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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시대
화려한 업적을 남긴 문학사 가운데서도 엘리자베스 시대와 스튜어트 왕조 초기는 가장 화려한 시대를 대변한다(→ 색인:튜더 왕가). 동시에 이 시기는 모든 면에서 영국 사회를 변모시킨 광범위한 분열로 인해 엄청난 충격을 던져준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변동에 지적 혁명이 수반되어, 새로운 과학, 새 종교, 새로운 인본주의 앞에 중세적 통합은 붕괴되기에 이른다. 새로운 세기를 대변한 철학자는 실험의 꾸준한 축적을 통한 과학의 점진적 발전을 옹호한 프랜시스 베이컨이었고, 지식의 일반원칙을 체계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 회의주의자 미셸 드 몽테뉴였다.
인본주의와 청교도주의는 무지몽매와 민간전통에 대해 반대했으나, 다행히 그 어느 쪽도 건강한 대중의 취향을 오래 외면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는 장르의 교배(交配) 작용이 계속 이루어져 많은 성과를 낳았다. 귀족풍 목가에 대중적 설화가 끼어들고, 서정시에는 발라드, 희극에는 로맨스, 비극에는 풍자, 시에는 산문이 섞이게 되었다. 언어 역시 급격한 팽창을 계속하여, 고급문학작품이 거리낌없이 구어표현을 빌려왔다. 여러 층의 청중을 대상으로 동시에 말을 걸 줄 알고, 상충하는 경험과 세계관을 한 곳에 연결지을 줄 알았던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은 문학작품에도 복합성과 힘을 부여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와 산문
영국의 시와 산문은 1570년대 후반에 갑작스럽게 꽃피기 시작했다.
우아함과 세련미를 과시하는 유려한 예술성 쪽으로 취향이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에드먼드 스펜서와 필립 시드니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스펜서의 〈요정여왕 The Faerie Queene〉(1590~1609)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대표적인 시로, 형식은 중세의 우화시에다 이탈리아풍의 낭만적 서사시를 융합시킨 것이다. 스펜서는 원래 엘리자베스 여왕을 상징하는 요정의 여왕 글로리아나의 궁정에서 온 12명의 기사가 12개의 미덕을 찾아다니는 것을 12편으로 나누어 그리려고 구상했으나 실제로는 6편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글로리아나의 사랑을 추구하는 아서는 매편마다 나오며, 완벽한 인간인 '장엄'(magnificence)의 모범으로 나타난다. 여유롭게 서서히 진행되는 9행시련(詩聯)과 고아한 언어는 자주 뛰어나게 감각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1591년 발표된 시드니의 〈아스트로펠과 스텔라 Astrophel and Stella〉 역시 소네트(14행시) 연작형식을 크게 유행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시가 교만한 미녀와 실연당한 애인의 이야기를 재기발랄한 솜씨로 다룬 페트라르카풍의 재현인 데 비해, 1609년에 출판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은 그 전통을 뒤엎어놓은 듯 전혀 다른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소네트와 서정시는 엘리자베스 시대 운문의 일부 전통을 나타낼 뿐이다.
이와는 달리 엘리자베스 시대 특유의 우아함을 외면한 형식으로 풍자시(satire)가 있다. 풍자시는 원래 한탄과 연관된 것이지만, 당대인들은 그 용어가 그리스의 사티로스(Satyros), 즉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잘못 해석해 형식과 내용을 합치시킨 나머지 욕설과 매도에 치중하는 시를 썼다. 풍자시 작가들은 '불평객'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을 유행시켰다.
엘리자베스 시대와 스튜어트 왕조 초기의 희곡
이 시대에는 연극이 예술의 중심이었다.
연극은 대중의 생활 속에 침투해 있었고, 다른 어느 형식보다도 사회의 총체적 경험을 반영했다. 연극의 관람료가 싸서 극장 안마당은 서민들로 가득 찼지만, 오후에 그들에게 선보인 작품이 밤에는 궁중에서 다시 공연되는 경우도 많았다. 단순한 문제나 사건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촉발시킬 수 있는 연극의 힘은 바로 편견과 공감을 아울러 표시하는 관객의 다양한 정신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의 연극은 무엇보다도 언어가 지닌 극적 에너지를 과시하는 화극(話劇:spoken drama)이었다.
그리고 무대는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는 유일한 문학 장르였기 때문에 가장 실력있는 작가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1576년 런던에 전용극장이 생긴 것은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그뒤 70년간 약 20개의 극장이 문을 연 것으로 전해진다(→ 색인:연극무대기술). 당시 런던의 극장은 인본주의와 서민취향이 맞닿는 곳이었다.
