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고대 서양의 실내장식

다른 표기 언어

개요

서양에서 실내장식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발굴된 고대의 유물들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실내 비품은 벽돌을 쌓아 만들어 의자·테이블·침상으로 사용한 것들로, 그 위에 직물이나 짐승가죽을 씌웠을 것이 분명하다. 벽은 페인트 칠을 했고 중요한 건물에는 벽화로 장식했으리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다. 이동성(移動性) 가구는 처음에는 왕궁과 같은 저택과 공공건물에만 있었던 것 같으며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고 대부분 벽화, 조각, 꽃병의 그림으로만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BC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무덤들에서 출토된 몇 개의 가구가 보존되어 있는데 침상·의자·테이블·장롱 형태의 것들이다. 그러한 가구들에서 처음 발견되는 장식은 가구(특히 침상)의 지주로 쓰인 황소와 사자 다리이다.

이집트

20세기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된 많은 기념비적인 석조 무덤 및 사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가옥들은 내구성이 없는 자재들로 건축되었으며, 따라서 현재까지 보존된 유적이 거의 없다.

벽은 햇볕에 말리거나 가마에서 구워 만든 진흙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고, 마루는 흙을 다져서 만들었으며, 안벽의 마무리 작업으로는 흔히 반반한 진흙을 얇게 입혔다(벽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벽 장식은 꾸밈이 없이 흰색 또는 색깔을 넣어 칠을 한 것이었지만, 보다 큰 저택에는 진흙 위에 정교하고 다양한 무늬를 칠했다.

이집트의 장식 모티프 가운데는 생명의 근원인 나일 강과 연관된 자연 형상들에서 따온 것이 많았다. 연꽃과 연꽃의 봉오리, 파피루스, 야자나무가 체크 무늬의 테두리나 감긴 줄 모양의 나선과 함께 장식되어 공간감과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스

고전시대(BC 5세기)의 그리스 가구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없다시피하지만, 가구가 훌륭하게 제작되고 정교하게 장식되었다는 많은 증거가 되고 있다.

그림을 새긴 도기가 지금까지 대량 남아 있어 그리스 생활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가구(의자, 테이블, 일상 식탁용의 소파 등)와 수많은 액세서리를 볼 수가 있다. 사실상 이 그림들은 19세기초 프랑스 제정양식에 큰 영향을 미친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스 가구에 미친 이집트의 영향은 초기의 가구 일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다리 끝마다 동물의 발 모양이 달려 있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이것도 프랑스 제정양식에서 애용된 주제의 하나였다.

헬레니즘 시대(BC 323~31)

이때는 가정적인 안락함과 장식이 다시 존중되었다.

실내의 모자이크 바닥은 중요한 장식의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올린토스(그리스 고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같이 조약돌로 만들어졌지만 차차 로마 제국 전역에서 널리 쓰이게 되는 모자이크로 발전해갔다. 중심부가 정교하게 설계되고 가장자리는 소용돌이나 열쇠무늬로 거칠게 장식되며 넓고 사실주의적인 모티프로 디자인된 패널은 가구의 안배에서 하나의 초점 역할을 했다.

로마

로마의 실내장식은 알려진 것이 많으나 로마의 가구는 전(前)시대의 그리스 가구를 모델로 했다.

서기(西紀)초부터 서양을 지배한 양식은 로마를 경유하여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양식이었다. 고전적인 양식들은 수학적인 비례 법칙에 바탕을 두었는데, 그 법칙들은 총체적인 건물 구성뿐만 아니라 실내장식의 많은 면에도 적용되었다. 벽 장식은 로마에서 BC 15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BC 80년경까지 벽돌로 쌓은 것처럼 보이는 회벽이었다. 그러한 장식은 건축상의 요소들, 즉 문이나 벽기둥(벽에 붙여 세운 납작한 기둥)과 결합되었다.

또한 기둥·벽감·무개창(無蓋窓)들을 정교한 상상화와 초자연적인 형상을 새긴 벽화로 장식했다(아칸서스). 로마의 리비아 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채색 유적들은 18, 19세기의 서유럽에서 유행한 낭만주의풍의 전조(前祖)였다.

BC 27~AD 14년에 황제로 군림한 아우구스투스가 처음 본 로마는 벽돌로 되어 있었는데, 그가 떠날 때의 로마는 대리석 도시로 바뀌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것은 확실히 황제의 로마 실내장식은, 이 도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부상했고 이 도시로 제국의 부(富)가 수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색다른 대리석 조각들이 수입되기 시작했고, 벽돌 담의 표면에는 흰색과 유색 석제에 운을 낸 판(Slab)이 입혀졌다. 창문용 유리가 한정된 양으로나마 사용되었는데, 판유리는 제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 작고 두꺼우며 변색된 창유리가 쓰였다.

때로는 광선을 투과시키기 위해 아(亞)셀렌산염의 투명한 결정체(투명석고)가 이용되었다. 로마의 가구는 석제·목제·청동제였다. 밖을 향해 훤히 트인 별장에 석조 벤치와 탁자를 놓는 경우가 많았다. 목제 가구는 현존하는 것이 없지만, 청동제 가구는 현존한다. 탁자는 흔히 색다른 목재와 베니어로 만들고 상아나 청동 또는 은으로 장식했다(금속세공품). 의자를 대신하게 된 식탁용 카우치(couch : 긴 의자)는 화려한 장식에 때로는 은이나 청동을 도금했다.

의자는 옛 그리스의 모형을 본떴으며, 쿠션이 푹신했다. 태피스트리 장식은 그 기술의 역사가 오래된 이집트로부터 로마로 들어왔다. 로마인들은 유리 제조 기술에도 뛰어났는데 가정용 유리가 실용적인 것과 장식적인 것 모두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유리 공장들이 세워졌다. 또한 여러 종류의 가재도구에 청동이 대량으로 사용되었으며 에트루리아인이 제작했거나 그리스와 그리스 식민지들에서 약탈해온 청동제 조상(彫像)이 중요한 실내장식품이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Daum백과] 고대 서양의 실내장식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