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제1차 세계대전 1918년의 서부전선

다른 표기 언어

독일은 동부전선에 배치했던 사단들을 서부전선으로 이동시켜 서부전선의 전력을 꾸준히 증강시키고 있었다(러시아가 전쟁에서 발을 뺐기 때문에 동부전선에는 더이상 병력을 배치할 필요가 없었음). 따라서 연합군의 주요문제는 미국에서 대규모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독일군의 임박한 공격을 어떻게 견디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루덴도르프의 관심은 미군 파병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일시적으로 형성된 우세를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이 었다. 제2차 솜 강 전투, 또는 생캉탱 전투(1918. 3. 21~4. 5)라고 불리는 이 공격에서 독일군은 영국군의 허를 찔렀고, 1914년말 이후 서부전선에서 일시에 가장 많은 영토를 얻었다. 독일이 이처럼 많은 땅을 얻었는데도 연합군의 전선은 구부러졌을 뿐 돌파되지는 않았다.

4월에 독일군은 프랑스 영토를 가로질러 진격하기 시작했고, 마른 강변에서 성공적으로 진격을 끝냈다. 그러나 루덴도르프의 성공은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공격을 전개할 때마다 너무 멀리 들어갔고 너무 오랫동안 강행했기 때문에, 군인들은 지치고 물자는 바닥나곤 했다. 그래서 다음 공격까지의 간격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루덴도르프는 선제 타격 부대를 이 공격에 다 써버렸고, 나머지 부대는 수준이 훨씬 떨어졌다. 독일군은 1918년의 이 대공세에서 8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연합군은 이제 매달 30만 명의 미군 병력을 보충받고 있었다. 독일의 다음 공격은 7월에 벌어진 제2차 마른 전투였다. 그러나 이 공격은 헛수고로 끝났다. 주도권을 되찾은 연합군은 이 우세를 잃지 않기로 작정하고, 다음 번 공격대상으로 다시 솜 강 주변의 전선을 택했다. 독일군 수개 사단이 연합군의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따라서 이 아미앵 전투는 연합군 쪽에는 전력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눈부신 승리였다. 루덴도르프는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알렸다. 독일군 수뇌부는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빼앗은 영토를 그대로 보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렸고, 이제는 그저 항복을 피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이때부터 연합군 사령관 페르디낭 포슈는 여러 지점을 잇따라 재빨리 공격하면서 길게 뻗은 독일군 전선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지점은 초기의 반동력이 사라지자마자 무너졌다. 9월초에 독일군은 힌덴부르크 선(線) 뒤로 퇴각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세계사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제1차 세계대전 중 1918년의 서부전선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