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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비극은 원래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기 위해 공연되었다. 그리스 비극의 소재는 신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잘 알려진 신화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극적 흥미는 줄거리보다는 합창단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변화하는 의식과 반응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악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시각을 보여주고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떤 방식으로 악에 대결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7세기 프랑스의 고전비극은 전설적인 소재와 그리스 비극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세기 북유럽의 헨리크 입센 등의 희곡은 형식적인 운문보다는 산문으로 씌어졌으며,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소재로 삼았다. 20세기에는 연극에서 비극은 거의 부각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문학형식인 소설에서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이 용어는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 적용되기도 한다.
비극의 형식은 그리스 시대에 비롯되었고 이 용어 역시 그리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산양(山羊)의 노래'를 뜻하는 말로 원래 디오니소스 신과 연관된 풍요제(豊饒際)에서 어린 양을 제단에 바치는 행위를 가리켰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극은 원래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기 위해 공연되었다. 죽음과 재난의 그늘 아래 펼쳐지는 삶의 문제와 상황이라는 철저하게 보편적인 비극의 주제는 삶·쇠퇴·죽음·재생이라는 주기적인 리듬과 연관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합창단의 노래와 몸짓으로 이런 신비성을 찬양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합창단 가운데 한 사람이 나와 합창단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이스킬로스가 또 한 사람을 분리시켜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가능케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동시에 3명까지 무대에 출현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리스 비극의 소재는 호메로스의 작품 등에 등장하는 신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세인에게 잘 알려진 신화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극적 흥미는 줄거리보다는 합창단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변화하는 의식과 반응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그리스 신화). 또한 중요한 사건은 주로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되기보다는 무대 밖에서 사건이 일어나서 무대 위에서는 단지 보고되고 해설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Oedipus the King〉에서와 같이 흔히 줄거리가 전개됨에 따라 남녀 주인공은 의지나 환경, 치명적인 무지, 혹은 책임감 등에 자극을 받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궁극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결국 어김없이 불행한 결과를 낳는 냉혹한 운명의 작용에 직면한다. 그러나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은 의심할 바없이 그가 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위대함과 존엄성을 보여줄 수도 있기 때문에, 시련을 겪는 것이 완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로마 시대에, 특히 세네카에 의해 각색된 그리스 비극은 격렬한 감정과 열변을 토하는 웅변조의 경향을 띠었는데, 이런 특성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비극에도 나타났다(엘리자베스 시대 문학). 초서와 중세 유럽인에게 비극은 단순히 어떻게 위인의 운명이 처음에는 번영하다가 결국에는 비참해지는가를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새로운 모험정신과 신대륙발견 탐험 및 개인적 성취에 따르는 보상과 위험에 대한 매력에 힘입어 신(新)세네카적인 흔히 과장된 '피의 비극'이 만들어졌는데, 그 예로 토머스 키드의 〈스페인의 비극 The Spanish Tragedie〉(1589경)을 들 수 있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탬벌레인 Tamburlain〉(1587)·〈파우스트 박사 Doctor Faustus〉(1588경)에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야망을 간직하고, 몰락하는 순간에도 장엄함을 잃지 않는 야망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당시의 극적 요소들을 결합한 것이지만, 악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시각을 보여주고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떤 방식으로 악에 대결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시의 비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셰익스피어는 리어 왕이나 덴마크 왕자 햄릿같이 출중하나 불완전한 공인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아 주인공의 행위와 불행에 사회적·정치적 질서 전체를 연루시키려 했다.
17세기 프랑스의 고전비극은 엘리자베스 시대 비극과는 달리 전설적인 소재와 그리스 비극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이후의 비평가들이 체계화한 시간·장소·행동의 일치라는 인습으로 의식적으로 복귀했다(프랑스 문학). 라신과 코르네유의 작품에서는 그리스 신전의 신들이 틀에 박힌 문학적 인습이 되어 있다.
그러나 비극적 필연성에 대한 의식은 남아 있어서, 종종 사랑과 의무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 개인들이 격심한 개인적 고뇌의 순간에서조차 인간의 존엄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9세기 북유럽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비극이 생겨났다. 헨리크 입센,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안톤 체호프의 희곡은 이전의 비극과는 달리 형식적인 운문보다는 산문으로 씌어졌으며, 그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소재로 삼았다. 입센은 개인의 좌절, 특히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이 유전적인 질병 혹은 그가 저항해왔던 사회의 구속과 부패의 희생물로 전락할 때 겪는 좌절을 파헤쳤다.
스트린드베리는 강박관념에 지배되지만 파괴적인 성질을 지닌 성의 문제를 파헤쳤고, 체호프는 부패해가는 사회질서 속에서 특권층이 겪는 권태와 공허함을 깊이 있게 탐색했다.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수많은 성공적인 비극 작품을 발표했음에도 20세기 연극에서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비극은 거의 부각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다른 문학형식인 소설에서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토머스 하디, 조지프 콘래드, 윌리엄 포크너 같은 작가들이 비극적 전통의 가치를 명백하게 상기시키는 소설을 썼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극에 활력을 줄 수도 있었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재앙이 일어났고, 전후 연극에서 인간의 고독과 소외에 대한 감동적인 탐구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비극을 사멸 직전의 문학형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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