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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역사학의 방법론은 기존 지식을 존중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찾고 가설을 만든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윤곽은 다른 학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역사 저술도 기량과 경험에 따라 성공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의 저술과 마찬가지이다. 과거를 시간이나 사건에 따라 나누는 것은 역사가들의 인간적 한계를 반영할 뿐이다. 역사학의 방법론은 4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데, 역사가의 기량이 높을수록 그런 측면들은 의식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역사가는 2가지 이상의 측면에 동시에 관여할 수 있다. 그 4가지 측면이란 발견적 학습,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해석에 대한 지식, 연구, 저술이다.
처음 2가지는 간단히 생각할 수 있다.
발견적 학습은 훈련과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연구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채택되어왔다. 역사가의 경우, 발견적 학습은 필사본 수집에 대한 지식, 색인 카드를 만들고 자료를 분류하는 방법, 도서목록에 대한 지식 따위를 포함한다. 발견적 학습은 방법론의 다른 측면들, 예를 들면 같거나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역사가들의 능력에 대한 지식이나 문서자료를 신속하게 다루는 능력의 기초가 된다.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해석을 알아야 할 필요성은 연구가 항상 알려진 것에서 출발하여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실무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역사가는 자신의 분야뿐 아니라 인접한 역사학 분야 및 역사학과 관련된 학문분야에서 이미 이루어진 성과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경우의 성과는 '사실'과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사가가 받아들이는 정도는 경우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역사가는 대개 자신의 분야에 해당되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해석은 결코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접한 역사학 분야에서는 사실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린 해석을 받아들이겠지만 발견적 학습과 그 자신의 일반적인 역사학 지식으로 그것을 수정하거나 한정한다.
인류학·경제학·지리학·자연과학·문헌학·심리학·사회학 등의 관련 분야에서는 반대되는 강력한 증거가 없는 한 그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기량과 지적인 정직성을 믿어야 한다. 물론 역사가가 역사학 이외의 학문에도 정통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고, 연구의 성격상 요구된다면 다른 학문에도 정통해야 한다.
역사연구는 역사가가 관여하고 있는 분야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런 사건들에 대한 지식은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보전달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으며, 이런 정보들은 특정한 시대나 주제에 대한 사료(史料)를 형성한다. 역사가는 사건 자체를 결코 경험할 수 없고, 그가 입수할 수 있는 것은 사건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기록 및 구전이나 사건의 최종결과인 사료이다. 이런 기록이나 최종 결과를 우리는 유물이나 형적 또는 사건의 흔적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역사가는 그 사건을 추론할 수 있지만 그 추론에 대한 확신의 정도는 다양하다. 따라서 흔적은 역사의 '사실'이고, 실제 사건은 사실을 바탕으로 추론한 결과이다. 역사연구는 당면문제와 관계가 있는 흔적들을 찾아내고, 그것이 적절한 흔적들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 이런 흔적들을 토대로 추론하는 데 관여한다.
사료
사료는 문헌사료·물질사료·전승사료 등 세 부류로 나뉜다.
문헌사료는 다시 주관적인 사료와 공식사료로 나뉜다. 주관적인 사료는 개인의 눈을 통해 본 사건들, 따라서 그 개인이 해석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우에는 대개 주관적인 사건 선정이나 동기 부여가 수반되게 마련이다. 공식사료는 거래 관계에서 작성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인간의 거래에서 국가간의 거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의 거래를 포함한다.
주어진 정보는 기본적으로 비개인적인 진술형태로 되어 있으며, 인과관계나 동기에 대해서는 지극히 피상적인 암시만 포함되어 있다. 사실상 주관적인 사료와 공식사료의 경계는 모호하여, 하나의 문서가 이 2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 2번째 부류인 물질사료는 과거 인간활동이 낳은 물체로 이루어져 있다. 3번째 부류인 전승사료는 뒤에 기록되어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말이나 관습으로 전해 내려온 것을 포함한다.
