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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과 지도화
태평양 서안의 국가들은 일찍부터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루었지만, 태평양에 대한 탐험은 거의 없었다.
16세기에는 극동지역의 향신료를 얻기 위한 해상무역로를 찾기 위해 유럽인들이 태평양에 진출했다. 그후로는 테라오스트랄리스를 발견하기 위해 탐험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목적의 탐험은 서부 유럽인들이 태평양상의 여러 섬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의 탐험가인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가 1513년 파나마 지협의 다리엔에서 처음 태평양을 발견하고 '평화로운 바다'로 명명한 후, 태평양에 대한 탐험이 본격화되었다.
8년 뒤에는 포르투갈의 항해가 마젤란이 이끄는 함대가 태평양을 횡단했다. 스페인인들의 계속된 탐험항해로 몰루카·캐롤라인·파푸아·하와이·솔로몬 제도 등이 발견되었다. 17세기 초엽부터 태평양 탐험은 주로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네덜란드의 항해가 아벨 J. 타스만은 태즈메이니아·뉴질랜드·피지 등을 발견했다.
18세기에는 태평양에 대한 광범위한 탐험이 이루어졌다.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과 프랑스의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 등의 항해를 포함한 수많은 탐험으로 인해, 이 시기에는 태평양 전체에 대한 정확한 지도의 작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1831~36년에 진행된 영국 해군의 과학탐험기간 동안 박물학자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지구를 일주했다. 앞에서 언급한 챌린저호의 탐험에서부터 시작된 태평양에 대한 자연과학적·생물학적 관심으로 인하여 19세기 후반에 수많은 과학탐험이 이루어졌다(해외 탐험, 대영제국). 1874~75년 미국 선박 투스카로라호는 태평양 북부지역을 탐험하여 다양한 해양학적 발견이 이루어졌고, 독일 연구선 가첼레호의 탐험(1874~76) 역시 해양물리학 분야에 크게 공헌했다.
국제지구물리관측년 기간(1957~58) 동안 소련의 비트야스호는 태평양 서부지역에서 해구의 깊이를 자세히 조사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구형 잠수기인 트리에스테호는 지구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에 도달하기도 했다(해양학).
정치와 군사
1564년 스페인이 필리핀에 최초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유럽인은 태평양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해군이 동인도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으며, 19세기가 시작되면서 태평양은 식민지와 서부 유럽 해군의 석탄공급항을 얻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다. 태평양에서 근대의 역사는 1894년 일본이 중국의 해군을 제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0년 후에 일본은 다시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격파하면서 태평양 서부지역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태평양에서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1902년 일본과 동맹관계를 맺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태평양상의 독일령 섬들을 얻게 됨에 따라 일본의 해군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1914년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미국이 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일본이 장악하고 있던 주도권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태평양 동부지역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평양 서부지역의 주도권이 일본으로부터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남태평양지역은 현재까지 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무역과 교통
태평양 도서군의 일부 주민은 남아메리카에서 이주해왔으나 이곳 원주민은 아시아계에서 유래되었음이 밝혀졌고, 남동아시아의 반도지역이 미크로네시아·멜라네시아·폴리네시아의 원주민들이 확산된 중심지로 여겨진다.
유럽인은 18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태평양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럽의 상인·식민지개척자·전도자들이 태평양 지역으로 유입되었으며, 인도·중국·일본의 많은 노동자들도 이 지역으로 진출했다(인구이동). 유럽인들은 태평양의 많은 섬에서 자원을 착취하여 이곳의 지역경제가 심각하게 붕괴되었다.
특히 유럽인이 전파시킨 질병과 노예제도, 화기(火器)의 도입에 의한 살상의 증가 등으로 원주민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19세기에는 북아메리카 서해안지역에 공업이 발달하고 미국의 무역이 확대되면서, 북아메리카의 공업생산품과 극동아시아, 오세아니아의 실크·향료 등의 특산품들간에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경제력이 일시적으로 붕괴되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프랑스·네덜란드·미국·영국 등은 태평양지역의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조직·진흥하는 것을 목적으로 남태평양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의 본부는 처음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다가 그후 누벨칼레도니의 누메아로 이전되었다. 태평양에서의 주요 무역형태는 주로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와이와 미국 간, 영국과 프랑스 및 그들의 관할하에 있는 태평양의 섬들 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및 그 주변의 섬들 간에는 긴밀한 무역연계가 이루어져 있다(국제무역). 태평양에서의 교통은 태평양상의 섬들을 잇는 것보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교통편이 더 잘 발달되어 있고, 하와이의 호놀룰루는 이들의 중요한 기항지 역할을 한다.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에 산재해 있는 항구 등을 연결하는 해상무역의 통로이다. 극동지방에서 항공 및 해운 교통의 핵심지는 일본이며, 이곳으로부터 남쪽으로 오스트랄라시아까지, 그리고 말라카 해협을 거쳐 인도양과 대서양까지 항로가 뻗어 있다. 하와이의 호놀룰루, 타히티의 파페에테, 아메리칸 사모아의 파고파고, 피지의 난디, 괌 등이 태평양상 항공교통의 요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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