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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1915~16년의 전략 경쟁과 다르다넬스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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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영국 양쪽은 제각기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했고,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타개를 시도했다. 1914년 9월에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의기소침한 몰트케의 후임으로 독일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1914년말 그는 최종 결전을 벌이게 될 무대는 서부전선이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실제로 작전을 벌일 수 있는 무대는 동부전선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소모전에 대비하여 팔켄하인은 독일의 자원을 개발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독일은 참호 파는 기술을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예비병력의 측면 이동을 위해 군용철도를 확장했다. 독일은 군수품 보급문제와 군수품 제조를 위한 원료조달문제에 정력적·포괄적으로 달려들어 1915년 봄부터는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다. 이런 경제조직과 자원활용은 독일이 영국의 경제 봉쇄에 저항할 수 있었던 힘의 비결이었다.

연합국은 전략을 둘러싸고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조프르는 프랑스에 있는 독일 참호선을 계속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독일의 전략을 지배한 것은 점령한 땅을 계속 지키려는 욕망인 반면, 프랑스인들을 지배한 것은 잃은 영토를 되찾고 싶은 욕망이었다.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영국이 제안한 해결책은 전술적 목적과 전략적 목적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술적 목적의 해결책은 기관총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참호를 넘어갈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여 참호 장벽을 뚫는 것이었다. 이런 기계를 발명하면 공격력에 대한 방어력의 새로운 우세 때문에 뒤집힌 전술적 균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런 기계에 대한 착상은 1916년에 탱크라는 무기가 개발됨으로써 열매를 맺었다.

반면에 영국의 일부 전략가들은 난공불락인 독일의 서부전선을 돌파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발칸 반도를 통해 공격하거나 독일의 발트 해안에 상륙함으로써 동맹국 군대의 배치를 바꾸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략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프랑스측의 승리로 기울어졌고, 연합국은 서부전선에 노력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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