이들 전문극단은 궁정·대학·법학원 등에서 유행한 인본주의 극의 전통을 이어받는 한편, 지방을 순회하면서 민속놀이·민중오락·축제 등에 바탕을 둔 자신들의 뿌리와 단절되는 일이 없었다. 또다른 전통은 궁중 및 귀족의 향연과 가면극인데, 이것은 유럽 전역에 걸친 것이었으며 영국에서도 다양하게 보존되었다.
영국 최초의 직업적 극작가 세대는 대학재사(University Wits)라는 통칭으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이 별명은 그들의 사회적 자부심을 나타내주지만, 실제로 그들이 쓴 희곡은 주로 중산층을 겨냥한 애국적·낭만적 성격의 것이었다. 그들이 선호한 것은 역사 또는 의사(擬似) 역사적 소재에 어릿광대·음악·사랑이야기를 섞어놓은 것이었다.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작가는 크리스토퍼 말로로서, 그는 호언장담조의 통속적 양식 가운데 내재해 있는 비극적 잠재력을 살려낸 유일한 작가이다.
그가 그린 주인공들은 대단한 야심가로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고양된 무운시로 대사를 읊는다. 〈탬벌레인대왕 Tamburlaine the Great〉(1590)·〈에드워드 2세 Edward Ⅱ〉(1591경)에서 나약한 왕들이 내세우는 정통성을 묵살해버리는 정복자와 정치가들에 의해 기존의 정치질서는 압살되고 만다.
〈몰타의 유대인 The Jew of Malta〉(1589경, 출판 1633)은 경제적 통찰력과 술수를 통해 얻은 권력을 절제없이 휘두르는 상인을 그리고 있다. 대표작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 The Tragical History of Dr. Faustus〉(1593경, 출판 1604)은 뛰어난 학식과 무신론을 내세워 신까지도 위협한 한 인간의 파멸을 보여준다.
그의 극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묵살해버릴 수도 없는 딜레마를 느끼게 하는데, 그것은 바로 당시의 분열된 의식을 명시해주는 것이다. 비슷한 효과는 토머스 키드의 〈스페인 비극 The Spanish Tragedy〉(1591경)에도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초기의 '복수비극'으로서, 주인공은 아들을 잃은데 대한 정당한 보복을 하려 하지만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그것은 오직 법을 자기 손아귀에 넣어야만 이룰 수 있을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독보적인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이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천재성을 간단하게 특징짓는 것이 불가능하다. 작가로서의 포용력이 커서 어느 태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의 작품 어디에선가 유사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이것을 비극 속에 어릿광대를 등장시키고 희극 속에 왕을 등장시킴으로써, 공(公)과 사(私)를 병치함으로써,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섞음으로써 달성할 수 있었다. 그의 취향이 갖는 확실성과 높은 인기에 힘입어 영국의 문예부흥을 이끌면서도 다양한 여러 측면 중 어느 하나를 특별히 부각시키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색인:르네상스). 그리고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극단의 공동소유주로서 모든 차원에서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에 관여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연극인으로서 활동한 기간(1589~1613)은 문학이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와 정확하게 같았으며, 문예부흥의 전체적인 가능성은 그의 작품 속에서만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극은 주로 역사극과 희극이다. 역사극은 그가 독자적으로 개척하여 리처드 2세에서 헨리 7세까지의 영국사 전체를 두 줄기의 4부작으로 극화해 큰 성공을 거둔 장르이다.
헨리 6세를 다룬 3편과 리처드 3세를 다룬 1편으로 구성된 첫 4부작(1589~92)은 프랑스에 대항하는 영국의 용맹에 대한 애국적 찬양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은 이내 정치세계에 관한 성숙된 인식과 환멸로 대체되고 결국 리처드 3세라는 흉칙한 인물의 묘사로 끝난다. 〈리처드 2세 Richard Ⅱ〉(1595)·〈헨리 4세 Henry Ⅳ〉(제1·2부, 1596~98)·〈헨리 5세 Henry Ⅴ〉(1599)로 구성된 2번째 4부작은 악하지만 정통성을 지닌 왕을 폐위시키는 데서 시작해 그 사건이 몰고온 결과를 2세대에 걸쳐 다루면서 그 과정에서 생겨난 왕권·복종·질서라는 어려운 문제를 가차없이 파헤치고 있다.
