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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세기 포르투갈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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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의 문학

아비스 왕조를 창건한 주앙 1세 치하에서 포르투갈 궁정은 다시 문학의 중심부가 되었다.

왕 자신도 사냥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그의 아들 두아르테는 고대 및 중세의 시집들과 역사서들을 널리 수집했고 〈왕의 참모 Leal Conselheiro〉(1437/38)라는 윤리서를 저술했는데, 이 책의 문장은 공들여 다듬어져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특징은 역사적 연대기로서 두아르테 왕의 공적이 크다. 그는 1434년에 왕국의 주요 사관(史官) 직을 만들고 페르낭 로페스를 임명했으며, 로페스는 포르투갈의 초대 10명의 왕에 대한 연대기를 저술했다.

〈포르투갈의 초대 7명의 왕의 연대기 Crónica dos Sete Primeiros Reis do Portugal〉는 1947년에 발견되어 1952~53년에 출간되었는데, 로페스 작품의 첫 부분임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 책이 발견되기까지는 페드루 1세, 페르난두 1세, 주앙 1세의 연대기만이 알려져 있었다. 생생한 문체와 철저한 문헌적 뒷받침을 갖춘 로페스는 중세 포르투갈 산문작가 중 가장 훌륭한 작가로 평가되었다.

로페스의 직을 계승한 고메스 에아네스 데 주라라는 연대기 저술을 계속했으나 예술성에서 로페스에게 뒤떨어진다.

그의 주요작품으로는 〈항해왕 엔리케의 정복과 발견 Crónica da Tomada de Ceuta〉·〈기니 발견과 정복의 연대기 Crónica do Descobrimento e Conquista da Guiné〉가 있다. 오랫동안 쇠퇴해 있던 시는 15세기 중엽에 다시 발달했으나 많이 변했다. 주로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으며, 포르투갈 시인들은 스페인에 충성을 맹세하는 장문의 글들을 썼다.

발라드를 제외하고는 민중시와 음유시인들의 시는 모두 사라졌다. 총사령관 돔 페드루 데 포르투갈은 카스티야어로 글을 쓰는 유행을 널리 퍼뜨렸다. 그는 스페인의 새로운 알레고리적 경향과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고전에의 숭배를 채택한 최초의 인물로서 동포들에게 이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들은 깊은 감정과 인생에 대한 많은 사색에서 나왔으며 그는 연대기작가 가르시아 데 레센데가 펴낸 이전 75년간을 포괄하는 시선집 〈시가 전집 Cancioneiro Geral〉(1516)에 실린 약 200명의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포르투갈어와 카스티야어로 된 이 1,000편 남짓한 시들의 주요주제는 사랑·풍자·경구 등이다. 레센데는 그의 선집에 실린 대다수의 시인들보다 뛰어난 시인이었다.

질 비센테와 초기극

근대극의 시발점은 궁정 극작가 질 비센테의 작품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의 작품 44편 중 11편은 전부가, 17편은 일부가 스페인어로 씌어졌다. 일련의 종교극들인 〈배 Barcas〉(1517~19)는 극적 구성력과 희극적 요소에 대한 취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민극의 가능성은 이 창시자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고, 그가 진정한 영향을 미친 것은 스페인에서였다. 1536년 포르투갈에 도입된 종교재판은 대중극을 조야하다는 이유로 탄압했다.

비센테의 극조차 1559년의 금서목록에 의해 35편으로 줄었고, 1586년 재판본에서는 유감스럽게도 훼손되었다.

포르투갈의 르네상스

포르투갈에는 르네상스가 스페인을 거쳐 간접적으로 도입되기도 했고 이탈리아로부터 직접 도입되기도 했다.

이탈리아와는 15세기 내내 밀접한 문화적 교류가 있었고, 16세기에는 많은 유명한 인문주의자들이 포르투갈에 이주했다. 1532년에 역사가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주앙 데 바루스는 〈영적인 상품 Rópica Pnefma〉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은 당시 포르투갈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술이었다. 1547년에 주앙 3세는 쿠임브라대학교를 개혁했고, 저명한 포르투갈 교사들이 왕을 보필하기 위해 해외에서 돌아왔다.

