즘이 존재한다. 성생활의 금기를 위한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윤리적 차원이 건강과 의학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질병에 수반되는 시련이나 죽음과의 관계가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19세기 초반에 결핵은 로맨틱함과 결합되어 영국, 프랑스, 미국 문학 및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이 병은 창백함에서부터 무기력, 야윔, 심지어 쇠약한 특징까지 찬미와 숭상의 대상이 되었다. 20세기 말의 어느 비평가는 결핵이 점차 사라지는 오늘날 문학과 예술이 쇠퇴하고 있다고 설명할 정도였다. 45킬로그램 이상 몸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서정시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서정시인에 대한 상(像)도 존재했다.

서정시인에 대한 이러한 특징은 점차 여성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용모가 되어 갔다. 결핵의 전형적인 유형이 빅토리아시대 여성들의 외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화가들이 특히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 샌디즈(Frederick Sandys)의 그림에서 여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아름답다는 느낌은 병색과 연약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질병이 로맨틱하게 여겨졌고, 로맨틱하게 읽히는 질병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더욱 열렬한 것으로 강화시켰다. 『마의 산』에서 토마스 만이 묘사한 대로 육체는 ‘병과 쾌락’이며,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사랑과 죽음, 이 둘은 양쪽 다 육체적인 것’으로, 거기에 이 둘의 ‘무서움과 위대한 마술’이 있었다.

미의 기준이 바뀌다

결핵으로 인한 창백한 혈색과 가냘픈 몸은 결핵의 치료법이 나오면서 여성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용모가 되어 갔다. 라파엘전파의 그림이 특히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

마리아 막달레나 프레더릭 샌디즈, 1858~1860년

오래 전에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화집을 들여다보면, 나는 개인적으로 저 유명한 「절규」보다 「병든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수척한 얼굴로 먼 곳을 향하고 있는 그녀의 시선 때문에 아주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그림이었다. 병상에 누워 오랜 시간을 보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바깥세상을 가로 막은 벽 안쪽에 갇혀 있는 느낌들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에서도 잘 보여 주듯이, 질병은 ‘감옥살이’, 즉 격리이기 때문에 ‘재앙’과 다르지 않다. 뭉크는 1868년에 어머니를, 1877년에 누나를 결핵으로 잃고 평생 폐결핵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에서 생과 사,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는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다. 그림 속의 소녀는 결핵을 앓아 수척해지고 눈이 움푹 들어갔다.

소녀의 눈길은 창밖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폐결핵이 가지고 있는 함의는 극단적인 것이었다. 소녀처럼 순수한 이미지로, 그림 속에서처럼 우수가 서려 있다. 이와 반대로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의 이미지에도 폐결핵이 의미화되었다.

병든 아이 에드바르트 뭉크, 1897년

19세기에 폐병은 ‘외양’으로 드러났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조잡한 행위가 됐고, 병을 앓고 있는 듯한 모습이 매력적인 모습이 됐다. 소녀는 벽 저쪽의 삶보다 죽음을 더 가까이에서 느꼈기에 말이 아닌 시선을 멀리 담그고 있다. 이미 죽음의 심연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우수 어린 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속에는 당대 폐결핵에 대한 은유들이 교차한다. 소녀는 힘없고 가련한 존재로 호흡이 사라져 간다는 점에서, 그래서 더욱 착한 천사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질병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였다.

그런데 이 병은 동시에 정반대의 해석학을 가지고 있었다.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의사 랑크 박사는 부친이 생전에 저지른 문란한 성행위 때문에 선천적으로 척수 결핵(의학자들은 묘사된 랑크 박사의 증상으로 보아 결핵이 아니라 매독성 척수장애라고 생각한다)에 걸리게 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아버지의 성적 부도덕함이 아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는 것은 마땅히 그렇게 될 사실로 작품 전체에 투영된다. 주인공인 노라가 남편을 속이고 문서를 위조한 죄가 자녀 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암시가 바로 아버지 때문에 얻게 된 랑크 박사의 질병을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의 도덕성이 자녀의 도덕성은 물론 건강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개연성은 당시로서는 상상만이 아니었다. 서구 역사에서 성적인 품행은 어린이의 나쁜 행동, 성인들의 폐결핵, 노인들의 중풍 및 신경질환, 그리고 근력 퇴화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나병의 경우 부부 관계가 금지된 사순절이나 축제 전야 등에 잉태된 사람에게 걸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병은 따라서 “죄와 가장 나쁜 것, 즉 성적인 죄”(자크 르 고프·니콜라스 트뤼옹, 『중세 몸의 역사』)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가족과 사회적·물리적 환경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이처럼 질병은 추하고 부정한 것으로 변모하면서, 병을 앓을 만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식의 은유가 생성되었다.