특히 〈헨리 4세〉는 폴스타프라는 덩치 큰 인물이 등장하며 그가 장바닥에서 보이는 난폭한 행동이 두드러진 극이나, 작가는 통치자들의 장면 사이사이에 통치받는 자들의 세계를 끼워넣어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국민생활을 만화경(萬華鏡)처럼 비춰주고 있다.
초기 희극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중 한 부류인 〈실수연발 The Comedy of Errors〉(1589~94경)·〈말광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1590~94경)·〈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The Merry Wives of Windsor〉(1597~1601경)·〈십이야(十二夜) Twelfth Night〉(1601) 등은 계략희극(計略喜劇)으로서 진행이 빠르고 때로는 소극적(笑劇的)이며 기지를 높이 평가한다.
〈베로나의 두 신사 The Two Gentlemen of Verona〉(1592~93경)·〈사랑의 헛수고 Love's Labour's Lost〉(1595경)·〈한여름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1595~96경)·〈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1599) 등이 속한 2번째 부류는 숲이나 공원 같은 자연으로의 여행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그곳에서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규제에서 풀려나 사회적 관습의 사슬을 벗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한 작품도 삶의 건강을 부여하는 이 희극적인 공간에 침범해오는 인생무상의 회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희비극(喜悲劇)에 가까운 4편의 작품, 즉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1596~97경)·〈헛소동 Much Ado About Nothing〉(1598~99)·〈끝이 좋으면 다 좋아 All's Well That Ends Well〉(1602~03)·〈법에는 법으로 Measure for Measure〉(1604) 등에서 축제는 정상적인 상태가 부과하는 규제·시간·사업·법률, 인간적 무관심, 배신·이기심 등과 정면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1590년대에 유행한 낙관적 사회관의 퇴조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혼란과 모순이 최고로 잘 표현된 것은 그의 비극이다. 이 독보적인 작품들 속에서는 모든 가치, 위계질서, 형식 등이 시험대에 올라 결함을 드러내고, 사회 전체에 잠재해 있던 알력이 분출된다. 셰익스피어는 남편과 아내를, 어버이와 자식을, 개인과 사회를 맞서도록 하고, 왕에게서 왕관을 빼앗으며, 귀족과 거지를 동일시하고, 신들을 심문한다.
그는 최초의 실험비극인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Titus Andronicus〉(1592~94경)에서 대규모의 폭력을 다룸으로써,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1595경)에서 사춘기 사랑의 희극과 낭만적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이미 비극에 대한 재래식 이해와 결별했다. 〈줄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1599)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두었던 종래의 역사극을 세속적·연대적 비극으로 바꾸어, 사적인 판단착오가 몰고온 연이은 공공사건에 휘말려 희생당하는 인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 뒤 이어 나온 주요비극들은 각자 독자적인 범주를 이루고 있으며, 〈햄릿 Hamlet〉(1600)은 복수비극, 〈오셀로 Othello〉(1603~04경)는 가정비극, 〈리어왕 King Lear〉(1605)은 사회비극, 〈맥베스 Macbeth〉(1606)는 정치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Antony and Cleopatra〉(1607)는 영웅비극이다.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각 유형의 모범을 제시해준다.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이 속한 세계는 그들 주위에서 무너져가며 그것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은 그들의 존재를 합리화·정당화해주었던 체제의 부적합성을 드러낼 뿐이다. 문예부흥의 인본주의는 최대의 단일성과인 비극이 성립되는 순간에 구멍뚫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색인:제임스 1세 시대 문학).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은 극작가들은 대부분 현실적·풍자적·반(反)낭만적인 양태를 나타냈고, 그들의 희극과 비극은 도시와 궁정이라는 두 상징적 장소를 무대로 삼아 주로 부와 권력의 추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부 작가들은 힘차게 발전하는 상업도시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러냈지만, 그 반면에 벤 존슨, 조지 채프먼, 존 마스턴, 토머스 미들턴 등은 당대의 근면성을 침략과 탐욕 및 무질서의 표징으로 보는 관점을 취했다.
풍자희극의 발전을 주도한 작가는 벤 존슨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친구이자 맞수로서, 훗날 현대 희극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 장르의 원조이다. 그의 뛰어난 풍자극은 점차 대중희극적 요소를 수용하고 작품에 내재된 도덕적 판단을 외면화시키려 들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볼포네 Volpone〉(1606)·〈에피코이네 Epicoene〉(1609)·〈연금술사 The Alchemist〉(1610)·〈바솔로뮤의 장날 Bartholomew Fair〉(1614) 등의 작품에서 바보와 악당들은 끝도 없이 무모한 행동에 탐닉하면서 관객의 비판과 찬양을 동시에 강요한다.