포르투갈 국내에서도 훌륭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대표적 인물로는 〈포르투갈의 고대에 대해 De antiquitatibus Lusitaniae〉(1593)를 쓴 안드레 데 레센데,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고대 회화에 관한 대화 Diálogos da Pintura Antiga〉를 저술한 프란시스쿠 데 올란다가 있다.

이탈리아파의 시와 극

1526년에 시인 프란시스쿠 데 사 데 미란다는 6년간의 이탈리아 체류를 마치고 귀국하여 영향력 있는 문학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동시대인이었던 스페인의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처럼 그도 소네트·칸초네·송시·서한시 등 새로운 시형식들을 소개했다. 그는 특히 〈풍자문학 Satires〉을 통해 민족시의 형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수제자 안토니우 페레이라는 신념 있는 고전주의자로서 형식이나 문체에서 탁월한 소네트를 썼다.

그밖의 시인들이 이 유파를 계승했으며, 그 대표적 인물이 〈오스 루시아다스〉의 저자 루이스 데 카몽스이다. 카몽스는 심오한 고전적 소양과 시작법의 완벽한 숙달, 생애에 걸친 다양한 경험들을 결합하여 소네트·목가·송시·비가·칸송스 등의 형식으로 포르투갈 최고의 시를 창조했다.

극에서는 사 데 미란다와 그 일파들이 운문 대신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로마의 극작가 테렌티우스를 모범으로 삼아 포르투갈풍의 인물 대신 로마-이탈리아풍의 전형들을 만들어냈다. 이 고전 희극의 부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사 데 미란다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최초의 산문 희극 〈이방인들 Os Estrangeiros〉(1528경)·〈오스 비얄판두스 Os Vilhalpandos〉(1528경)를 썼다. 훌륭한 극작가였던 페레이라도 2가지를 모두 시도했다. 성격희극에 가까운 〈오 시오수 O Cioso〉에서는 인물들의 이름까지 이탈리아풍인 반면, 그의 대표작 〈카스트루 Castro〉(1557경)는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를 참조함으로써 이네스 데 카스트루의 처형이라는 포르투갈 국민사의 가장 감동적이고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희극작가 조르제 페레이라 데 바스콘셀로스는 스페인 소설 〈라 셀레스티나 La Celestina〉의 영향을 받아 쓴 〈코메디아 에우프로시나 Comédia Eufrosina〉(1555)에서 새로운 종류의 '창안'을 이루어 냈다. 이 작품과 〈코메디아 울리시푸 Comédia Ulissipo〉(1618)·〈궁전 생활 Comédia Aulegrafia〉(1619) 같은 작품들은 대화에 있어 소설과 유사하며 도덕적 의도로 민담과 현명하고 재치 있는 속담들을 많이 취급하고 있다.

16세기의 역사

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 대륙 및 해양에서 이루어진 발견과 정복은 시인들뿐만 아니라 역사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기록은 과학적으로 서술했더라면 무미건조했을 것이나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제재로 인해 생생함을 얻고 있다. 주앙 데 바루스는 〈데카다스 다 아시아 Décadas da Ásia〉(1552~63)의 3개의 '10년사'에서 1526년까지의 동포들의 해외 활약상을 힘찬 언어로 그렸다. 그의 첫 '10년사'는 카몽스에게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며, 이 두 사람은 각기 산문과 운문에서 포르투갈 문어(文語)를 정립했다.

좀더 비판적인 역사가 디오구 두 코투에 의해 계속된 이 작품은 이 세기 역사 저술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디오구 두 코투는 그의 〈고참병 Soldado Prático〉(1790, 1578년 이전에 씌어짐)에서 포르투갈이 동양에서 쇠퇴한 요인들에 관한 날카로운 관찰을 덧붙이고 있다.

