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주관적 경험

다른 표기 언어

개요

심적인 것의 본질은 주관적인 경험들로 여겨지는 의식의 상태들로 구성되어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경우 그는 광학기구를 사용함으로써 주홍색을 다른 색으로부터 구별할 수는 있겠지만, 주홍색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 즉 '순수느낌'(raw feel)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심적인 것의 규준으로서의 적합성

이제 주관적 경험이 심적인 것의 규준으로 얼마나 적합한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 주관적 경험은 어떤 것이 심적인 것이기 위한 충분조건은 되지만 어떤 것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충분조건이 되는지는 문제가 된다. 은 어떤 존재가 의식적 상태를 갖고 있다고 해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기억에 의해서 연결된 여러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의식의 복잡한 단계일 뿐이다. 또한 의식이 심적인 것에 필요조건인지도 의심스럽다.

물론 프로이트 이전에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되었다. 적어도 심적인 것과 무의식은 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7세기초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통념을 깨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미미한 지각'(petites perception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무의식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가 인정한 무의식은 지각에 국한되는 정도였고 무의식적 욕구나 감정, 믿음 등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프로이트의 가장 큰 공헌은 무의식도 심적 현상에 관여시켰다는 데 있다. 비록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의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환자의 무의식적 세계는 억압된 상태이며 최면술이나 심리치료를 통해 의식하게 된다.

무의식과 잠재의식도 어떤 성향을 지닌 것으로서 심적 현상을 이루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주장을 더 밀고나아가 G. 라일은 많은 경우에 사람은 주관적 경험을 느끼지 않고도 마음을 사용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마음은 드러난 행위나 표현의 초자연적 근거가 아니라 바로 드러난 행위나 표현 그 자체이다. 결국 주관적 경험이 심적인 것의 필요조건은 아닌 것이다.

라일은 주관적 경험의 사적 사건들을 심적인 것의 중앙에 두고자 했던 사람들은 '범주오류'를 범했다고 보았다.

즉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일상 세계에서처럼 실제 사실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주장하는 착각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일의 주장에 따르면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성향·경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주관적 경험들이 결정적인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성급한 것이다.

왜냐하면 경험되지 않는 라이프니츠의 '미미한 지각'이라는 것도 이것에 익숙한 사람이나 홀로 조용히 있거나 좀더 집중을 하게 될 때 그것을 경험할 수도 있고,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도 환자가 아닌 정상 상태의 사람은 의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의 상태와 연관을 갖지 않는 어떤 것이 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주관성의 핵심적인 특징

철학자들은 여전히 주관적 경험에 독특한 것이 무엇인가를 특징짓는 방법에 관해 심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공유되거나 승인되지 않는 순전히 주관 자신 내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경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라일은 이러한 견해를 '심사숙고의 남용' 또는 '기계 속 유령의 독단'이라고 불렀다. 라일의 견해에 따르면, 사적인 사건들은 심적 현상의 전영역에 있어서 사소하고도 비본질적인 것일 뿐이다. 사실상 사적이라는 개념은 2가지 관념의 융합이다. 즉 심적 사건들이 공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형이상학적 생각과 심적 사건들은 오로지 그 사건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의식된다는 인식론적 생각의 융합이다.

데카르트는 비(非)심적인 것은 공간 속에 어떤 자리를 점하고 연장되어 있는 데 반해서 심적인 것은 공간성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물적 사건은 어떤 장소에서 발생하는 데 반해서, 심적 사건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심적 사건을 경험하는 사람은 분명히 어떤 위치를 갖고 있는데 어째서 이 사람이 경험하는 심적 사건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있지 않는가?

비공간성의 규준을 옹호하는 사람은 심적 사건에 위치를 부여하는 것은 물적 사건에 위치를 부여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고 본다.

물적 사건의 경우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가 있음을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가 사유한다는 것은 그처럼 경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물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있어도 한 인간이 사유하는 사건에 대해서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위치 부여 차원에서 물적인 것과 심적인 것의 구별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비공간성이 심적인 것에만 특별히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병이나 변하고 있는 형태로부터 발견된 물적 사건의 경우, 그 사건이 전영역에 걸쳐서 발생했는지 아니면 어떤 부분이나 지점에서 발생했는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공간성이 심적인 것의 유일한 규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주관성의 특별한 위치

철학자들 중에는 주관적 경험들을 사적인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사건을 인식하는 특별한 방식, 특히 내성에 의해서 아는 방식으로 취급하는 이들도 있다.

로크는 이 주관적 경험을 감각(sensation)과 대비시켜 반성(reflection)이라고 했다. 반성은 마음이 스스로 작용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인식대상이 아니라 인식작용이 문제가 된다. 즉 사적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은 인식된 대상이 사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대상을 인식하는 작용이 사적이라는 것이다.

내성 자체가 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 심적 사건이 내성이 아니라 감각지각이나 추리에 의해서 알려진 것일 수도 있다. 몇몇 현대철학자들은 인식작용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방식이 있다는 이와 같은 의견에 반대한다. 특히 라일은 내성과 같은 방식은 다수의 공감을 얻기 힘들고 나아가 한 사람이 다수의 심적 현상들을 동시에 집중할 수 없고, 심지어 공포나 격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그 심적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심적 사건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어떤 특정한 방식, 즉 사적인 내성에 호소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라일의 이러한 견해가 얼마만큼 영향력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아주 많은 심적 현상들에 동시적으로 집중할 수 없다고 해서, 또한 공포나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신을 내성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가능성마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라일도 내성은 거절했지만 회상은 인정했듯이, 동시적이냐 계기적이냐의 차이는 이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는 한 내성이 배제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내성이 심적인 것을 정의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심적 사건은 내성될 수 있는 심적 사건이다. 하지만 '내성된다'는 것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내성된다'는 것이 '수리나 감각지각 없이 알려지는 것'으로 정의된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심적이라고 부르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신체적 사건, 예를 들어 신경계의 근육운동의 지각만으로 가슴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경우도 지향성이라고 해야 하므로 심적인 것의 특징인 지향성이 곧 신체에 특징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또한 나아가 내성을 심적인 것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해도 이미 내성 자체가 사적이기 때문에 공적인 정의에 이를 수 없다. 이처럼 내성을 심적인 것에 규준을 둘 때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과연 내성이 심적인 것의 규준으로서 전혀 자격을 갖지 못하는가? 앞에서는 한 개인이 자신의 심적 상태를 아는 것과 심장이 급속도로 뛰는 것을 아는 것은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자는 1인칭적 현재 경험으로서 오류일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1인칭적 현재 경험 역시 의심할 수 없는 것(indubitable)이 아니라 엄격하게 따져보면 교정이 불가능한(incorrigible)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확실성). 즉 그것은 착각 속에 빠져 있어서 교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도 한번 더 생각해보면 착각이라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 부인되지 않는 한 교정도 가능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심적 상태를 인식하는 것과 심장이 급속도로 뛰는 것 사이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자신의 현재의 심적 사건들에 대한 믿음이 가장 강한 확신을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이며 이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주관적 경험의 특권에 강조를 두게 되는 것이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서양철학

서양철학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주관적 경험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