가장 명백한 보기는 전통 관습, 자장가 같은 전승 동요, 민간 전승, 지명 등이다. 어떤 특정한 사료를 거기에 대응하는 다른 사료와 비교해보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해석을 알면, 역사가는 대개 그 특정한 사료가 진실인지, 부분적으로 진실인지, 아니면 날조된 가짜인지를 알 수 있다. 그 사료가 진실이거나 부분적으로 진실이라 해도 문헌사료와 일부 전승사료에 포함되어 있는 주관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오늘날 공식사료나 물질사료 또는 전승사료로 남아 있는 흔적을 토대로 사건 자체를 재구성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료의 분류는 본래 실용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서, 서로 다른 부류에 속하는 사료를 다룰 때 필요한 서로 다른 기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명문이 새겨진 묘비는 역사가의 관심이 명문의 내용에 있느냐 아니면 돌 자체에 있느냐에 따라 문헌사료가 될 수도 있고 물질사료가 될 수도 있다. 연구의 성격에 따라서는 보조 학문분야에 대한 전문적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보조 학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고학·서지학·연대학·고문서학·금석학·족보학·고서체학·인장학·원문비평학 등이다. 역사가가 사료에 씌어진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거의 말할 필요도 없다.
많은 역사가들은 사료를 편찬하는 데 시간의 일부를 바친다. 이것은 역사에 관한 저술이 아니지만 그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역사가들에게 유용하다. 그러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사실을 모으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골동품 수집이며, 역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최종 결과는 역사가 자신의 저술이다.
사료 활용법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역사의 방법론이 아니라 철학에 속하는 문제이다.
역사라는 말 자체는 2가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과거 및 사회가 과거에 겪은 경험이 그것이다. 사회가 무슨 이유로 과거의 경험을 활용하고 싶어하는지는 역사가의 관심사가 아니며 역사가의 임무는 사회가 과거의 경험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후세가 참조할 수 있도록 과거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활용하려면 그 경험의 중요한 요소들을 정확히 되살려야 하며, 그 요소들의 인과관계와 발생순서를 확정해야 한다.
역사가도 사회의 과거 경험을 다루는데 그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흔적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자신의 작업과 관계가 있는 흔적들을 선택하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는 일은 역사가에게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역사가의 성향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된다.
역사학에서는 이 주관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고, 역사가는 지적인 오류가 끼어들 여지를 되도록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료를 다룰 때 필요한 것은 세심한 주의와 전문적 능력뿐이다. 따라서 지적인 오류가 끼어들 수 있는 곳은 주로 가설을 세우고 가설간의 관계를 확정하는 과정이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역사가들의 견해는 지적인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연구성과가 남에게 인정을 받으면 널리 통용되는 해석의 일부가 되고 때로는 정당한 역사로 간주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해석이 모두 그렇듯이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의한 수정을 면할 수는 없다.
역사의 방법론은 19~20세기에 좀더 명확히 체계적으로 서술되었지만, 때로는 먼 옛날의 역사가들이 이룩한 성과를 오늘날의 기준에 따라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방법론과 과거의 일반적인 방법론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중세의 저술은 대부분 문헌사료와 당시에 널리 인정된 해석을 무조건 따르기 때문에, 몇 세기 동안 선배 역사가의 저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19세기 이전에 유럽 역사가들의 대다수는 공식사료를 비교적 무시했지만 대체로 문헌사료를 수정하는 일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대적 방법론의 발전을 방해한 가장 큰 장애물은 다양한 역사해석이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역사를 문학의 한 형태로 여기는 관점은 역사를 상상력에 바탕을 둔 예술의 한 형태로 만들어 정확성보다는 오히려 우아함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이 '윤리적'인 역사관이다. 이 관점은 역사를 개인과 행동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이것과 정반대되는 것이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객관적' 또는 '과학적' 역사이다.
객관적 역사는 사실 불가능하지만 이 역사관은 조사·연구의 필요성을 일반화시키고 보조학문을 발전시켰다. 역사를 선전 목적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장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사실상 허구에 불과하게 되며 따라서 조사·연구도 수반되지 않는다. 좀더 교묘한 형태를 취할 경우에는 조사·연구의 정확성을 장려할 수도 있지만, 불리한 흔적들을 고의로 은폐하도록 조장하거나 관계를 해명할 때 지적인 속임수를 조장할 수도 있다.
역사가가 모든 사건과 관계를 예외없이 따라야 하는 법칙이나 선험론을 주장할 경우 이러한 조작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은 방법론과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물이 된다. 중세에는 인간사에 대한 신의 개입이라는 이론이 지지를 받았고, 오늘날의 많은 지역에는 마르크스 이론이 유행하고 있지만, 어느 쪽이든 역사를 선전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방법론과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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