연대기 작가이자 공증인이었던 페르낭 로페스 데 카스타녜다의 〈포르투갈인들에 의한 인도 발견 및 정복의 역사 História do Descobrimento e Conquista da Índia Pelos Portugueses〉(1551~61)는 10년간의 인도 답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바루스와 두 코투의 작품들에 버금 간다.

해외진출에 관한 저술들이 쏟아져나온 데 이어, 이윽고 해외진출을 주재한 국왕의 연대기에 주제가 됨으로써 포르투갈 자체의 역사가 씌어지게 되었다.

외교관이자 여행가이며 인문주의자로서 에라스무스와 절친했던 다미앙 데 고이스는 박학한 인물로 당시 가장 비판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의 〈가장 행복한 왕 돔 에마누엘의 연대기 Chronica do Felicissimo Rey Dom Emanuel〉(1566~67)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느낌들이 담겨져 있어 가장 읽을 만하다.

여행기들도 많이 나왔는데, 그 작가들은 흔히 해당 나라들을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들이었다. 그중 유명한 것에는 많이 번역된 고전 파드레 주앙 데 루세나가 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생애의 역사 História da Vida do Padre Francisco Xavier〉(1600)이다. 예수회 신부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고국으로 써보낸 편지들은 역사적으로나 인간적 자료로서 꽤 중요하다. 작자 미상의 〈플로리다 발견 Descobrimento da Florida〉, 가브리엘 소아레스 데 소사의 〈1587년 브라질의 기술 Tratado Descritivo do Brasil em 1587〉은 포르투갈이 서쪽의 신대륙에서도 활동했음을 상기시켜준다.

흥미 있는 유명한 작품으로는 동양 전역에서 모험의 왕자로 통했던 페르낭 멘데스 핀투가 노년에 쓴 〈방랑기 Peregrinacam〉(1614), 1552~1604년에 포르투갈 선박들에 닥쳤던 가장 큰 재난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해난비화집(海難悲話集) História Trágico Marítima〉이 있다.

소설 및 기타 산문

시인 베르나르딤 리베이루는 5편의 목가를 써서 포르투갈에 전원시를 도입했으며, 〈메니나와 모사의 이야기 Hystória de Menina e Mo이미지a〉(1554)를 써서 전원 소설에 혁신을 가져 왔다.

소박한 사랑과 우수의 이야기에 기사도적 요소들을 곁들인 이 작품은 전에는 시에서만 발견되던 주제 및 정서들을 채택했다. 이 작품에서 일부 영감을 얻은 것이 시인이자 음악가인 조르제 데 몬테모르의 〈라 디아나 La Diana〉이다. 스페인어로 씌어진 이 작품은 세르반테스와 로페 데 베가를 위시한 많은 작가들이 뒤따르게 될 유행을 낳았으며, 포르투갈 문학이 이웃나라 문학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포르투갈어로 된 최초의 기사도 로맨스인 주앙 데 바루스의 〈클라리문두 황제의 연대기 Crónica do Imperador Clarimundo〉(1520)는 포르투갈 왕들의 허구로 만들어낸 선조의 모험들에 관한 것이다.

도덕주의자들과 신학자들 중에서는 다음 세 사람이 산문체의 대가로 꼽힌다.

프레이 에이토르 핀투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이미지 Imagem da Vida Cristã〉(제1부 1563, 제2부 1572), 주교 아마도르 아라이스는 종교 및 기타 주제들에 관한 10편의 〈도덕문답집 Diálogos〉(1589), 프레이 토메 데 제수스는 신비적이고 신앙적인 논문 〈예수의 고난 Trabalhos de Jesus〉(1602~09)을 썼다. 과학자들의 작품으로는 우주학자이자 수학자인 페드루 누네스와 식물학자인 가르시아 데 오르타의 저술이 있다. 가르시아 데 오르타의 〈약초와 약품문답집 Colóquios dos Simples e Drogas〉(1563)은 동양(인도의 고아)에서 출판된 최초의 포르투갈 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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