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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회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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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에 엘레아 학파는 변화하는 다자의 세계, 곧 감각 세계의 실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실재를 일상 경험의 범주로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헤라클레이토스와 그의 제자 크라틸로스는 세계가 끊임없는 유동 상태에 있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영구불변의 진리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크세노파네스는 참된 지식과 거짓된 지식을 구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의심을 품었다(→ 그리스 철학).

소크라테스와 2명의 소피스트에 이르러 회의주의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지식에 늘 의문을 제기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초기 대화록 〈변명 Apologia〉에서 자신이 정말로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와 경쟁관계에 있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면서 궁극적으로 참된 견해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모든 견해는 인간 각자의 의견일 뿐이라는 회의주의적 상대주의를 피력했다. 나아가 또다른 소피스트 고르기아스는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혹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아가 알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전달할 수가 없다고 함으로써 회의주의에 바탕한 허무주의적 주장을 폈다.

회의주의 철학을 표방한 최초의 학파는 BC 3세기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발전한 '아카데메이아' 회의주의 학파였다. 이 학파를 이끈 아르케실라우스와 카르네아데스는 주로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에 맞서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대신에 어떤 지식이 이성에 입각한 것이냐 아니면 추정에 입각한 것이냐를 알 수 있는 표준만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제한된 개연적 회의주의는 키케로가 아카데메이아의 학생이던 BC 1세기까지 이 학원의 견해였다.

고대 회의주의의 또다른 주요형태는 피론주의였다. 아이네시데무스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아카데메이아 회의주의자들을 비판했는데, 그 까닭은 아카데메이아 회의주의자들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개연성이 많다고 하는 등 사실상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피론주의자들은 나아가 다양한 종류의 지식에 반대하는 일련의 방법으로 판단중지(epochē)를 제시했다(→ 에포케). 피론주의적 태도는 피론주의의 마지막 지도자 섹스토스 엠피리코스의 저작 〈피론주의 개관 Outlines of Pyrrhonism〉·〈수학에 반대하여 Adversus mathematicos〉 등에 담겨 있다. 섹스토스 엠피리코스는 자신의 주장이 사람들을 평정(ataraxia) 상태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말했다. 실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불안하고 좌절했으며, 판단중지에 이를 수 있다면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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