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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시대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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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에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서 득세하자, 이교도인 그리스·로마 역사가들의 저술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역사학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 역사학의 기원은 유대였다(→ 유대교). 고대인들 가운데 유대인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무로 삼은 유일한 민족이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대인의 역사는 하느님이 선민(選民)인 자신들을 위해 세운 계획의 실현을 찬양하는 것이었으며, 이 신성한 글들은 하나로 묶여 〈구약성서〉가 되었다.

그리스도교도는 〈구약성서〉를 이어받아 거기에 새로운 종교적 역사를 추가했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신약성서〉는 대체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저자들이 쓴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은 그리스도교도들에게는 〈구약성서〉의 여러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언이 실행된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연대기 저자들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의지를 밝히는 일과 관계가 있게 보이는 사실에만 관심을 쏟았고, 그런 사실들만 골라서 기록했다.

그리스도교도는 역사상 처음으로 보편적 역사라는 개념을 개발했다. 비판자들과 맞서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이교도의 역사를 그들의 보편적 체계 속에 끼워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상당히 교묘하게 이 일을 해냈다.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저자들은 하나로 통합된 보편적 연대체계를 고안했다. 6세기초에 로마에서 저술활동을 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연대체계를 도입했다. 8세기에 잉글랜드의 역사가 비드는 이 연대체계를 널리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 디오니시우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분명 역사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신국 De civitate Dei〉이라는 책을 통하여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느님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본 그의 시각은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의 견해를 지배했고 역사를 다루는 그들의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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