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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유럽 국가 대부분과 러시아, 미국, 중동 및 그밖의 지역에 있는 나라들이 대거 참여한 국제적인 전쟁(1914~18) 초기의 서부 전선 전황.
독일군은 8월 4일 아침에 국경을 넘어 벨기에로 쳐들어갔다. 프랑스와 독일 접경 및 프랑스와 벨기에 접경에서 초기에 벌어진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충돌을 통칭하여 국경전투라고 부른다. 8월 14일부터 9월 6일의 제1차 마른 전투까지 계속된 이 일련의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의 가장 규모가 큰 전투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투였다. 이 전투에는 양쪽을 합하여 20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참가했다. 프랑스군이 초기에 로렌 지방의 모랑주-사르부르 전투에서 패배한 뒤, 9월초에 프랑스 정부는 보르도로 피난했고, 파리는 포위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으며, 군인들은 10~12일 동안 마른 강까지 퇴각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조프르 장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반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그결과 벌어진 것이 제1차 마른 전투이다. 그후 3년 동안 서부전선의 전형적 특징이 된 참호전이 시작되었다. 영국 원정군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군은 대규모 진격으로 신속하게 완승을 거둠으로써 프랑스를 분쇄하려는 독일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이 승리 덕분에 파리는 독일군의 점령을 피할 수 있었고, 독일군은 65~80km나 후퇴했으며,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는 프랑스의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서부전선에서 진정한 참호전이 시작된 것은 제1차 엔 전투 때였다. 양쪽은 당장 정면공격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없었기 때문에, 정면공격 대신 병력을 옆으로(이 경우에는 북해와 영국해협 쪽으로) 전개하여 적군의 측면을 에워싸는 것이 유일한 대안임을 알아차렸다. 이리하여 '바다로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양쪽의 참호망은 순식간에 북서쪽으로 뻗어나가 벨기에 해안 바로 안쪽에서 대서양에 이르렀다. 연합군과 독일군의 다음 번 격돌은 벨기에 서부의 이프르에서 벌어졌다. 이 대결은 교착상태에 빠진 채 1917년까지 계속되었다. 1914년말까지 프랑스는 38만 명의 전사자와 60만 명의 부상자를 냈고, 독일군은 그보다 약간 적은 수의 병력을 잃었다. 긴장과 피로에 시달린 양쪽은 참호전에만 전념했다.
함종 | 영국 | 독일 |
드레드노트형 전함 | 20 | 14 |
순양전함 | 9 | 4 |
전(前)드레드노트형 전함 | 39 | 22 |
장갑순양함 | 34 | 9 |
순양함 | 64 | 41 |
구축함 | 3011)각주1) | 144 |
잠수함 | 65 |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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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제1차 세계대전 초기 1914년의 서부전선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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