죄와 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질병을 나쁜 행위에 대한 죗값으로 본 역사도 있다. 정신분석학 덕택에 더욱 유명해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들여다보면, 병은 죄를 지은자에 대한 신의 처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친부를 죽이고 친어머니를 왕비로 삼으면서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그 존재 자체가 신성을 모독하는 테베에 떠도는 전염병의 근원이다. 인간이 전염병의 발생지가 된 셈이다.

전염병이 휩쓸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막아 낼 수단이 없구나.
영광스러운 땅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여인들은 산고보다 더한 고통에 울부짖고 있다.
그리고 날쌘 날개를 가진 새처럼,
그렇다, 활활 타오르는 불보다 더 빨리 목숨은
서쪽 신의 나라 기슭으로 사라져 버린다.

무수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도시는 멸망하고 있다. 참혹하게도 어린이들은 맨땅에
시체로 뒹굴며
병을 퍼뜨리고 있다.
젊은 아내와 백발의 노모들은
제단 층계에서 통곡하고 있다. 여기저기 한 무리씩 몰려,
그들의 슬픔을 덜어 달라고 애걸하면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인 줄 모르고 선왕의 권력을 장악하고 그의 아내를 차지한 후, 선왕의 살해 원인을 밝히겠다고 선언한다. 예언자인 테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불리한 진실을 감추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오이디푸스의 계속적인 추궁에 전염병에 책임이 있는 자가 바로 오이디푸스라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갈등은 깊어질 뿐이다. 오이디푸스야말로 눈을 뜨고 있지만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으며, 누구와 살고 있는지 보지 못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테레시아스가 진실을 전해도, 눈을 뜨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지 못함으로써 진실은 역설을 낳는다. 이제 자신의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스스로를 심판하는 일만 남는다. 그는 앞을 보지만 진실을 보지 못한 데에 따른 형벌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그리고 자신을 테베 땅으로부터 쫓아낼 것을 명한다.

아버지 라이오스 왕이 아들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신탁이 있자 신탁을 모면하기 위해 태어난 지 3일이 되었을 때 두 발에 구멍이 뚫려 묶인 채 산속에 버려진 것이 오이디푸스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만큼 인간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있었던 오이디푸스는 정작 자신을 둘러싼 비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대해 일깨우는 한편, 안다는 것이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버지를 죽이는 순간에, 그리고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은 파괴되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동시에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아 가는 오이디푸스로서는 과정 자체가 파멸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것은 잔인한 현실이다. 그러나 앎을 실천하여 참회를 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은 비로소 회복된다.

이제부터 그대들은 어둠 속에 있거라

테베 땅에 떠도는 전염병은 아버지를 죽인 패륜과 어머니와의 근친 상간을 저지른 오이디푸스 개인에 대한 천벌이었다. 그는 진실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찌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다시는 내가 겪고 또 내가 저질러 놓은 무서운 일들을 보지 못하리라. 너무 오래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을 보아 왔고 내가 알고자 하던 일은 보지 못했다. 이제부터 그대들은 어둠 속에 있거라.”

영화 「오이디푸스 왕」(1967) 중에서

이와 같이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해서도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은 질병의 고통과 위협으로 나타났다. 질병의 발생은 그렇게 인간의 죄책감을 끌어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결국 오이디푸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 받아들이면서 죗값을 받자 국가 전체는 비로소 전염병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개인의 죄였지만 가족에게, 그리고 왕이었기 때문에 국가 전체에까지 해가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키도록 부여한 윤리와 책임을 버렸을 때 갖게 되는 죄책감을 바탕으로 한다.

