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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센테

다른 표기 언어 Gil Vic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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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65경, 포르투갈
사망 1536/37
국적 포르투갈

요약 포르투갈 최고의 극작가.

포르투갈의 플라우투스라고 불리는 유명한 서정시인으로서 포르투갈어는 물론 스페인어로도 시를 썼다.

생애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확실하지 않으며 출생사항에 대해서도 정확하지 않다. 그의 신원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에보라 궁정에서 일하는 비센테라는 이름의 금세공인이라고 보는데, 이 사람에 대한 사실은 1509~17년의 궁정 기록에 나와 있으며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의 미망인 도냐 레오노라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뒤에 국왕이 된 마누엘의 수사학 교사였다고도 한다. 첫 작품은 뒤에 주앙 3세가 된 왕자가 태어난 1502년 6월 7일 발표된 작품인데, 〈목동의 독백 Monológo del Vaquero〉이라는 제목의 짧은 희곡이며 마리아 여왕의 왕실에서 카스티야 방언으로 상연되었다.

같은 해에 성탄절 행사를 위한 극으로 길이는 더 길어졌지만 역시 간결한 작품인 〈카스티야의 목가극(牧歌劇) Auto Pastoril Castelhano〉을 상연했다. 그뒤 34년 동안 일종의 계관시인으로 리스본으로부터 알메이림·토마르·쿠임브라·에보라에 이르기까지 왕실이 참석하는 여러 큰 행사를 준비하여 성탄절·부활절·성(聖)목요일 등의 종교적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극을 무대에 올렸다.

1513년 포르투갈 함대가 아사모르 원정을 떠나게 되자 보다 민족적인 주제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전쟁에 대한 훈계극 Auto da Exhorta이미지ão da Guerra〉(1513)과 동부 알부케르케 전투의 승리에서 영감을 얻은 〈명예극 Auto da Fama〉(1515)에서 그는 열렬한 애국심이 담긴 시를 썼다. 또한 1514년에는 흥미로운 〈홀아비 희극 Comédia do Viúvo〉을 발표했다.

1521년 국왕 마누엘이 죽은 뒤 자주 가난에 대해 불평을 토로했으나 주앙 3세의 재임기간 동안 여러 종류의 연금을 받았고 국왕과 개인적인 친분도 나누었다.

1521년 8월 마누엘 국왕의 딸 베아트리스 공주가 사보이 공작과의 혼인을 위해 뱃길을 떠날 때 비센테의 〈주피터의 신전 Cortes de Júpiter〉이 '금빛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화려하고 커다란 방에서 공연되었다고 친구인 시인 가르시아 데 레센데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

〈사랑의 대장간 Frágua de Amor〉(1524)도 궁정 행사를 위해 썼는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롤 5세의 누이와 포르투갈 국왕 주앙 3세의 약혼식을 기념하는 것이다. 〈포르투갈 목가극 Auto Pastoril Português〉(1523), 소극(笑劇)인 〈베이라의 재판관 Juiz da Beira〉(1525)·〈에스트렐라 산맥의 목가적 희비극 Tragi-comédia Pastoril da Serra da Estrela〉(1527), 풍자적인 〈베이라의 사제(司祭) Clérigo da Beira〉(1529~30)에서는 그가 친숙하게 알고 있던 베이라 산간지방의 농부와 양치기를 다시 주제로 했다.

그는 더욱 극에 전념하면서 '사 데 미란다 학파'(Sá de Miranda school)의 비평가들에게 답하여 많은 작품들을 썼다. 1526년 〈아폴로 사원(寺院) Templo de Apolo〉을 발표한 뒤 계속해서 성서극 〈하나님의 이야기에 대한 짧은 요약서 Breve sumário da história de Deus〉·〈사랑의 배[船] Nao de amores〉·〈쿠임브라 시(市)의 휘장(徽章) Divisa da Cidade de Coimbra〉·〈노새몰이꾼의 소극(笑劇) Farsa dos Almocreves〉 등의 작품으로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 3편은 〈에스트렐라 산맥 Serra da Estrella〉과 함께 1527년 리스본과 쿠임브라 왕실에서 공연되었다. 그러나 〈축제의 극 Auto da Festa〉(1525)은 에보라의 어느 한 가정집에서 공연되었던 것 같다.

60세가 넘는 나이에도 비센테는 여전히 힘과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두 각본인 〈상처입은 사람들의 순례 Romagem de Agravados〉(1533)와 〈오해의 숲 Floresta de Enganos〉(1536)은 그 훌륭한 장면들이 느슨한 짜임으로 인하여 오히려 초기 작품처럼 느껴지나, 〈겨울의 승리 Triunfo do Inverno〉(1529)와 장편이면서 그 구성이 집약적인 〈아마디스 데 가울라 Amadis de Gaula〉(1532)는 만년에도 그가 여전히 창조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분적으로 종교적 우화의 성격을 띤 〈모피나 멘데스 이야기 Auto da Mofina Mendes〉(1534)는 노련하고 경쾌한 필치와 예리한 통찰이 매력이다. 1532년 왕과 그 신하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연된 〈루시타니아 이야기 Auto da Lusitânia〉는 그가 1525년에 시작했다고 하는 〈비밀 사냥 Ca이미지a de Segredos〉과 동일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그의 생전에 리스본에서 무대에 올려졌던 희곡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1534년 렌트에서, 이웃에 있는 오디베랄스 수녀원 원장의 요청에 의해 종교적인 작품 〈카나네이아(가나안) 이야기 Auto da Cananéia〉를 공연했다. 나머지 극 작품들은 왕과 왕실을 관객으로 하여 에보라에서 공연되었고, 1536년 마지막 작품을 쓰고 세상을 떠난 곳도 에보라인 듯하다.

44편에 달하는 극은 웅장하거나 저속한 장면을 통해 그 시대의 변화와 격동을 훌륭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11편은 스페인어로, 14편은 포르투갈어로 썼으며 나머지는 두 언어를 모두 사용했다. 교회, 의학, 라틴 법률에 대한 단편과 프랑스어·이탈리아어, 농민·집시·뱃사람·요정, 악마의 방언 또는 속어에 대한 단편도 많이 썼다. 비센테의 극은 칼데론의 성찬비극(autos)의 전조가 되는 종교극·궁정극·목가극, 대중 소극(笑劇), 낭만적 희극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무대에 올려졌다.

즉 무대에 실제로 배를 젓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웅장한 상징을 표현하고자 성체가 열리는 장면도 있었다. 이점에서 그는 후기 스페인 극을 예고한 인물이 된다. 그가 50세에 이를 무렵인 1513~19년에 쓴 다양한 극은 당시 그의 천재성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희극적 기질과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서정적 재능, 삶과 문학을 능숙하게 포착해내는 힘과 강한 도덕적·애국적 목적이 깔린 마술적인 언어능력과 풍자력으로서 그러한 것들을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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