도시희극에서 존슨의 뒤를 따른 작가인 프랜시스 보몬트, 존 마스턴, 토머스 미들턴 가운데 존슨과 비슷한 사회적 관심을 지녔던 사람은 미들턴뿐이다. 그의 대표적 극 형식은 계략희극이지만, 〈여자는 여자 조심 Women Beware Women〉(1612경)·〈교환 The Changeling〉(1622) 같은 비극 역시 사회적 관심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고전적 국사(國事) 비극을 쓴 작가로는 음울한 이탈리아 궁정을 무대로 계략·음모·염탐꾼·불평분자·밀고자 등을 등장시킨 존 웹스터가 있다. 그의 〈흰 악마 White Devil〉(1612)는 분열되고 모호한 극으로, 사악한 여주인공마저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부패가 극에 달한 사회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몰피의 공작부인 The Duchess of Malfi〉(1623)의 여주인공은 그녀가 사는 세계 속에서 품위와 용기를 잃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녀의 고귀한 죽음조차도 뒤따라 일어난 아무 쓸모도 없는 우발적인 대학살을 막을 수 없다. 제임스 왕조시대의 연극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남성이 지배하는 권력의 세계에 대한 도전은 여성의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스튜어트 왕조 초기의 시와 산문
1640년대의 정치적 붕괴와 그 직전부터 점차 증가된 사회적·문화적 일탈현상으로 스튜어트 왕조 초기에는 어떤 합일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고급문학과 저급문학 간의 괴리가 점차 심해짐에 따라 엘리자베스 시대의 작품들이 지녔던 강렬함은 거의 사라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를 미덕을 권장하는 설득자로 보았던 옛 생각은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고, 특히 합리적으로 균형잡힌 2행연구(聯句)의 시와 자서전 및 소설 등이 새로운 문학 형식으로 대두된 것이 이 시대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시에서는 존 던이 형이상학파라고 알려진 전통을 대변한다.
그는 16세기의 핵심 전통인 평이한 시 전통의 정점에 있었다. 그의 언어는 항상 극적이며, 운문은 '강렬한 시행'·불협화음·일상회화체를 사용하고 있다. 존 던은 최초의 런던 출신 시인이라고 할 만하다. 초기 풍자시와 애가들은 바쁜 대도시의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으며, 최고 걸작이라 여겨지는 연가나 소네트는 상호모순되는 태도·역설·우발성 등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어 도시생활의 근대적인 모습을 실감나게 한다.
그는 전통적인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거부하여, 정신적·종교적 맥락으로만 사용되던 언어로 애인을 열렬히 찬양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존 던은 마지못해 교회 직분을 가짐으로써 사회적 명망을 얻었겠지만, 그의 종교시조차 세속시와 마찬가지로 자기확신과 자기비하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존 던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그의 추종자 중 가장 흥미있는 사람들은 조지 허버트, 리처드 크래쇼, 헨리 본 등의 종교시인들이다. 실제로 경건한 신앙심을 지녔으며 부유한 집안 출신인 조지 허버트는 존 던의 고통스런 자아를 대신해서 자비롭고 명상에 잠긴 확고한 신념을 표현했다.
로마 가톨릭교도인 리처드 크래쇼는 찬양시를 통해 대륙의 바로크 문학이 지닌 감각적 환희와 풍요로움을 소개했다. 헨리 본의 시는 심원한 자연주의와 신비스런 황홀경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던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는 앤드루 마블이다. 마블의 뛰어난 작품은 군더더기가 없고 긴장감이 있으며 표현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궁정시풍의 서정적인 우아함과 청교도적인 언어의 절제가 독특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벤 존슨의 전통을 따른 것은 사회적 성격의 시였다. 이 부류의 시는 고전의 명증성과 무게를 지닌 동시에 교양있는 분별력, 격식에 대한 존중, 내면적인 자족감이라는 이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즉 그것은 일반대중이 공유한 가치관과 규범을 표현한 시였다. 존슨에게 있어서 평이한 문체란 노력과 절제 및 통제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를 계승한 로버트 헤릭, 토머스 커루, 존 서클링 경, 리처드 러블레이스 등의 궁정시인들은 세련됨과 환락이라는 요소를 더욱 부각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색인:왕당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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