의도된 해석

병에 대한 주된 시선은 『마의 산』에 나오는 계몽운동가 세템브리니의 생각과 일치했다. 육체의 해방과 아름다움, 관능의 자유, 행복과 쾌락이 추구되는 경우에 육체는 존중되고 옹호되어야 하지만, 반면 육체가 병과 죽음의 원리를 대표할 경우에는 멸시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인간의 부도덕함에 대한 죗값으로 전염병이 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종교적 세계관에서 기인한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 준다. 치료 방법이 전혀 없었던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질병을 미화시키거나, 반대로 질병을 악귀로 여겨 부적을 지닌다거나 하는 등의 민간 전통이 뒤따랐다. 내가 어릴 때에도 백일 기침이 그치지 않거나 이유 없이 열이 나고 아플 때, 외할머니께서는 비방(秘方)을 해야 한다고 마당에 나를 세워두고 어떤 의식 같은 것을 치르셨다. 그러면 감쪽같이 기침이 멈추거나 열이 내리곤 했다. 나을 때가 되어 나은 것인지, 정말 효과가 있는 비방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이 때 맞춰 낫는 경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14세기에서 17세기에 떠돈 무도병(舞蹈病) 역시 당시로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에 수천 번씩 빠르고 불규칙한 춤을 추게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이 병은 심인병(心因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후 주로 아이들이 걸리며 몸을 제멋대로 심하게 움직이다가 흔히 류머티스열이 뒤따르는 시드남 무도병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당대에는 춤을 계속해서 춰야 치료되는 줄 알고 당국에서 직접 악사들을 고용해 연주를 하게 하여 밤낮으로 춤을 추도록 공식적으로 부추기기도 하였다.

정체불명의 병에 대처하는 법

14세기에서 17세기에는 얼굴과 손발이 뜻대로 조절되지 않고 저절로 심하게 움직여,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무도병이 떠돌았다. 이 병은 의도적인 동작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행해진 것으로, 한 번에 수천 번의 춤을 추다가 죽음에 이르게 했다. 당시에는 춤을 계속해서 춰야 이 병이 치료되는 줄 알고 악사들에게 돈까지 지급하면서 병에 걸린 사람들이 밤낮으로 춤을 추도록 부추겼다.

시냇가에서의 춤 피테르 브뤼헬, 연도 미상

한편, 질병에 대한 오독은 무지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 의도된 해석을 통해 왜곡되기도 하였다. 공포 영화로 유명한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드라큘라』는 여성해방운동을 주장하는 신여성각주2) 들의 불온사상을 탐하는 일반 여성들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읽을 수가 있다. 하루에 세 명씩이나 되는 남자들에게 청혼을 받을 만큼 순결하고 아름다운 루시와 진실하고 착한 미나의 일기장에는 신여성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그녀들 또한 어느 정도 신여성운동의 물결에 영향을 받은 듯, 자유로운 성담론에 대해 기웃거린다. 루시는 편지에서 “한 여자가 세 남자와, 아니, 그 여자를 원하는 모든 남자와 결혼할 수는 없는 걸까?”라고, 미나는 일기에서 “언젠가는 신여성 작가들이 구애를 하거나 받아들이기 전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잠든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은 제도적으로 가능한 재산이자 사유물이며, 은밀한 쾌락이었다. 따라서 여성이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해서는 안 될 욕망을 품을 경우, 괴물이 탄생했다. 드라큘라는 바로 그러한 상상의 산물이다. 괴물의 은유는 신의 분노를 보여 주기 위해 내리는 경고였지만, 이것이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성역할에 따른 격차를 무시하고 남녀평등을 주도하려는 여성들이야말로 남성적인 가치들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성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남성만이 차지했던 주체의 역할을 여성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 남성들에게는 두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루시의 상상은 악이나 질병에 쉽게 감염될 만한 상태로 묘사된다. 소설에서 드라큘라의 속성은 처음에 누군가가 들어오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각주3) 아무 데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허락을 받은 뒤에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결국 루시가 드라큘라에게 흡혈을 당하는 것도 그녀가 그를 들여놓을 만큼 의지가 약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라큘라에게 피를 빼앗기고 감염된 후, 루시는 침상을 떠나지 못하는 환자의 신분이 된다. 그녀는 육욕으로 가득 차 보이는 얼굴에, 육감적인 입술과 사악하게 번득이는 눈빛, 음탕한 미소가 얼굴 가득히 번지는 불온하고 불길한 유혹의 존재로 변모한다. 피가 부족해지자 그동안 루시에게 청혼했던 남성들로부터 수혈을 받는 상황에 처하는데, 의사인 반 헬싱 박사는 루시가 수혈 받은 사실을 루시의 약혼자에게는 비밀로 한다. 당시에 수혈은 성적인 것으로 해석되어, 여러 남성들로부터 수혈은 받은 루시는 마치 많은 남편을 거느린 것처럼 여겨진다. 반헬싱 박사는 흡혈귀로부터 인류의 감염 위험을 막기 위해, 그리고 루시의 이상적인 ‘참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루시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루시를 죽이는 것이 루시를 구원하는 길이 되고, 공교롭게도 루시에게 구혼했던 남성들이 이에 동참한다. 그들은 영웅심 가득한 전사처럼 루시의 가슴에 말뚝을 박고, 루시는 더 이상 육욕에 찬 ‘악마의 모조품’이 아닌 이전의 순수한 모습을 되찾는다. “하느님이 만드신 가장 고결한 마음”으로 칭송 받았던 루시는 “진정한 죽음”을 통해서 그 고결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 신여성운동에 거세게 반발한 남성적 담론은 여성이 주체로서 쾌락을 욕망할 수도 없으며, 남성적 이데올로기를 거역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 아래, 아내와 어머니의 위치를 가장 이상적인 담론으로 구축시켰다.

