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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350~1550년에 영문학의 본질과 발전을 규정한 가장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이 시대 초기에 영국이 처해 있던 특수한 언어적 상황이었다.
전체 인구 가운데 문자를 해독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보통 2개 국어 심지어 3개 국어를 사용했다. 문학적 언어매체의 측면에서 영어는 라틴어나 당시 영국에서 널리 사용된 프랑스어의 앵글로노르만 방언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어 내에서도 방언마다 차이가 심한 것이 토착어 문학의 유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문화는 흑사병의 창궐(1347~51), 백년전쟁 및 장미전쟁과 같은 국내외의 고질적인 군사적 충돌, 사회적·정치적·종교적 불안정 등의 강력한 저해요인에 직면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또 번창하기에 이르렀다.
중세 후기 영시
그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운을 밟지 않는 두운시가 14세기 중엽에 다시 나타났다.
14세기 말엽의 두운시는 고대영어 시대의 전통을 극히 표면적으로만 이어받았거나 자체의 형식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두운시 운동은 지금 볼 때 다소 기이해 보일 뿐 별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기지 못한 사소한 문학적 현상으로 생각될지 모르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어느 단일 저자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4편의 시만은 예외이다. 기사도 로맨스 〈가웨인 경과 녹색기사 Sir Gawayne and the Grene Knight〉, 2편의 설교시 〈인내 Patience〉·〈순결 Purity〉, 그리고 〈진주 Pearl〉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애가체 꿈 우화가 그것이며, 모두 1400년경의 단일 필사본 안에 들어 있다.
그밖의 유명한 작품으로 윌리엄 랭런드의 길고 난해하며 아름다운 두운시 〈농부 피어스 Piers Plowman〉가 있다. 이 두운시 운동은 대체로 15세기초에 끝났지만 궁정시가는 더 오래 그 맥이 이어졌다. 1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궁정과 귀족사회에서 영어가 앵글로노르만 프랑스어를 대체하게 되는데, 이러한 언어의 자국어화 과정은 제프리 초서와 같은 기질이나 관심을 지닌 작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었다.
또한 영어를 문어로서 확립한 초서의 천재성이 이 과정을 촉진시키고 그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초서는 부르주아 출신의 런던인으로서 궁정인·외교관·공무원 등 여러 경력을 거쳤다. 그의 초기 시는 '궁정풍'이라는 용어와 관련된 견해나 가치관을 담고 있으며, 아주 초기의 시는 당시의 프랑스 연애시에서 형식과 내용을 빌려온 것이었다(→ 색인:궁정연애). 그러나 그가 새로운 문학적 시도로서 결국 10음절, 즉 약강 5보격의 시행을 터득한 것은 영시에 있어 극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닦은 기량은 처음에 7행시 등 연시가(聯詩歌) 형식으로, 뒤에 가서는 〈캔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의 대부분을 이루는 10음절 2행연구체(聯句體)로 나타나게 되었다. 초서의 주요업적은 이야기체 시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초기에 보인 프랑스 궁정연애시(특히 그가 번역한 〈장미 이야기 Roman de la Rose〉)의 영향에서 차츰 이탈리아 문학, 특히 단테·페트라르카·보카치오 등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갔다.
초서는 이야기체 시의 기교를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최고로 발휘했는데, 이 장시는 런던을 출발해 성(聖) 토머스 베킷의 사원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순례자 일행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담은 미완성 작품이다. 시인 자신이 아니라 순례자 개개인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가상의 구조는 작가의 입장을 매우 자유롭게 만들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초서는 여러 장르를 섭렵할 수 있었다.
예컨데 경건한 전설, 파블리오(fabliaux:익살조의 우화시), 기사 로맨스, 통속 로맨스, 동물우화 등이 그것이다.
중세 후기 영어 산문
15세기에는 여러 종류의 본격 저작물에 영어 산문이 사용되는 추세가 굳어졌다.
후기 중세 영어의 산문 가운데 최고의 작품은 토머스 맬러리 경이 쓴 일련의 아서 왕 전설인데, 이것을 1485년에 출판한 윌리엄 캑스턴은 〈아서의 죽음 Le Morte d;arthur〉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스스로를 기사출신 죄수라고 설명한 맬로리의 신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명확한 점이 있다. 이 작품에 스며 있는 기사도에 대한 향수와 비극적 감정의 독특한 혼합은 아서왕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에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중세영어 희곡
중세영어의 희곡은 주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과성의 공연대본이었기 때문에, 당시 방대한 분량이었을 극작품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남아 있다.
14세기 후반 이후 주류를 이룬 연극 장르는 2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신비극 또는 성체극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극이다. 신비극은 성서 이야기를 바탕으로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의 타락, 속죄 등을 다룬 긴 연작극이며, 동업조합이 돈을 대고 공연하는 형식으로 마을의 거리나 광장에서 4륜마차를 이동무대로 사용했다. 현재 남아 있는 극본은 요크·체스터·웨이크필드 그리고 이스트앵글리아에서 공연된 것이 전부이다.
도덕극은 인류를 대표하는 한 인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때로는 죽음 이후까지의 인생살이를 그린 우화극을 말한다. 주인공 이외에 악덕·미덕·죽음·회개·자비 등의 의인화된 추상적 인물이 등장한다. 도덕극을 재미있고 다양하게 모아놓은 것으로 '매크로 희곡집'(Macro Plays)으로 알려진 〈인내의 성 The Castle of Perseverance〉·〈예지 Wisdom〉·〈인류 Mankind〉 등이 있으나, 단일작품으로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만인 Everyman〉이다.
이것은 죽음의 도래를 주제로 한 네덜란드의 극을 영어로 옮긴 뛰어난 작품이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과도기
15세기는 세속문학이 성장한 중요한 시기이며, 그 과정은 1476년 윌리엄 캑스턴이 영국에 인쇄술을 도입함으로써 급속히 촉진되었다.
그가 맬러리의 아서왕 전설을 펴낸 해(1485)는 바로 헨리 튜더가 헨리 7세로 등극한 때이며 이때부터 16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는 영문학사에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과도기로 불린다. 이 시기에는 산문과 희곡에서 다같이 교육과 선정(善政)이라는 2가지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영국 인본주의의 걸작인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Utopia〉(1516)는 원래 라틴어로 씌어졌다가 1551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 시기의 시에서 가장 뚜렷한 목소리를 낸 사람은 존 스켈턴이다. 16세기 전반에는 음악성을 바탕으로 좀더 엄격한 의미의 시로 볼 수 있는 궁정 서정시가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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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후기 중세 및 초기 르네상스 시대 영국문학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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