한편,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제인 에어』는 일반적으로 로체스터와 제인의 낭만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 여성 로맨스 소설처럼 읽힌다. 그러나 로체스터에게는 오랜 시간 다락방에 갇혀 지내는 아내 버사가 있다. 로체스터는 버사가 ‘성적으로 불순하고 타락’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병과 광기로 분한 악마로 지칭하면서, 그와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제인을 향해 “내가 가지고 싶은 것, 이 맑은 눈, 이 얼굴”이라고 묘사하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타락한 여자로 분한 버사는 낮고 느린 웃음소리와 기괴한 중얼거림만을 늘어놓을 뿐 의미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대신 남편 로체스터의 목소리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뿐이다. 이처럼 여성들이 성의 주체로서 역할을 주장하거나 성욕을 드러낸다면 그녀는 질병에 걸린 환자로, 그리고 사회적 타자로 취급되어 격리되거나 ‘죽어야 사는’ 존재가 되었다. 이 이상한 논리가 여성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기 위한 전략이던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남성화된 매력적이고 섹슈얼한 드라큘라

소설 원작에서 드라큘라는 주로 악마와 적의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영국 최고의 미인 루시의 피를 빠는 모습은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듯 섹슈얼하게 그려진다. 신사임을 자부하고 성을 억압하던 영국 남성들에게 루시를 마음대로 하는 드라큘라는 질투와 복수심을 일으키는 연적(戀敵)이나 다름없다. 영화에서는 그런 이미지를 크게 부각시켜 멋지고 남자다운, 섹슈얼한 드라큘라가 그려진다.

NBC TV 시리즈 「드라큘라」(201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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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토머스 만, 『마의 산』, 오계숙 옮김, 일신서적, 1990
  • ・ 알베르 카뮈, 『페스트』, 김화영 옮김, 책세상, 1998
  • ・ 자크 르 고프, 니콜라스 트뤼옹, 『중세 몸의 역사』, 채계병 옮김, 이카루스미디어, 2009
  •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황문수 옮김, 범우사, 1998

최은주 집필자 소개

건국대에서 영미문학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건국대와 백석대에 출강하고 있다. 어린 시절 많이 아팠던 경험 때문에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의학적·사회문화..펼쳐보기

출처

마이크로인문학5-질병, 영원한 추상성
마이크로인문학5-질병, 영원한 추상성 | 저자최은주 도서 소개

질병은 시대마다 탄생하고 유행하는 것이다‘건강’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것처럼, ‘질병’의 기준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질병, 영원한 추상성]은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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